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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Sep 26. 2020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에 대하여

나쓰메 소세키, <그 후>

Katsushika Hokusai, <The Great Wave off the Coast of Kanagawa>, 1831

 대화를 하다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라는 말이 나왔다. 단 번에 받아들여지는 말은 아니었으나 곱씹어보면 그럴듯하였다.  서생적 문제의식이란 삶의 이상을 좇는 것을 말하고, 상인의 현실감각이란 먹고사는 생계에 게을리하지 않는 일을 말하는 것일 테다.  이 말을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생이라는 단어에는 적(的)이라는 접미사가 붙고 상인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의"라는 조사가 붙어 더 그럴듯했다. 맛을 잘 살린 표현이다. 서생이 상인보다 현학적인 것을 빗대어 말이다.


 이 문제를 생각하는 일은 시시각각, 도처에 있지만 문제의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밥벌이를 신경 쓰다가 어느덧 피폐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것일까. 지금보다 어렸을 때에 그때에는, 앞으로 내 삶에 무엇을 담을지 그런 가득 찬 기대로 부풀던 때도 있었다. 그때엔 알고 있었을까, 밥그릇 크기만 걱정하다가 미래를 잃어버릴 것을. 그렇더라도 당장의 연장을 집어던지고 배곯으면서 펜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꿈이냐, 끼니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에서는 이와 같은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공 다이스케는 능력 있는, 유망한 청년이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그는 배운 자식이고 또 능력 있는 젊은이였다. 그럼에도 다이스케는 어떠한 경제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 아들이 집에서 그러고 있다고 하면 복창 터져할 노릇일 것이다.

 다이스케가 친구인 히라오카에게 말하는 빈둥거림의 이유는 그럴듯하다.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즉 세상 탓이지. (중략) 모두 빡빡하게 교육을 받고 그 후에는 눈이 돌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신경쇠약에 걸려 버리지. 한번 이야기를 해보게나. 그들 대부분이 바보일 테니까. 자신의 일과 자신의 현재, 단지 눈앞의 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지. (중략) 그야 지금이라도 일본 사회가 정신적, 도덕적, 구조적으로 건강하다면 나도 여전히 전도유망한 사람이었겠지. 그렇기만 하다면 할 일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후략)"
- 나쓰메 소세키, <그 후> 중 (현암사)


 즉, 이상적인 조건 하에서만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일본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므로, 본인은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단지 나이가 들어 먹고 살기가 퍽퍽하여 되는대로 이 일 저 일을 할 뿐,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꿈.


 여기서  다이스케가 지닌 서생적  문제의식을 볼 수 있다. 다이스케는 이상적인 사회와 그 안에서의 개인을 꿈꾸면서 그렇지 못한 현실을 향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일도 하지 않고 아버지나 형수로부터 돈을 받아 쓰는 다이스케는 상인의 현실감각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나 훌륭하신 도련님이 어째서 저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거죠? 이상하지 않아요? (중략) 아무에게도 돈을 빌리지 못해 지금 그 친구를 돕지 못하게 되면 어쩔 생각이죠?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소용없지 않나요? 무능하다는 점에서는 인력거꾼과 마찬가지잖아요?"
- 나쓰메 소세키, <그 후> 중 (현암사)


 심지어 다이스케는 형수에게 돈을 빌리면서 경제적인 면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다이스케의 부족한 현실감각을 제대로 꼬집는 점인데, 이처럼 다이스케는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제목인 "그 후"처럼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재회한 후로 완전히 변하고 만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어 그를 향한 회적 평판이 달라진 탓이다. 그러나, 다이스케를 변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아버지로부터 금전적 지원이 중단된 것이다. 유부녀인 미치요와 다이스케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아버린 아버지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뜻만을 품고 살아온 다이스케는 돌연 이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다이스케는 평소에 물질적인 면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가난한 생활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유함이 미치요에 대한 책임의 일부라고 생각했을 뿐 그 밖에는 어떤 명확한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
 "도덕적인 책임이 아니라 물질적인 책임을 말하는 것이오."
 "그런 건 원하지도 않아요."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반드시 필요해질 것이오. 이제부터 나와 당신이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고 해도 물질이 그 해결책의 절반은 차지할 것이오."
- 나쓰메 소세키, <그 후> 중 (현암사)


 이제 다이스케는 완벽한 상인이 되었다. 서생 중에서도 서생의 끝에 있던 다이스케는 단숨에 양팔 저울을 횡단하여 건너편으로 상인 중의 상인이 돼버렸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다이스케는 생계를 위하여 그동안 읽어온 책을 팔 준비를 하는 것이다. 평생을 방구석에서 책을 벗 삼아 이상을 품던 다이스케가 책을 판다는 것은 더 이상 서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생계가 목을 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도 바로 서생적 문제의식을 벗어던진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지만, 이 어찌나 가벼운 인생관인가! 우려만으로 벗어던지는 인생관이란.


 그렇기 때문에라도 다이스케의 모습은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현실을 대하는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추어 바꾸는 모습이 마치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여측이심(如廁二心), 뒷간에   마음 다르고   마음 다르다는 말처럼. 덧붙여, 사랑 앞에서는 평생의 가치관까지 던져버리는 다이스케의 진심도 그렇다.


 그렇다한들, 이리저리 인생관을 바꾸면서 사는 일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기존과는 다른 인생관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에 갖고 있던 인생관을 부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이스케는 상인의 태도를 취하면서 서생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적인 사회에서 노동하고자 했던 다이스케는 이제와 경제활동에 뛰어들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나 현재에 대한 민망함, 절망감 따위는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우리의 삶엔 중용이 필요하다. 꿈을 좇는 일에도 생계를 꾸리는 일에도 "적당히" 유연할 수 있도록. 바람에 흔들거리는 이상과 현실에도 휘청이지 않도록. 그러기 위하여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의 적당한 자리는 어디일까.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듯, 서생과 상인의 면모를 필요한 만큼만 갖추는 일 역시 어렵다. 어떻게 해야 배곯지 않으면서 꿈을 좇는가 말이다. 떻게하면 삶의 목적과 품위를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인가.


Katsushika Hokusai, <The pontoon bridge at Sano in the province of Kozuka>,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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