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의 진짜 의미

by 와이아트



현대미술은 어렵고, 낯설고,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흔히 접하는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개념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작품과 소통하는 것이 올바른 감상법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난해한 작품들을 소화하다가 장벽에 부딪히거나, 현대미술 자체에 거부감과 적대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작품 감상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안내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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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해 ‘도슨트(Docent)’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도슨트’는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이끌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전시를 설명하는 안내자를 말한다. 오늘은 도슨트의 유래와 역사, 전시 해설의 역할과 활용법, 그리고 직접 도슨트로 활동하는 방법까지 도슨트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도슨트의 유래


과거의 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한다는 개념보다는 귀중한 물건을 소장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부호인 메디치(Medici) 가문이 여러 유물을 모으는 행위에서 미술관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스투디올로(Studiolo)라고 불리는 서재에 자신의 소장품들을 진열하곤 했다.


1535628023172289-tribuna-3-.jpg 대표적인 스투디올로인 트리부나(Tribuna) (출처: 우피치 미술관)


스투디올로를 지나 16세기 말에는 ‘뮤지엄(Museum)’과 ‘갤러리(Gallery)’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먼저 ‘뮤지엄’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9명의 뮤즈 신전인 뮤제이온(Museion)에서 나왔는데, 미술, 철학, 문예의 여신인 ‘뮤즈(muse)’를 위해 제사를 바치는 신전을 의미한다. 긴 홀의 형태인 ‘갤러리’는 웅장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고, 한 번에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Antiquarium_Residenz_Museum_München_25-1-2017_10-36-46.JPG 뮌헨의 앤티쿼리움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러니까 과거의 미술관은 소수의 엘리트나 컬렉터를 위해 존재하면서 미술품을 수집·보존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18세기 중반 즈음 개인이 소장한 작품들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박물관이 등장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도 이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Picasso-Ringgold_503_032_final-new crop.jpg 뉴욕현대미술관 (출처: MoMA)


20세기 이후 사회가 급변하면서 미술관은 대중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일뿐만 아니라 미술 관련 지식과 정보를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역할을 병행하게 된 것이다. 1793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유물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교육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1845년 영국에서는 박물관의 자료를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시작했다.


‘도슨트(Docent)’라는 개념도 여기서 나왔다. 도슨트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된 것으로, 1907년 미국 보스톤 미술관의 벤자민 입스 길먼(Benjamin Ives Gilman)이 미술관에 교육적 역할과 기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이때 ‘도슨트’가 ‘미술관의 전시해설가’라는 명사로 사용되면서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installation-srgm-nick-cave-forothermore-2022-23.jpg (출처: 구겐하임 미술관)


국내에서는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도슨트가 처음 도입이 되었다. 대학교 중에서는 이화여대박물관이 처음으로 도슨트 제도를 받아들였다. 전문적인 도슨트 교육을 통해 전시를 해설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삼성미술관을 출발점으로 한다.




도슨트 활용법


나는 개인적으로 도슨트의 전시 해설을 즐겨 든는 편이다. 설명을 들으면서 한 번 전시를 훑고, 그 다음 다시 처음부터 다시 전시를 찬찬히 감상하곤 한다. 지금까지 수십 차례 전시 해설을 접했었는데, 실망스러웠던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지식 전달만이 도슨트의 주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미술, 특히 현대미술 작품을 보다 풍부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이나 배경 지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도슨트는 예술 작품에 대해 단순히 해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재해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뮤지엄은 우리들의 관심을 일깨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연구소이며, 이는 인간으로 살아감에 있어 생존을 위한 우리들의 욕구에 대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곳이다.”
- 딜론 리플리(S. Dillon ripley)·작가


2016_Tour_Docent1.jpg (출처: Nevada Museum)


도슨트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관람객들의 감상 활동을 풍부하게 하여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전시에 흥미와 참여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도슨트는 큐레이터의 기획 의도를 이해하고 작품과 감상자를 매개하면서 의사소통한다.


실제로 도슨트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의사소통에 있는 듯하다. 도슨트는 작품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중간에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많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때 도슨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도 던지는 것이 작품 감상을 보다 즐겁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merlin_196362756_d2214e5d-3e00-40f9-93a6-ff410fde38b0-mobileMasterAt3x.jpg (출처: Art Institute of Chicago)


“예술의 아름다움이 작품 향수를 통하여 퍼져나가 사람의 마음에 메아리칠 때 예술은 그 몫을 다한다. 이것이 미학에 있어서 작품해석이다.”
- 조요한·예술철학자


미술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작품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관점을 확장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의견이 통찰을 주기도 한다. 도슨트를 중심으로 하는 의견 교환은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공존하는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포스트 뮤지엄(Post Museum)


앞으로 미술관의 형태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도슨트의 역할도 조금씩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미술관은 관람객이 전시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개입을 강화하는 형태가 될 듯하다. 이 같은 변화의 양상을 ‘포스트 뮤지엄(Post Museum)’이라고 부른다.


포스트(post-)는 ‘이후-’를 뜻하는 말로, ‘포스트 뮤지엄’은 21세기의 새로운 미술관의 형태를 의미한다. 앞서 살펴본 스투디올로 형태의 뮤지엄이 1세대, 화이트 큐브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관이 2세대, 현재 우리가 접하는 현대미술관이 3세대라면, 포스트 뮤지엄은 가치를 생산하는 실험적인 장소로서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4세대 미술관을 지칭한다.


포스트 뮤지엄은 현재 정립되고 있는 개념이기에 어떤 형태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술관의 가치에 관람객의 일상적 경험이 어우러져 미래를 위한 잠재력을 발굴하는 창조의 장소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123.jpeg 신소장품전 연계 예술가의 런치박스 : 이우성, 2019.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요즘의 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한다는 행위만으로 의미가 평가되지 않고,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체험과 해석, 반응과 같은 관람객 중심의 요소들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전통적인 뮤지엄의 역할에서 벗어나 관람객과의 관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인데, 참여와 소통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히게 된 것이다.


“포스트 뮤지엄은 관객을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 또는 뮤지엄 발전을 위한 창조적 동반자로 인식하며 뮤지엄과 관객의 쌍방향 소통을 전제로 하는 관객 논리를 재개념화 하고 있다.”
- 김홍희·前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76768.png 아트랜드, 너는 누구니?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포스트 뮤지엄에서는 도슨트의 역할도 진화할 것이다. 단순히 미술관과 관람객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을 미술관의 가치에 개입시켜 공동체적 발전을 꾀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뛰어 넘어 자기주도적 체험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전시된 작품을 직접 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작품과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예술 작품과 소통하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통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관람자의 관심사와 가치관 등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재구성되기도 한다.


미술관에서의 관람 행위는 ‘무엇을 볼 것인가’에서 ‘무엇을 느꼈는가’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미술관들에게는 관람객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 되고 있다. 도슨트는 전시를 둘러싼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관람객에게 전달하면서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고 관람객의 내면에 감상 경험을 축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도슨트를 매개로 작가의 의도와 자신의 감응을 매개로 사고를 갱신하며, 전시 관람을 통해 삶의 지평을 조금 더 넓히는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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