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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아트 Jul 30. 2024

끊임없기 그리기: 에디 마티네즈

3줄 요약

에디 마티네즈의 개인전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스페이스K 서울)가 열리고 있다. 

마티네즈는 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주변의 오브제를 종이와 캔버스로 옮기는 회화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이미지를 다르게 바라보도록 하면서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벗겨내고자 한다. 



끊임없이 그리기



미국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에디 마티네즈(Eddie Martinez, 1977~)의 작품은 ‘끊임없이 그리기’라는 말로 압축해볼 수 있다. 작가의 시선을 끄는 주변 물건들은 종이와 캔버스로 옮겨져 완전히 새로운 풍경으로 전환된다. 


에디 마티네즈, <Wishing Well>, 2023. 


추상 같기도 하고 구상 같기도 한 마티네즈의 작품은 나비, 꽃병, 테니스공과 같은 다양한 모티프가 수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같은 그림이지만 다르게 그리기 위한 연구’라고 부르는 이 작업 방식은 이미지를 다르게 이해하기 위해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벗겨내려는 시도이다. 


마티네즈는 자신의 작업 동력에 대해 진정한 본성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이라 밝힌다. 작가는 일상적인 사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회화 작품이어서 자유롭게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작품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한 5가지 키워드를 꼽아보았다.



1. 드로잉 


에디 마티네즈 작품의 중심에는 드로잉이 있다. 전시장에 놓인 완결된 형태의 작품을 보면 드로잉과는 차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작가는 항상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며 드로잉을 한 뒤, 이미지를 변형해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에디 마티네즈, <이엠아트유한회사 No. 4 (사운드 배스 Ⅱ)>, 2023.


‘스페이스K 서울’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신작 <이엠아트유한회사 No. 4>에서 작가는 작업실에서 발견한 편지지에 그렸던 드로잉을 확대했다. 작품 하단의 텍스트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레이어가 쌓여 원본 드로잉의 흔적은 가려져 있다. 그럼에도 계속 작품을 응시하다보면 이면에 있는 이미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마티네즈는 드로잉을 결합하는 이 같은 작업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에디 마티네즈의 드로잉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 회화 작품 외에 드로잉만을 전시한 코너도 있다. 2층에 전시된 드로잉 작품들이 그 예인데, 2000년대 중후반에 그린 이 작품들은 전시된 회화 작품들이 추상적인 이미지를 보이는 것과 달리, 좀더 형체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만화 캐릭터 같은 큰 눈의 인물과 뾰족지붕의 성, 벽돌 무늬와 테이블, 화분 등이 보이며, 이러한 이미지들은 회화 작품에도 녹아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화이트아웃 


전시 공간에서 가장 포인트가 되는 공간은 아무래도 1층 가장 안쪽에 위치한 벽이 아닐까 한다. 전시에 따라 가벽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워지는데, 1층의 가장 안쪽은 대체적으로 대형 작품이 걸리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디 마티네즈, <은하계 같은 풍경-로지아(Loggia)에서 바라보다>, 2023.


이번 전시에서도 마티네즈가 두 개의 패널을 붙여 제작한 대형 회화 작품이 이곳에 걸려 있는데, 사진 상으로는 크기가 가늠되지 않지만 층고가 높은 전시장을 꽉 채울 정도로 사이즈가 큰 작품이다. 작품 제목인 ‘로지아’는 한쪽 벽이 없이 트인 방이나 복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하얗게 칠해진 그림이 우리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2015년부터 선보여 온 ‘화이트아웃(White-out)’ 연작 중 하나이다. ‘화이트아웃’은 ‘수정액으로 지운다’라는 의미다.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흰 페인트로 덮어 마치 눈보라가 치는 것처럼 표현했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면 눈보라 같은 뿌연 풍경으로 보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블록 머리, 버섯, 눈, 나뭇잎 같은 친숙한 모양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에디 마티네즈, <머슬 메모리>, 2019.


드로잉을 생활화하던 작가에게 와이트 아웃(Wite-Out) 브랜드의 수정액은 늘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었고, 수정액에서 나는 묘한 냄새가 화이트아웃 작업에 대한 충동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회상한다. 작가는 무언가를 완전히 지우는 데에 목적이 있는 수정액의 용도를 살짝 비틀어, 무언가를 지움으로써 과연 무엇이 드러나는가의 탐구로 화이트아웃 작업을 이어간다. 


이러한 ‘화이트아웃’ 연작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려졌으나 지워졌고, 지워졌으나 그려진 그림 속 사물들은 뚜렷한 초점이 없이 서로 얽히고설킨 모습으로 나타난다. 더하기와 빼기, 정의하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는 ‘화이트아웃’ 작업을 통해 우리는 지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드러남’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3. 콜라주 


마티네즈의 작품은 평평한 회화 작품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의 작품들은 여러 요소들을 ‘콜라주’한 것이다. ‘콜라주(collage)’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화면에 붙이는 기법을 의미한다. 일상 속의 오브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를 지닌다. 일상의 사물을 모아 붙이고 쌓아 나가는 방식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형태를 구성함으로써 오브제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에디 마티네즈, <블록헤드 탑 #32>, 2019.


<블록헤드 탑 #32>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선명하게 대조되는 빨간 블록 머리가 이층으로 쌓여있는 모습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머리의 오른쪽 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천 조각이 핀으로 꽂혀있다. 이 천 조각은 작가가 맘에 들지 않아 출품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옛 캔버스 조각을 오려내 붙인 것이다.


콜라주의 흔적들


작가는 이처럼 일상 속 물건들을 ‘콜라주’하는 이유에 대해 밝힌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오는 일인데, 작가는 작업실에 널브러진 캔버스 조각이나 물티슈, 껌 포장지 같은 물건들을 보다 보면 충동적으로 캔버스에 붙이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방식은 한 때 해안가를 걸으며 주운 잡동사니들로 조각을 만들거나, 팬데믹 시대에 배달 음식으로 인해 생긴 다량의 판자를 캔버스 삼아 그리는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이렇게 붙인 일상의 다양한 재료는 평평한 캔버스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하는 한편 다양한 시공간에서 작가가 겪은 경험을 한 작품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4. 나비 


마티네즈의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상은 아무래도 ‘나비’가 아닐까 한다. 작가는 큰 틀에서 일상 경험을 모방한다는 원칙으로 작업을 하는데, ‘나비’ 연작 또한 이러한 원칙 하에서 제시된 작품이다. 


에디 마티네즈, <나비(부플라이) No. 15>, 2022.


나비 형상이 특징인 ‘부플라이(Bufly)’는 나비를 좋아하는 작가의 아들에게 영감을 받았다. 제목 역시 아들이 ‘버터플라이(butterfly)’를 ‘부플라이(bufly)’로 잘못 발음한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위의 작품을 보면, 나비 모양의 검은 윤곽선 위에 작가 특유의 대담한 색채가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날개 부분에 물감을 두껍게 얹은 붓놀림이 마치 나비가 날갯짓한 흔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비는 가족과의 일상에서 시작된 소재이면서 동시에 작가에게 캔버스 속의 캔버스 같은 역할을 한다. 나비의 날개에는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이 실험이라도 하듯 과감하게 배치되어 서로 어울리거나 부딪힌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 점의 ‘부플라이’가 소개되고 있다. 한 작품 속 날개에는 작가가 평소에 즐겨 치는 테니스공을 비롯해 이전 작품에도 여러 번 등장했던 카드의 다이아몬드 문양이 숨어있다. 어쩌면 다양한 스타일을 종횡무진 오가는 작가의 작업은 ‘부플라이’처럼,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닮아있다고도 볼 수 있다.



5. 만다라 


‘만다라(Mandala)’라는 동양적 상징이 미국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지점이 독특하다. 만다라는 원판 혹은 원륜이라는 뜻으로, 불교와 힌두교에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는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자신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모티프를 포함해 선과 모양, 형태와 색채 등 예술적인 우주를 담는 그릇으로써 ‘만다라’를 활용한다.


(좌) 에디 마티네즈, <만다라 #10(세상의 눈)>, 2016. (우) <무제(만다라 #1)>, 2016.


‘만다라’ 시리즈는 어시스턴트가 작가의 옛 드로잉을 구경하던 중, 2005년에 그려진 작은 원 모양의 그림을 발견하면서 탄생했다. 마티네즈의 만다라 속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물감, 스프레이 페인트의 흔적들은 이 시리즈가 불교 상징을 변형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 그저 수레바퀴와 같은 원이 역동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상을 하게 할 뿐이다. 


중앙에서 발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중앙으로 축소하는 것 같기도 하는 원을 바라보며 각자의 만다라를 상상해 보라. 작가의 만다라는 드로잉과 회화를 향한 충만한 욕구로 채워져 있다. 당신의 만다라 속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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