명리적 사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 지 오래됐다. 사람을 관찰하고, 책을 읽고, 경험하며 살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쌓였지만 삶은 알면 알수록 방대하였고 철학적 의문만 쌓였다. 아마 한 생을 통틀어 공부한다고 해도 일부분만 이해하고 죽을 것 같다. 유퀴즈에 출연한 행복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만 30년 연구했다고 하니, 나는 “나”라는 사람만 제대로 이해하고 죽는다면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알 수 있는 데까지, 죽는 날까지 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연한 기회에 타로카드와 인연이 되어 신비의 세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타로카드는 인간을 이해하는 실마리처럼 다가왔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타로를 배우고, 도반을 형성하여 공부하고, 개인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기회가 주어져 여기저기 행사에 참여하며 지내던 날들이 나의 삶 속에 자리를 잡았다. 타로 카드는 서양의 점성학을 담고 있다. 점성학을 알면 타로카드의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아 점성학을 파헤치기도 했다. 서양의 점성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명리학을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학문은 해가 거듭될수록 철학적 사유로 깊어져 갔다. 차마 이해를 못 하다 어느 날 깨달아지는 것들이 삶 속에 나타났다. 그 깨달음의 매력은 세상에 대한 이해였다. 자연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나씩 깨우치고 느끼며 그제야 뭔가 알겠다는 듯 천천히 스며들었다.
나의 서가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나의 일상은 하루종일 알 수 없는 기호를 해석하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데 정성을 쏟는 탓에 찾는 이가 생기고, 상담을 종종 한다. 주로 수업을 개설하여 강의를 주된 목적으로 사용되는 공부이지만, 필요한 이의 요청이 있거나 소개로 인해 예외적인 상담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보다 보면 그 사람과 연결된 가족까지 확장이 된다. 그러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흘러버린다. 오늘은 상담을 받았던 분의 소개로 성사된 만남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뭔가 더 말해줄 긍정이 있을까 싶은 간절함에 상담시간이 또 길어진다. 궁금한 부분만 긁어드려야지 하면서도 조심해야 하거나,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 눈에 띄고, 좋은 개운법을 같이 고민하고, 솔루션을 찾다 보면 시간이 어느새 두세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면 하루에 쓸 에너지의 총량을 모두 소진해 버리기 일쑤다. 매번 다짐을 한다. 한 시간을 넘기더라도 언저리까지만 하자라고.
젊은 부부가 나란히 작업실에 들어왔다. 무엇이 가장 궁금한지 물었다. 유치원을 다니는 자녀가 있는데, 그 아이가 가장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아이가 지체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부부에게 다른 자녀는 없다고 하였다. 둘째 생각이 있냐고 감히 용기 내어 물었다. 두렵다고 하였다.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너무 힘들어 차마 생각조차 어렵거니와 두려움이 앞선다고 했다.
명리적 해석을 위한 사주를 파악하기 전에 부부가 함께 온 김에 도형심리 검사를 실시했다. 도형심리란? 사람들이 네 가지의 도형(동그라미, 네모, 세모, 에스_다각형)의 선택을 통해 개인의 성향, 감정 상태, 기질, 성격 그리고 잠재력을 분석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이다. 선택된 도형에 따른 기질적 특성이 파악되면 부부싸움의 원인이나, 특정 욕망을 읽어 서로를 이해시키는 도구로 좋을 듯싶어 검사를 해 보았다. 부부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도형을 그리는 순서가 동일하였다. 동그라미 다음에 세모, 세모 다음에 네모, 네모 다음에 에스를 그리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물론 도형의 크기도 달랐고, 위치도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오늘 상담은 최장 시간을 갱신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상담 시간을 조절하는 것은 다음의 다짐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여느 부부처럼 자녀를 키우는 애로사항과 부부 싸움 양상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낯선 이에게 민낯을 다 드러내진 않았겠지만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체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를 이렇게 상세히 들었던 적이 없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전해져 왔다. 장애가 없는 아이를 키우면서 볼멘소리를 달고 사는데, 하물며 서로의 생각과 언어가 전달되지 않는 자녀를 키우는 그들의 일상은 몇 가지 에피소드만으로 가슴을 후벼 팠다. 내색은 못하고 묵묵히 그들의 일상을 경청하였다. 과거에도 힘들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쉽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안다. 냉정하게 힘든 것들은 제처 두고 앞으로 채워서 살아갈 날들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명리적 사유로 그들은 자식에 의한 고초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이미 여러 상담가를 거쳐 부부상담도 받아봤고, 개선을 위해 노력도 하였다고 했다. 일시적 도움은 받았지만 제자리걸음이라고 했다. 그 과정 속에 남편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고도 했다. 아내 또한 우울증 약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였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애써 외면한다. 서로 같은 시그널을 보내지만 도움이 전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나 힘들어.”
“너만 힘들어? 난 더 힘들어.”
힘들다는 배틀만 하고, 아군임을 망각하고 적군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힘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은 밖으로 보이는 책임감과 의무로 포장한 것이 아닌지? 궁금했다. 부부에게 1순위는 아내이고 남편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부는 어떻게든 아이를 잘 길러내는데 집중하느라 서로에 대한 애틋함은 무의식 냉동고에 꽁꽁 얼려놓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의 운명을 부모가 다 떠안을 수 없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만의 운명적 이야기로 삶을 살아낼 것이고, 아이만의 운명은 따로 있다. 왜? 내게 이런 아픈 아이가 왔냐고 묻지 마라. 누구나에게 삶이란 고초가 따른다. 그 고초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운명의 주인인 본인의 의지이고, 사용자인 것이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자유의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고 있어 그렇게 조언을 했다.
아내가 물었다.
“선생님이 보셨을 때 이런 궁합이면 결혼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저는 언제 죽나요?”
자기가 언제 죽냐고 묻는 질문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애써 태연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저는 점쟁이도 아니며, 그 어떤 명리학자도 죽음을 재단할 능력은 없다. 어떤 운에서 불리하게 작용되는 것은 조심할 것을 당부드리고, 기회가 올 때 긍정적으로 사주의 주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행복을 꿈꾸며, 희망 찬 미래를 함께 약속했던 아내의 질문이 죽음에 맞닿아 있었다. 아내의 무너짐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던 남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가장 도움이 되는 어휘를 찾아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단순하지만 솔루션이 될 만한 것들을 늘어놓았다. 상담시간은 세 시간을 훌쩍 넘겼다. 최대한 그들의 사주에 없는 부분을 채워줄 생활 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음식을 추천하고, 다가올 나쁜 운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머리를 쥐어짜 설명하고, 좋은 운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하며 상담을 마쳤다.
부부가 돌아간 후, 나는 힘들었을 그들의 과거와 앞으로 힘내어 살아야 할 미래를 상상하며 먹먹해졌다. 결혼 전 누구보다 밝았을 것이 자명한 부부였음이 느껴졌다. 웃음소리와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부부의 지난날들이 보였다.
아내에게서 톡이 왔다. [감사합니다. ㅎㅎ 선생님도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래요^^] 나는 또 마음이 쓰여 못다 한 처방전을 써서 답장을 보내고서야 오늘의 상담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