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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아트 Sep 18. 2021

파괴하는 소프트 조각, 설치미술가 이불

펌프를 밟아 공기를 주입해서 조각을 완성해주세요.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거대한 풍선 조각은 요즘 미술 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개를 뒤로 젖혀 10m에 달하는 이 풍선 구조물을 올려다보면 펌프를 밟는 재미는 사라지고 이내 ‘기괴함’이라는 느낌으로 변한다. 이 구조물은 설치미술가 이불(李昢, 1964~)의 <히드라>라는 작품으로, 1996년 시작한 풍선 모뉴먼트 작업을 다시 제작한 것이다. 이불 작가는 천으로 만들어진 풍선에 왕비, 여신, 게이샤, 무속인, 레슬러 등 다양한 여성 이미지로 변장한 본인의 초상을 인쇄했다. 풍선이 팽창했을 때 나타나는 작가의 이미지는 불안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평소 익숙하게 생각하던 무언가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졌을 때 기괴함을 느낀다.


이불, <히드라>, 1996/2021, 천 위에 사진 인화, 공기 펌프, 1000×700cm.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한국 현대미술 작가 중 국제미술계에서 널리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불은 ‘전사(戰士)’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과감하고 도발적인 작업을 전개한다. 1964년 강원도 영월에서 출생한 이불은 좌익 정치 운동가로 활동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가내수공업 등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회고한다. 그의 작업은 페미니즘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정체성과 후기식민주의 등의 담론을 다루며 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인간 존재를 탐구한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이불 작가의 초기 작업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불 – 시작》(2021. 1. 26. ~ 5. 16.)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1987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이불은 당시 도제식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술회한다. 그는 전통적인 방법의 조각 수업에 대해 “새로운 것이나 남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수 없는, 가능성이 닫힌 정설이자 죽은 언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돌과 스틸(steel)로 만들어진 구조물만이 ‘조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불은 기존의 조각 재료가 체제의 권위를 드러내고 남성주의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분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를 찾으려 애썼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소프트 조각’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불, <무제(갈망 레드>, 1988/2011, <무제(갈망 블랙)>, 1998/2011, <몬스터: 핑크>, 1998/2011.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소프트 조각’은 미국의 조각가인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의 <부드러운 타자기(Soft Typewriter)>(1963)에서 시작된 것이다. 본래 딱딱한 사물이 부드러운 소재로 표현되면 낯선 느낌을 전달하게 된다. 이불의 경우에는 올덴버그에서 더 나아가 ‘입을 수 있는’ 소프트 조각을 제작한다. 그는 조각을 통해 생물 유기체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불이 선택한 섬유와 고무는 육체(flash)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걸맞은 소재였다. 섬유는 그 어떤 재료보다 부드럽고 평면부터 입체까지 다양한 조형이 가능하며, 고무는 제조 과정에서 유연성과 탄력성을 얻을 수 있어 조각을 입은 채 퍼포먼스를 할 때 활동성을 보장해 주었다. 이불은 ‘소프트 조각’을 통해 회화와 조각, 공예라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게 된다. 


이불이 처음 ‘소프트 조각’을 선보인 작업은 1988년 <갈망(Craving)>이라는 제목의 초기 퍼포먼스에서였다. 이때의 소프트 조각은 옷처럼 입을 수도 있고, 벗어두면 조각 작품이 되는 형태였다. 그는 신체의 여러 부위와 기관, 내장, 촉수 등이 섞인 듯한 형태의 옷에 솜을 넣고 부풀려 소프트 조각을 만들고, 장흥 벌판과 미술관, 갤러리 등에서 퍼포먼스를 벌인다. 1990년에는 이 소프트 조각을 입고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나리타공항을 거쳐 도쿄 시내를 배회하는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라는 거리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불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만 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일상에서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불,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1990, 12일간의 퍼포먼스, 《제2회 일·한 행위예술제》


이불의 ‘소프트 조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작업을 시작한 초기부터 자신의 ‘신체’를 작품의 매체로 선택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특히 ‘여성’의 신체에 초점을 맞추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선보였다. 인간의 신체는 생물학적인 ‘몸’을 넘어 정치, 사회, 문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존재로서의 주체다. 인간의 신체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담고 있기에 신체가 경유하는 다양한 상황은 작품에 다층적인 의미를 만들어 낸다. 특히 이불의 신체는 ‘여성’, ‘아시아인’, ‘작가’라는 정체성을 지니며, 이러한 정체성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매체가 된다. 즉, 이불에게 자신의 신체는 고유한 예술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임과 동시에 그의 예술적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메시지로도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를 주로 탐구하면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불은 1990년대부터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특히 ‘아시아’ 여성의 타자화된 이미지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는데,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에서 선보인 <장엄한 광채(Majestic Splendor)>가 그 예다. 이불은 날생선에 스팽글과 비즈 같은 반짝이는 장식물을 바늘로 꿰매 비닐에 넣고 그대로 방치시켰다. 처음에는 생선이 장식된 채로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악취를 풍기며 부패했고, 결국 주최 측에 의해 철거되기에 이른다. 생선의 살에 놓인 바늘땀들은 여성의 신체에 가해진 사회의 억압을 드러낸다. 바느질을 사용하는 작업은 ‘공예’로 간주되어 예술에 속하지 못했지만, 이불을 비롯한 여성 작가들은 공예를 통해 여성의 위상을 높일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또한 ‘시각’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계에 ‘후각’이라는 감각을 불러들이면서 제도와 권위를 공격한다.  


이불, <장엄한 광채(Majestic Splendor)>, 1997, 생선, 시퀸, 과망간산칼륨, 폴리에스테르백(사진: Robert Puglisi).


이불의 초기 작품들은 여성의 신체를 형상화한 조각과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었다. 여성 신체의 한계에 초점을 맞추고,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억압과 관습을 고발한 작품이 많았다. 이러한 연유로 이불은 줄곧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되곤 했지만, 그는 점차 ‘여성’의 신체를 넘어 ‘인간’의 신체를 탐구하며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에 질문을 던진다. 1997년부터 시작된 <사이보그> 연작에서는 신체의 진화를 다루며 신체와 테크놀로지의 관계를 탐구하기도 했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가 지닌 한계 때문에 기계와 같은 다른 유기체와의 결합을 욕망한다. 이불은 기술로 매개된 미래의 인간을 통해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위상을 논한다.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불의 작품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는 반응도 종종 있다. 우리는 실제로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볼 때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 이불은 서로 상충되는 요소들을 병치(竝置)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질적인 것들로부터 유발되는 엇갈린 반응 또한 이불 작품의 의도 중 하나다. 매료와 공포, 유혹과 거부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불의 작품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여성,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그리고자 한 작가 이불. 그는 자신이 작품이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도록 의미를 열어둔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미래 인간의 신체와 서사를 읽는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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