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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y Apr 08. 2021

나도 '발광체'로 살아보고 싶다

타고난 팔자를 인정하기가 그렇게나 싫다

빛이 난다는 


발광체. 자기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물체를 일컫는 말이다. 아무런 도움 없이도 자기만의 에너지와 색깔로 빛을 내고 주변을 비추는 물체가 있다. 단적인 예가 바로 태양이다. 태양은 대표적인 발광체로 태양계 전체를 비추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인 존재다.


사람도 그렇다.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 있다. 주변 환경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길어 올린 에너지로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나아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본다. 주관이 뚜렷하거나 의지력이 뛰어나거나 설득력이 있거나 혹은 의사결정을 주체적으로 한다고 해서 단순히 빛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걸 아우르는 특질이라고 생각해본다. 물론 발광 자체는 옳고 그름의 선악 개념은 차치하고 말이다.


발광체로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태어났든 후천적으로 만들어졌든 아무튼 부러운 일이다.


그리고 반사체로 산다는 


빛을 수용하고 반사하기만 하는 반사체의 삶도 있다. 바로 달이다. 달은 태양이 비추지 않는 한 절대 스스로 빛을 낼 수가 없는 존재다. 그래서 태양과의 각도에 따라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반사체 인간은  뉴턴의 3법칙인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빌어 설명하면 '반작용'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를 적용하면 딱 작용받은 만큼 반작용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작용이 없다면 반작용도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주로 반사체적 삶을 산다. 인정받기 위해 과도한 몰입과 완벽주의, 인정받지 못했을 때 받는 깊은 좌절감과 외부를 향한 불만과 분노, 혹은 인정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상황논리적 회피. 이 모든 것이 스스로 빛나지 않는 반사체라 벌어진다.


 삶은 어땠을까


나의 삶을 돌아보면 항상 절실히 해보고 싶어 선택한  아니라 '무언가' 피하기 위해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혹은 사람에 대한 반감으로 하지 않아도  일을 벌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도 스스로 세운 목표와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눈총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피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직장은 다른가. 끊김 없는 생계유지와 상사로부터의 면피를 위해 하루하루 살았다. 스스로 원해서 해본 것이 없다. 아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반사체가 스스로를 발광체로 착각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상황논리나 주변의 부추김 때문에 스스로 빛내는 존재로 착각했다 빛이 사라지면 갑자기 어둠 속에 남겨진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위기 속에 바닥을 드러낸다고, 위기가 닥치면 발광체나 반사체나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빛은 흐려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반면에 반사체는 어둠 속에서 홀로는 절대 빛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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