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회화로 번역하는 방법

by 와이아트



유근택은 지난 30여 년간 ‘동양화’의 전통적 개념과 방법론을 동시대의 언어로 전환하는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이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을 뛰어넘어 회화의 전통과 혁신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해왔다고 말한다. 변증법은 하나의 주장(정)에 반하는 주장(반)을 대립시키고, 이 둘의 갈등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통합(합)으로 나아가는 사유 방식을 뜻하는 용어이다.


여행.png 유근택, <여행>, 2012. (출처: nook gallery)


실제로 유근택은 동양화를 대표하는 재료인 ‘한지’와 ‘수묵’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 재료를 통해 관념적 차원의 동양미나 진리를 화폭에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는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호흡하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회화화 될 수 있는가”를 작업의 화두로 삼아왔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처럼 그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일상’을 담아내는 회화를 선보여왔다.




일상의 회화


물론 동시대 미술가들이 ‘일상’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 것이 그리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양화’를 방법론으로 하는 작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구로부터 현대미술이 유입된 이후 동양화단에서는 계속해서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화두로 삼았다. 서양화 작가들이 보다 자유롭게 작업세계를 펼치는 동안, 동양화 작가들은 ‘전통’을 어떻게 변용할 것인가에 매달렸다. 동양화를 평가할 때도 전통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다 보니, 동양화 작가들에게는 다소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풍덩.jpg 유근택, <풍덩!>, 2012. (출처: nook gallery)


하지만 유근택 작가는 ‘한국성’이나 ‘세계화’라는 거대 담론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이는 현대미술의 도입 이후 한국화 분야에서 호명된 ‘전통과 현대’라는 경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표명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일상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유근택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와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관해 작가 자신이 느낀 점들을 담담하게 회화로 담아낸다. 객관적인 대상에 주목하는 ‘서양화’와 풍경을 통해 관념의 세계를 오가는 ‘동양화’의 주제가 교차하는 지점에 ‘일상’이라는 키워드가 있는 것이다.


“그림이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어떤 중심적인 힘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조건들 속에서 나의 ‘호흡’, 나의 ‘태도’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삶, 그리고 그와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몸, 이 둘 사이에서 형성된 체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관점이 된다.”
- 유근택


스크린샷 2026-04-20 오후 10.37.35.png 유근택, <할머니>, 1995.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유근택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동양화가 송영방(1936-2021)의 그림이 실린 책을 보며 동양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키웠고, 실제로 산수화를 모사해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중학교 시절 미술 교사가 유근택의 재능을 알아보고 산수화가인 소산 김은집(金銀集)을 소개했으며, 학교 복도에서 《유근택 개인전》을 열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402084_55279_575.jpg 1982년 제1회 가을 대한민국미술대전 시상식에 교복을 입고 간 유근택과 그가 출품한 <휴>. Ⓒ Yoo Geuntaek


유근택은 17살 때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 <휴(休)>(1982)를 출품하여 입상하기도 했다. 농가의 헛간 외벽을 수묵담채로 완성한 그림으로, 나이테, 지게, 짚으로 엮은 멍석, 웅크리고 잠든 강아지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격 미달로 입상이 취소되는데, 요강에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든 출품할 수 있고,다만 중고생 및 대학생은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84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한 유근택은 지필묵(紙筆墨)에 근간을 두고 공부해나갔다. 지필묵은 동양화의 기본 매재로, 한지, 붓, 먹을 의미한다. 유근택은 공모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1986년 《동아미술제》 등에 출품하여 입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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