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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아트 Feb 16. 2022

대지미술 : 풍경과 대지를 담은 캔버스 (상)

프랑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이 은청빛의 천으로 뒤덮였다. 설치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Christo Javacheff, 1935~2020)가 1961년부터 아내 잔느-클로드(Jeanne-Claude, 1935~2009)와 함께 구상해온 작품 <포장된 개선문(L'Arc de Triomphe, Wrapped)>이 60여년 만에 현실화된 것이다. 크리스토와 클로드 부부는 그동안 파리 퐁네프 다리,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등 공공건축물을 포장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포장된 개선문>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 크리스토가 세상을 떠나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지만, 그의 조카인 블라디미르 자바체프와 프로젝트 팀이 진행을 지속하며 지난 9월 18일 완성된 작품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 <포장된 개선문>, 파리, 1961-2021. (출처: 작가 홈페이지)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파리 샤를 드골 광장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개선문을 포장하는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부부의 프로젝트는 그들이 파리에 도착한 1961년 시작되었는데, 스케치와 포토몽타주 작업 등을 지속해오다 2019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프로젝트를 승인하고 같은 해 시에서도 허가를 하면서 진행이 본격화된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의 작품은 길어야 2주 간 전시한 뒤 모두 철거하는 것이 특징이다. <포장된 개선문>도 약 보름간만 유지되었다. 이들은 어마어마한 설치비용이 드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함에도 국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토의 작품 등을 판매해 프로젝트 비용을 충당해왔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가 개선문 프로젝트를 포함해 평생에 걸쳐 ‘포장예술(Wrapping art)’을 선보인 것은 포장이라는 행위를 통해 기존의 것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을 포장을 통해 보이지 않게 만듦으로써 그 안에 존재하던 건축물의 정치사회적 논리나 장소의 조건들을 드러나게 한 것이다. 크리스토가 ‘포장’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성장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1935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1952년부터 소피아 미술학교에서 회화, 건축, 무대디자인 등 광범위한 미술 교육을 받았다. 불가리아는 동구권에서도 공산주의 색채가 강한 나라로, 크리스토는 불가리아 정부의 주관 하에 이루어진 선전미술 운동에 참여하면서 공공적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56년 헝가리혁명 시기에 자유를 위협 받자 1957년 오스트리아로 망명하고, 1년 후 파리로 건너가 사실적인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유지를 하는 한편 시각언어로써 ‘포장’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1962년 생년월일이 같은 잔느-클로드와 결혼하여 1964년 미국 뉴욕에 정착하면서 그가 추구해온 ‘포장 예술’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잔느-클로드는 미술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평생 크리스토와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 Great Salt Lake, Utah, 1970. (출처: 작가 홈페이지)


1960년대 미국은 냉전과 흑인 인권 운동 등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사회현상이 표출되면서 미술계에서도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아트, 팝아트 등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사회적 불안과 기계화의 혼돈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연을 재발견하면서 풍경과 대지를 새로운 예술 표현 수단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인간 심리를 깊게 다루기 위해 캔버스를 선택했다면, 크리스토를 비롯한 대지미술가들은 자연 환경을 캔버스로 활용했다. 대지미술은 자연 경관 속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로, 1968년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이 <어스 워크(Earth Works)>라는 제목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대지미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대지미술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자연의 요소들을 전시장으로 옮겨온 유형, 둘째, 자연 환경의 요소를 절단하거나 채굴하는 유형, 셋째, 환경에 이질적인 외부 요소를 첨가하는 유형이 그것이다. 크리스토는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대지미술 작가로, 자연적인 차원을 넘어 문화적인 차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크리스토는 다른 대지미술가들처럼 자연을 산업화 시대의 피난처로 인식하거나, 과학기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이라는 장소에 사회적 맥락을 덧입힘으로써 자연과 문화를 종합하고자 했다. 그가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한 장소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도시환경, 다른 하나는 자연환경이다. 도시 작업에서 그는 박물관, 미술관, 도시의 산책로, 강을 연결하는 다리를 택했고, 자연 작업에서는 섬, 해안가, 계곡 등을 선택하였다. 두 공간은 모두 유동성과 자율성을 지니며, 시간적 개념을 포함한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 <포장된 해변>, Little Bay, Sydney, Australia, 1968-1969. (출처: 작가 홈페이지)


크리스토와 장-클로드의 <포장된 해변(Wrapped Coast)>은 자연경관을 이용한 작품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리틀 베이를 천으로 덮은 것이다.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작업 공간의 제한에서 벗어나 미술작품의 규격화를 거부하고 공간을 확장한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는 자연을 직접적인 오브제로 채택하면서도 전시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해 예술-환경-인간이 맺는 관계를 재설정했다. 이 작품을 마주하는 대중은 환경으로서의 삶의 공간을 인식하게 되고, 자연을 삶의 실재로서 직접 체험한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 <계곡의 커튼>, Rifle, Colorado, 1970-1972. (출처: 작가 홈페이지)


<계곡의 커튼(Valley Curtain)>은 콜로라도의 라이플 갭(Rifle Gap)에서 이루어진 작업으로, 1,250피트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산을 주황빛 커튼과 닻줄로 잇는 시도였다. 설치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실패했고 설치한 뒤에도 28시간 만에 돌풍을 동반한 모래바람으로 인해 찢어졌으나, 여러 미학적 유산을 남겼다. 생생한 주황빛의 커튼과 푸른 하늘, 녹색의 산은 색조의 조화를 만들어냈고, 커튼이 만들어내는 너울은 리듬을 더하며 자연에 떠다니는 파도 혹은 배처럼 바뀌었다. 작품 설치 과정에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시도도 돋보였다. 그의 작품은 여러 작업자들과 함께 엄청난 경비를 들여 설치되지만, 이내 곧 흔적도 없이 원상태로 철거된다. 이는 미술이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관람객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작품을 소유할 수 없다는 시실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도 작품을 사서는 안 되고, 아무도 작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되며, 누구도 작품을 보기 위해 입장료를 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작품은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 이유는 소유가 자유의 적이기 때문이다. 소유는 영구성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작품을 남겨둘 수 없다.”  - 크리스토 자바체프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 <둘러싸인 섬>, Florida, 1983. (출처: 작가 홈페이지)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의 또 다른 야심작은 마이애미 비스케인 만의 11개의 작은 섬들을 분홍빛의 천으로 두르는 <둘러싸인 섬(Surrounded Islands)> 프로젝트였다. 이들의 작업은 미술 외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프로젝트에도 해양 생물학자, 조류학자, 건축가, 변호사, 그리고 400여 명 이상의 작업자가 투입되었다. 그는 이처럼 작업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함으로써 집단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협업’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수행해나갔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 <포장된 퐁뇌프(The Pont Neuf Wrapped)>, Paris, 1975-85. (출처: 작가 홈페이지)


크리스토가 세계적으로 더욱 알려지게 된 작품은 파리의 퐁뇌프 다리를 황금색 천으로 포장한 <포장된 퐁뇌프>이다. 이 작품을 통해 대중들은 퐁뇌프 다리라는 장소에 직면해 그 장소와 관계맺음으로써 작품이 속한 공간에 영향을 받으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인식에 영향을 받는다. 크리스토 부부의 작품들이 다른 대지미술과 다른 독특한 지점은 대중의 참여에 있다. 크리스토 스스로 “나는 대중예술을 만든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일반 대중이 생활하고 있는 주변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작품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 <미—일 우산 프로젝트(The Umbrellas, Japan—USA)>, California, 1984-1991. (출처: 작가 홈페이지)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는 ‘포장’ 외에 ‘나열’이라는 작업 방식도 선보였다. 드럼통 등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특정한 장소에 벽을 만든 <철의 장막>(1961-1962)이나 뉴욕 센트럴파크에 전시된 <문>(1979) 등이 그 예다. ‘나열’의 방식을 사용한 또 다른 작품으로는 <미—일 우산 프로젝트(The Umbrellas, Japan—USA)>가 있다. 이들은 일본 이바라키에 1,340개의 우산을, 미국 캘리포니아에 1,760개의 우산을 설치했다. 이 설치 작업은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문화와 공간을 비교함과 동시에 그들의 패권을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예술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고자 했던 그의 일관된 메시지가 이 작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처럼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는 현실에 존재하는 오브제를 포장함으로써 사물의 존재를 지우고, 동시에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해방시킨다. 포장을 통해 어떤 사물을 감춘다는 것은 사물 특유의 속성을 지워버린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다. 또한 크리스토의 프로젝트는 기술적, 법률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겪으며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치는데, 이러한 결과물로 실현된 프로젝트는 2~3주 간의 비교적 짧은 기간만 전시된 후 철거된다. 짧은 기간 동안만 눈앞에 나타나는 작품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 강렬하게 기억된다. 도시환경과 자연환경이라는 두 공간에서 쉽게 실현시키기 어려운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현실화시킴으로써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 

https://froma.co/acticles/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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