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이든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 또 느긋하게 오는 법도 없다. 눈꺼풀을 무심코 감아 어둠이 찰나에 찾아오듯이 왔다가 그대로 번뜩. 지금 이 글도 그렇다. 적기 전에는 고상한 어구와 그럴듯한 생각의 흐름이 있었는데, 한 두 글자 적으니 눈을 깜빡인 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깜빡였던가.
예전의 나보다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인가? 글쎄, 모르겠다. 괜찮다거나 낫다는 말이 어떤 부분에서 그렇다는 건지는 몰라도, 내 기분으로는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에는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이 들고 뒤이어 그 생각의 이유 같은 것들이 마치 잘 짜인 그물처럼 촘촘히 달라붙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최근에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먹을 때에도 끼니를 거듭하며 색이 짙어지는 미역국을 보며 어떠한 감상이 일었더랬다. 그러다가는 ‘이 감정이 뭐지’ 하고 혼자 갸우뚱하고는 마른입에 숟가락만 달그락 부딪히며 국을 떠 넣는 것으로 끝났다. 참으로 가벼운 감상이다.
무슨 일을 판단하건 간에 내가 결정을 내리고, 그러고는 끝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내 사유에게 양심이라는 게 있었던 그때에는 그렇더라도 말이 되는 이유를 생각해내려 애를 썼고, 못한다면 그 판단을 쉽게 철회했다. 지금은 무언가 본능에 이끌려(혹은 살아온 가락에 익숙해진 대로) 행동하거나 생각하고, 이유는 좀처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주변의 풍파에 부딪히고 그러니까 누군가의 반대나 현실의 어려움 등을 맞닥뜨리면 그제야 이유를 생각해보려 하는 것이다. 참으로 단순한 삶이다.
혈기가 넘쳐서 이유를 따져 묻는 일에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던 시절에는 그런 어른들이 싫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냥 그러려니 해 같은 모호한 말들로 매사를 매듭짓는 게 바보 같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바보다. 경험과 연륜으로 그럴듯한 결정을 탁하고 내리는 건 아니고,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이런 것이 경험에서 오는 직관이겠지만, 나는 그런 거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