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
- 알랭 드 보통·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슬픔이 주는 기쁨」이라는 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언급한다. 황량함을 묘사하는 그림이지만 그림 자체가 황량해보이지는 않는다고. 호퍼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개인이 혼자 감당하던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우리는 슬픈 감정이 들 때 슬픔을 다룬 책을 읽거나 슬픈 노래를 들음으로써 치유를 받곤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슬픔을 다루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도 바로 이러한 의미가 아닐까 한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인 회화로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광고, 포스터, 화보 등을 통해 패러디가 많이 되어서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호퍼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 뉴욕의 분위기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920년대 뉴욕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던 시기였다. ‘재즈 시대(Jazz Age)’라고도 불리는 이 시기는 ‘산업화, 도시화, 기계화’로 요약해볼 수 있다.
당시의 도시인들은 들뜬 사회 분위기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인구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적 변화의 이면은 늘 존재하게 마련이다. 문명으로부터 느끼는 소외나 빈부 격차에 따른 박탈감, 군중 속의 고독 등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1929년 대공황과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사회적 분위기를 다시금 침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그 시대 현대인이 겪고 있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잘 대변하는 것이었다. 호퍼는 적막만이 감도는 뉴욕의 풍경과 그 밖의 고독한 시골 풍경들을 화면에 담았는데, 이를 통해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표현한다.
호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함께 감상해보자. 호퍼가 계속해서 탐구해오던 ‘소외’와 ‘고독’이라는 주제를 집약시킨 작품이다. 밤새 영업하는 한 레스토랑을 묘사한 이 그림은 현대 도시인의 삶과 심리적 불안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에 주목해보자. 식당 천장에서 내려오는 환한 빛이 테두리처럼 이들을 감싸고 있지만, 개개인의 행동은 서로 완전히 분리돼 있다. 한 공간 안에 존재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따로 떨어져 있는 모습인데,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이 그림은 내가 밤거리를 어떻게 상상하는지에 관해 잘 보여준다. 특별히 고독한 장소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나는 화면을 극도로 단순화했으며, 레스토랑을 더욱 넓게 그리려 했다. 아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에서의 고독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 에드워드 호퍼
식당 테이블 모서리 쪽에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신사는 남녀 커플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지만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이 중앙의 빛을 많이 받고 있는 반면, 이 신사는 밖의 어둠에 스며들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호퍼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남녀 커플은 동행으로 가까이 앉아있기는 하지만, 역시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다. 여성은 돈으로 보이는 종이를 손에 쥐고 있고, 남성은 자신을 향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웨이터에게 반응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인물들은 서로 소통을 하지 않은 채 한 공간에 단지 물리적으로만 존재한다.
“이 그림은 어떠한 사회문제나 개혁운동, 대망을 품지 않은 채 고요하고 무사태평한 주변 상황 안에서 매우 역동적인 힘이 존재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 프레드릭 스위트(Frederick Sweet)·큐레이터
호퍼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통해 심리적인 단절과 고독, 불안, 무관심, 황량함과 같은 감정을 표현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미국의 사회적 상황은 상당히 복잡했기에 급변하는 사회에 존재하는 개인은 소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호퍼는 이러한 시대적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우리에게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고 있지만, 다른 작가들보다 비교적 늦게 명성을 얻었다. 1년에 한 두 번씩 전시에 참여하는 등 계속해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1924년에 프랭크 렌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33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개최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60여 년의 작품 활동 기간 동안 계속해서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주제로 다루었다. 이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다는 특징이 있다. 사실주의는 미술이 삶으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인데, 소재가 우아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어떤 생명력을 담고 있다면 기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름답든 아니든 간에 진실하고 강렬한 내용을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냥감 찾듯이 찾으라.”
- 로버트 헨리(Robert Henri)·미국 화가
호퍼가 그린 그림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의 이미지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외 다른 지역을 그린 시골 풍경들이다. 호퍼는 평생 뉴욕에 거주했는데, 여름이 되면 지방의 소도시에 방문해 새로운 풍경을 담아오곤 했다.
호퍼가 그린 시골 풍경을 먼저 살펴보자. 그는 다양한 지역의 모습을 담아냈지만, 호퍼 특유의 화면 구성은 특히 철도 이미지에서 잘 드러난다. <철길 옆의 집>을 보면 덩그러니 놓인 집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자세히 보면 기차의 창을 통해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포착한 스냅사진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낮은 시점에서 집을 바라본 구도 때문에 집의 하단부는 잘려 있고, 그 대신 기차의 선로가 화면을 가로지른다. 관람자의 시선은 불안하게 표류하게 된다.
<철도 건널목> 또한 철도의 이미지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그려낸 작품이다. 철도는 기계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 사회를 묘사하는 것으로, 호퍼는 이중에서도 지방 도시의 ‘소외’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철도는 물품을 수송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도시로의 이동에 따른 외곽 지역의 소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철로의 이미지를 통해 물질문명과 기술이 만들어낸 신화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당시 많은 작가들이 산업화를 예찬한 모습과 대비된다. 철도라는 상징을 통해 쇠퇴해가는 지방의 현실을 표현한 호퍼의 그림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이유이다.
도시 이미지를 담은 작품들도 함께 보자. 그는 <도시>에서 적막한 뉴욕 거리를 담아냈다. 보통 뉴욕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는 뉴욕의 오래된 건물을 잘려나간 고층 건물과 함께 배치함으로써 다른 작가들이 주목하지 않던 뉴욕의 이면을 그려낸다.
호퍼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아파트에서 풍경을 관찰하기도 하고, 전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보이는 도시 이미지들을 담아냈다. <윌리엄스버그 다리에서>라는 작품 또한 그가 관찰한 뉴욕의 풍경이 돋보이는데, 화면 속 가장 높은 건물의 창문을 보면 누군가가 창가에 기대 앉아있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도심 한 가운데에 있지만 고독한 모습으로 존재하죠. 호퍼는 이처럼 ‘군중 속 고독’이라는 주제를 표현해낸다.
“예술의 임무는 자기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깨닫는 일이며, 독립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다.”
-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은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처럼 보이지만, 소외의 분위기를 드러내면서 보는 이에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낙관적인 세계관이 주를 이루고 있을 때 그 이면을 파고들어 진실을 탐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미 느꼈을 테지만, 그의 작품은 비관적 태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부정적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화려하게 포장된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미술의 역사상 뛰어난 작품은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그 시대를 반영한다. 단순히 미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시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당시 미국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시각은 화려하게 포장된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이자,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으로 읽힌다. 특히 거대 도시 속에 고립되어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소외’와 ‘고독’을 표현해낸 것은 현재까지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