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여 사진, 영상, 설치 작업을 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문화만이 갖고 있는 개인적 서사에 주목해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이끌어내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작가가 유학시절 처음 구상한 <엘비스 궁중반점>이 그 예이다. 정연두는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만난 5명의 동료 작가들과 함께 ‘그레이스랜드’라는 팀을 만들었다. 계기가 된 것은 런던에서 중국 식당을 방문했을 때 식당 주인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창 공연을 보여준 일이었는데, 서양에서 아시아인이 중국 음식이라는 동양 문화를 상품으로 사업을 하면서 미국이라는 또 다른 문화를 흉내 내는 진기한 광경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정연두와 작가들은 전시장 내부를 중식당으로 만들고 혼성 대중문화를 주제로 하여 사운드, 조각, 영상,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당시 런던에서 주목을 받아 정연두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었다. 귀국 후 성곡미술관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전시가 열렸으며, 이 전시는 단일 문화권인 한국에 혼성문화라는 새롭고 열린 사고를 소개하는 장으로 기능했다.
정연두 작가 하면 떠오르는 작품으로는 <내 사랑 지니>가 있다. 이 시리즈는 일종의 ‘꿈 만들어주기’ 프로젝트다. 보통은 가까운 사이에서도 꿈이 무엇인지 서로 묻는 일은 거의 없는데, 작가는 다른 사람의 꿈을 궁금해 하는 태도만으로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러한 작업을 진행했다. 정연두는 서울, 베이징, 도쿄, 뉴욕, 암스테르담, 니스 등에서 만난 스무 명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래의 모습과 장래의 꿈을 묻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먼저 모델의 현재 모습을 촬영한 후, 소원이 성취된 상태로 분장하여 사진을 하나 더 찍는다. 가령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을 남극에서 사냥을 나가는 에스키모 여전사로 만들어주거나, 주유소에서 일하는 직원을 카레이서로 변신시켜 주는 식이다. 물론 실제로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소망에 귀를 기울인다는 행위는 인간적 대화의 실천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내 사랑 지니>가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는 느낌을 주었다면,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시 과정이 공연을 구성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방, 도시, 거리, 농촌, 숲, 산 등 6개의 장면이 실내 세트장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중계한 영상 설치 작품이다. 누군가의 거실에서 시작된 실내 세트장의 풍경은 도심 변두리 동네가 되었다가 다시 벼가 익어가는 황금 들판으로 변하고, 이후 울창한 숲으로 바뀌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화면이 움직이며 생성된 시간의 흐름은 그 안에 배열된 개별 서사를 떠오르게 하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현실 속에서 일시적으로 구현되는 꿈의 이미지를 즐겨 다루던 작가는 2014년 이후에는 전쟁, 재난, 이주, 국가, 이데올로기와 같은 문제들로 관심사를 확장한다. 개인의 서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공백과 다층적인 목소리들이 표층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작가는 이번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2023. 9. 6. ~ 2024. 2. 25.) 전시에서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인 디아스포라에 주목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유대인의 이주를 디아스포라로 명명하며, 한민족 역시 19세기 말~20세기 초 연해주와 만주 등지로 강제 이주된 기록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이번에는 ‘디아스포라’라는 보다 복합적인 층위를 지닌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전시 제목인 ‘백년 여행기’는 1905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40여 일의 항해 끝에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도착한 백 년 전의 한인 이주를 의미한다. 당시 천 명이 넘는 한인들은 25개의 대농장으로 흩어져 에네켄 재배를 위해 계약 노예와 다름없는 고된 삶을 지속하게 되는데, 이때 멕시코로 이주한 사람들 대다수는 4년의 계약이 끝난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한인 이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백년초’라 불리는 식물에서 출발했다. 멕시코에서 노팔 선인장으로 불리는 백년초는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 제주도에 뿌리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한국과 멕시코를 잇는 식물과 사람의 백년 여행기를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민족의 수난사를 되짚거나 한인들의 험난했던 삶의 궤적을 들추어내려는 데 초점을 둔 것은 아니다. ‘이주’가 보편화된 현재 시점에서 이동과 이주, 이국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공간과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는 존재는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는 목적에 가깝다.
전시를 여는 작품은 <상상곡>이다. 11점의 오브제가 뱃고동 소리를 연상시키는 웅장한 음악 소리와 함께 제시된 작품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이 오브제들은 이국적인 식물 이파리와 붉은 색 열매를 형상화한 것이다. 작품은 소리의 반사를 막는 흡음재로 만들어졌다. 특히 붉은 색 열매 안에는 초지향성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어 초음파 소리를 재생하고 있다.
오브제 사이를 거닐면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면, 2023년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들은 일본어, 스페인어, 아랍어, 헝가리어, 텔루구어, 인도네시아 등 자신의 말로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 오늘 가장 그리운 사람, 희망과 꿈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어가 달라서인지 말소리처럼 들리기보다는 귓가에 맴도는 노래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가진 채 살아왔고, 여전히 이러한 프레임에서 갇힌 사고를 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은 국제결혼, 이주노동, 학업, 난민 등의 이름으로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일이 빈번해졌다. 100년 전에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만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졌다면, 이제 이주는 보다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이 되었다. 작가는 <상상곡>을 통해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외부의 다중 세계를 상상해보기를 권유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전시의 시작은 ‘백년초’의 이주 설화에서 시작됐다. 멕시코에서는 노팔 선인장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에서는 백년초라 불리는 식물이다. 약 200년 전, 멕시코를 원산지로 하는 이 식물의 씨앗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밀려오다가 제주도에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작가는 2022년 제주도에 머물며 작업할 당시 이 낯선 식물을 발견했고, 먼 바닷길을 건너 한국의 섬에 도착한 씨앗의 이야기가 한국을 떠나 멕시코에 닿았던 한인들의 여정을 떠올리게 했다고 회고한다.
<백년 여행기-프롤로그>는 작은 사이즈로 제작된 연극 무대와 비디오 채널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다. 멕시코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무대 설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연두는 마임이스트의 손 퍼포먼스를 통해 20세기 초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뿌리를 옮겨가야 했던 한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이주를 둘러싼 모순된 역사를 보여준다.
마주 보는 구조로 설치된 2채널 영상 <세대 초상>에서는 1905년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의 후손들이 직접 등장한다. 한인 2세부터 5세에 해당하는 이들은 10대부터 90대까지 전 연령에 걸쳐 있다. 정연두는 2022년부터 멕시코를 총 세 차례 방문하면서 한인 후손 여섯 가구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 뒤 부모와 자식의 영상을 두 사람씩 짝지어 이렇게 마주 보게 만든 것이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된 이들의 모습은 1분당 500프레임 이상으로 편집돼 마치 사진처럼 느리게 재생된다. 덕분에 우리는 두 인물의 미세한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들의 관계성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민 1세들이 낯선 시공간에서 타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면, 후손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좀 더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한인 이민자 후속 세대 간의 역사적·문화적 간극과 세대 간의 유사성 및 차이,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보여주면서 공생하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백년 여행기>는 가로 8m에 달하는 LED 스크린 아래 3개의 작은 스크린이 배치돼 있는 형태로 구성된다. 영상 주변에는 멕시코의 열대 식물을 형상화한 오브제들이 놓여있다. 메인 스크린에는 에네켄 농장을 비롯해 작가가 멕시코에서 찍어온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독특한 점은 이야기가 아니라 소리의 운율에 맞춰 영상이 편집되어 있다는 것인데, 영상의 소리와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아래에 함께 배치된 3채널 영상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의 기다유 분라쿠, 멕시코의 마리아치 공연을 기록한 이 영상작품은 1905년 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멕시코에 다다른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의 여정과 조우한다. 시각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 텍스트와 이미지가 뒤섞인 이 작품은 전시장 전체를 일종의 무대극으로 만들면서 우리를 20세기 멕시코 한인 이민의 대서사시 속으로 초대한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을 구성하는 작품은 <날의 벽>이라는 제목의 거대한 벽면 설치이다. 언뜻 보면 고대의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문양들은 멕시코어로 ‘마체테(Machete)’라 불리는 농기구들이다. 작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세계 각지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이 기구들을 오브제로 만들어 거대한 벽에 빼곡하게 붙여놓았다.
독특한 점은 작품의 재료가 ‘설탕’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설탕을 재료로 가져온 것은 식민 지배자들과 지주들이 설탕의 생산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했던 역사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지주들의 억압에 ‘마체테’를 무기로 들고 대항하기도 했다. 즉, 설탕이라는 재료에는 농사를 둘러싼 정치학과 권력 관계가 담긴 셈이다. 설탕은 달콤함을 상징하지만, 작가는 20세기 초 험난했던 노동의 역사를 달콤함의 유희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과거의 시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근대 시기 이전까지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계속 삶을 영위하다가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면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연두는 디아스포라와 이주민들의 삶, 언어와 문화 상실의 경험을 다양한 예술적 실천으로 풀어낸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차 지점을 바라보면서 낯섦에 대한 감각을 공감의 지대로 넓혀갈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