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내안에 폭탄제거하기
참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길게 늘어뜨려놓은 시간이란 곡선 위에, 우리는 모든 감각과 감정의 흐름을 기억이라는 디스크에 저장시킨다.
디스크에 저장된 내용 중에 '기쁨'은 만족이라는 수용체에 의해 흡수되어,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픔이나 상처 따위의 감정은 내 마음에서 해결되지 못한 사건이다.
그것은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 한 채, 기억에서 잊힌 듯 화석처럼 굳어 있다.
이 화석은 비슷한 사건으로 조금만 건드려지면, 점화되어 폭발하고 만다.
성인이 되어도 종 종 감정적 폭발을 경험하는 것은, 성장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한 이 감정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유치한 이유때문에 '삐져버리는 것'은 어린 마음의 상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느 날 건드려져서 폭발하면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가장 끔찍한 일은 이것들이 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내 못난 상처를 대물림해서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집안의 상처는 무의식 중에 집안 대대로 물려내려 온다.
우리나라는 불과 70년 전에 전쟁을 겪었으며 그때의 충격과 상처는 무의식에 녹은 채 대물림되고 있다.
나는 나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지만,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통해 인격적 성향의 일부를 물려받았다. 의식적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의식이 무의식 전부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않다.
무의식은 의식보다 훨씬 크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독립된 인격체로 보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연결된 집합체이다.
그렇다고 조상 탓을 하면서,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계속 갖고 살아갈 수는 없다.
모두에게는 자유의 의지가 있다.
자기 안에 있는 부정성을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왔으며, 이미 너무나 오래된 일이고,
우리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도 참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참는다는 것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그냥 방치한 채 쌓아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기억저장소에.
그래서, 화가 날 때마다 참을 것이 아니라, 화를 해소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어떤 대상에게 화를 풀어내버리면, 상처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버리니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소리도 지르고,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도 해보고,
상처받은 자기를 위해 울어주고, 용서와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 도와줄 수 있다면, 타인이 아무 말도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함께 눈물 흘려준다면 혼자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단, 그 어떤 조언은 금물이다. 단지 듣기만 해야 한다. -책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참고함)
이런 과정을 "화를 낸다"가 아니라, "화를 들여다본다."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해본 적도 없는 것을 하려니, 어색하고 이상하지만 내 안에 있는 폭탄제거를 하기 위해.
무엇보다, 내 아이들에게 이런 몹쓸 상처를 더 이상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이미 늦은 건 아닐까.)
기회가 있을 때, 이것을 해봐야겠다.
무엇에 건드려져서 내 안에 화가 폭발하려 할때가 기회라고 한다.
(아무일도 없는 평온한 상태에선 무의식에 숨어있는 화는 들여다보기 힘든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안에 있는 '화'를 건드려주는 그 사람이 카르마적인 입장에서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니.
기회가 있을 때, 화를 폭발시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화를 들여다보는 것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