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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는 왜 구두를 그렸을까?

by 와이아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많지만, 오늘은 반 고흐의 작품 중에서도 ‘구두’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반 고흐는 일생 동안 ‘구두’를 주제로 한 그림을 여덟 점이나 그렸다. 신발은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아닌 만큼, 반 고흐의 신발 그림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Vincent_van_Gogh_-_Three_pairs_of_shoes,_1886_(Fogg_Art_Museum) 위키미디어.jpg 빈센트 반 고흐, Three Pairs of Shoes, 1886. (출처: 위키미디어)


반 고흐가 구두를 처음 그리기 시작한 것은 파리에 머무르던 1886년이었다. 반 고흐는 이 시기 여러 구두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그 중 하나인 <구두(A Pair of Shoes)>(1886)는 어두운 배경 속에 구두 한 켤레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구두끈은 뻣뻣하게 꼬여 있고, 발목 부분의 가죽은 아무렇게나 접혀 있으며, 신발 주위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어 최근에 신은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고흐는 왜 이런 낡은 구두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을까?



누군가의 신발에는 왠지 모를 특별함이 있다. 그것이 새 신발이 아닐 경우는 더 그렇다. 신발에는 그것을 신었던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신발은 사용하던 사람의 습관에 따라 닳게 되고, 굽이나 주름에 따라 신발 주인의 걸음걸이를 유추할 수 있다. 가령 선수의 축구화에서는 그의 피와 땀이 느껴지고, 하이힐에서는 화려한 여인이 떠오른다. 고흐가 그린 노동자의 주름진 구두에서는 고단한 삶이 마음으로 전해진다. 내가 벗어놓은 신발은 나의 체취를 강하게 풍기면서 내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알레고리가 된다.


* 잠깐! 알레고리(Allegory)란?

: 어떤 추상적 관념을 드러내기 위해 구체적인 사물에 비유하는 방식을 ‘알레고리(Allegory)’라고 부른다. 가령 『이솝 우화』 같은 이야기는 일차적으로는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와 교훈을 담고 있다. 반 고흐의 신발은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발에 신는 물건”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를 특징 짓는 알레고리로 기능하게 된다.


default.jpg 빈센트 반 고흐, A Pair of Shoes, 1888. (출처: 반 고흐 뮤지엄)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는 그림을 단 한 점 밖에 팔지 못했으나,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가의 반열에 오른 예술가로 유명하다. 그의 <구두> 작품에 대해서도 여러 철학자들과 비평가들이 논쟁에 논쟁을 거듭했다. 특히 논쟁에 불을 지핀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이다.


하이데거는 한 전시회에서 반 고흐의 <구두> 작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 강연에서 이 작품을 예시로 들어 ‘예술 작품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신발의 해어진 안쪽의 어두운 구멍에서는 노동하는 발걸음의 고단함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질기고 튼튼하고 묵직한 신발에는 거친 바람이 부는 밭에 나란히 멀리 뻗은 고랑들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끈기가 쌓여 있습니다. 신발 가죽은 기름진 땅의 물기로 눅눅합니다. 신발 바닥으로는 저물녘 들길의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신발 속에서는 대지의 침묵하는 부름이 울립니다.”
-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 작품의 샘」 中


철학자의 감성적인 작품 설명을 읽고 나서 반 고흐의 작품을 다시 감상해보자. 밭고랑 사이를 힘들게 헤치고 나아가는 농부의 발걸음이 연상되는 느낌이다. 해진 가죽을 통해서는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이 전해지는데, 이는 우리가 삶을 지속해가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은 구두의 실제적인 기능을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발에 신는 물건’이라는 도구로서의 구두 그 이면에 놓여 있는 세계를 드러내준다. 우리는 이 구두를 통해 농민의 삶의 터전이 되는 논과 밭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삶의 고통과 기쁨, 생명과 죽음 등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사다난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이 신발의 주인이 여성 농부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림 속 가죽신은 당시 농민들이 주로 신던 신발이었다. 하지만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는 이 구두가 농부 여인의 것이 아니라 고흐 자신이 신던 신발이라고 주장하면서 하이데거의 해석을 반박했다.


“나는 반 고흐가 그린 구두에 대해 자신의 공상을 넣어 말한 철학자 하이데거의 주장에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그림은 진짜 농부의 구두 한 켤레를 보면서 그렸다고 볼 수 없다.”
- 마이어 샤피로·미술사학자


7LKV6AXXJII6TIUFRAVI4ODKSY.jpg 빈센트 반 고흐, A Pair of Shoes, 1887. (출처: 반 고흐 뮤지엄)


신발의 주인이 농부가 아니라면 하이데거의 분석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물론 구두의 주인이 누구인지보다는 신발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특별한 감정을 전달해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샤피로의 주장에 힘이 실리던 차,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도 논쟁에 참여했다. 데리다는 이 구두가 한 켤레가 아니라 왼쪽 구두만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 구두는 보면 볼수록 더욱더 한 켤레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둘 다 왼쪽 구두로 보이지 않는가?” - 자크 데리다·철학자


이러한 논쟁이 긍정적인 이유는 작품을 더욱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굽이 닳은 모양과 가죽의 주름들을 보며 구두의 주인이 누구의 것인지 유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 작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Shoe(1888) 메트로폴리탄 뮤지엄.jpg 빈센트 반 고흐, A Pair of Shoes, 1888. (출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반 고흐는 불운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소명을 다한 사람이었다. 본래 목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가난하고 불쌍한 이에게 전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소명이라고 느낀 반 고흐는 화가가 되어서도 이러한 시각을 잃지 않았다. 특히 광부, 실업자와 빈민, 농부들을 그릴 때 그의 따뜻한 시각이 두드러졌다. 그는 그림을 통해 유명해지거나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그리고 싶어 화가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나는 크고 화려한 성당보다 사람들의 눈을 그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눈 속에는 대성당이 가지지 못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성당은 엄숙하고 인상적이지만 내게는 가난한 부랑자나 거리의 소녀가 더욱 매력적이다." - 빈센트 반 고흐


Shoes 1887.jpg 빈센트 반 고흐, A Pair of Shoes, 1886. (출처: 반 고흐 뮤지엄)


이런 고흐에게 ‘구두’는 그냥 구두가 아니었다.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자 했던 갈망이 담긴 사물이었던 것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두>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는 이유는 그림 속에서 고흐의 ‘진실함’이 느껴져서 일 듯하다. 그의 개인적 삶은 쓸쓸하고 고독했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해내며 자신의 소명을 이뤄냈다.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어.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려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어.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말야. 그것이 나의 목표야.” - 빈센트 반 고흐


Van-willem-vincent-gogh-die-kartoffelesser-03850.jpg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출처: 반 고흐 뮤지엄)


신발을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에도 이러한 고흐의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안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그림 속 벽에 반사되는 불빛은 농부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고, 슬픔 너머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반 고흐는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공하고 잘나가는 사람보다 더 복되다고 여겼다. 그에게는 예술이 자신의 쓸쓸한 인생에 한 줄기 희망이 된 것처럼,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위안을 건넨다.


A Pair of Leather Clogs 반 고흐 뮤지엄.jpg 빈센트 반 고흐, A Pair of Leather Clogs, 1888. (출처: 반 고흐 뮤지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 빈센트 반 고흐



우리가 반 고흐의 구두 그림에 마음이 이끌리는 것은 그 안에 그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헌 구두를 표현했을 뿐인데 신발 주인이 겪었을 쓸쓸함과 고단함의 무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낡은 구두 한 켤레가 특별한 구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신발을 남기고 간 농민의 혼을 대변하고, 우리에게도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도록 유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반 고흐의 구두 그림을 통해 절망과 희망,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을 그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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