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대표작 5점

by 와이아트


“소를 그린 화가”, “비운의 천재”,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이중섭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작품 앞에서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시대의 암울한 질곡에서도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중섭(1916-1956)은 힘들고 어려웠던 삶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정직한 화공’이자 일제강점기부터 ‘소’를 그려낸 민족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살아 있을 땐 큰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에 그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국민화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전시가 열렸었는데,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진행된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전 이중섭 1916~1956》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중섭의 작품을 연대기별로 전시해서 그의 작품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는데, 당시에도 관람객이 상당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현재는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쓰다, 이중섭》 (2026.1.30. ~ 6.14.) 전시가 열리고 있어 관람이 가능하다.




1. <세 사람>(1942-1945)


이중섭은 가난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평안남도 평원군의 대대로 부를 누리던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중섭의 외할아버지는 농공은행의 은행장이었고, 할아버지는 집안의 재산을 크게 불려놓은 분이었다. 어머니는 여장부 기질에 예술적 재능을 가졌던 데 반해 아버지는 병약하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울한 기질은 아버지로부터, 예술적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섭은 오산학교에 다니던 시절 예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때 훗날 아내가 되는 마사코도 만났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구의 미술경향을 접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세 사람.jpeg 이중섭, <세 사람>, 1942-1945.


<세 사람>은 현재 남아 있지 않은 그의 후기 작품들을 유추해볼 수 있는 드로잉이다. 엎드리고, 쪼그리고, 드러누운 자세의 세 인물을 화면 가득 그린 작품으로, 인물의 사실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세 인물은 하나의 화면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보지는 않고 있는데, 쓸쓸해 보이는 배치와 함께 무수히 겹쳐진 연필 자국에서 당시의 고뇌와 무력감, 허무감 등이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맨 앞에 누워있는 소년의 왼손과 왼발은 유독 짙은 선으로 강조돼 있다. 힘찬 선 때문인지 그림이 그저 쓸쓸하게만 다가오진 않는데, 암울한 현실에 맞서려는 의지도 느껴진다.


화면의 여백에 그어진 수평의 선도 유심히 살펴보자. 화면에 단조로움을 없애고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이중섭은 ‘선’을 잘 쓰는 화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어떻게 선을 긋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2.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1950년대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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