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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아트 Sep 15. 2021

아우라를 내려놓은 예술작품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어지러운 시선이 밤하늘을 오간다. 그의 시선은 별빛과 달빛 사이를 지나 구름 사이에 머문다. 구름에서 멈출 만도 한데, 이내 시선은 다시 어지럽게 흔들린다. 그러다 하늘에 걸쳐있는 듯한 교회의 첨탑 끝에 시선이 닿는다. 그가 다시 커다란 흰 별로 시선을 옮기자, 관람객도 그를 따라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안으로 들어간다. 평면의 하늘이 아니다. 눈앞에서 변형되는 이미지다. 현재 나인블럭 김포점 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 중인 <반 고흐 인사이드 2>의 전경이다.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은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가 요양원에 있던 1889년에 그린 것이다. 별이 반짝이는 밤의 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황량하게 느껴진다. 원본에서도 그림 왼쪽의 커다란 샛별은 유난히 반짝인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73.7×92.1cm (출처: 뉴욕 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그런데 디지털로 구현된 밤하늘의 모습도 원본 못지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커다란 샛별 밖에 없는 시골 풍경을 보았다”라고 말했는데, 그림에 고흐의 말이 덧입혀져 남색 하늘의 빛나는 별이 한층 강렬해 보인다. 벽면에서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솟아나고 구름은 바닥에서 소용돌이친다.


출처: 나인블럭 홈페이지(9block.co.kr)


유일무이한 원본을 감상하는 전시가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아트 전시를 찾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미디어아트 전시에서는 기존 전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상호작용성’과 ‘몰입’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상호작용성은 관람자가 창작의 일부가 되어 작품을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미디어 아트에서는 관람자의 참여를 중요하게 여기며, 관람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기존의 미술작품이 관객에게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과는 달리, 미디어아트에서는 관람자를 작품 창조의 과정에 적극 개입시킨다. 이렇게 작품과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이 찾아온다. 미디어아트가 다른 전통적인 예술과 구분되는 주요 지점 중 하나는 관객에게 생생한 ‘몰입’의 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미디어아트에서 ‘몰입’이란 가상 세계에 현전하는 느낌, 즉 물리적인 입력과 출력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문득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반적인 전시에서는 완성된 작품만 감상할 수 있기에 관객은 작가의 기법이나 방식을 예측할 뿐이다. 그런데 디지털 전시에서는 작품의 드로잉 단계에서부터 완성 단계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여 보여준다. 전시장에 배치된 태블릿PC를 배경사진에 갖다 대면 가상의 붓이 나타나 그림을 완성하는 식이다. 뉴미디어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인 페터 바이벨(Peter Weibel, 1944~)은 뉴미디어 아트가 전통 예술과 다른 점을 ‘움직이는 이미지’에서 찾는다. 여기서 움직이는 이미지는 단순히 동영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벨이 말하는 ‘움직이는 이미지’란 ‘변형 가능한 이미지’다. 즉, 관람객의 반응에 따라 그림이 변형되는 것을 말한다.


<반 고흐 인사이드 2> 전시 전경.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예배당’이 그려지는 과정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그림 속 실제 장소를 3D 영상으로 추적하는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실재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전통 회화는 아무리 사실감을 극대화시킨다 하더라도 그 이미지를 현실적인 것으로 체험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한 작품은 비록 가상적이긴 하나, 생생한 실제 환경과 실시간으로 소통함으로써 작품 속의 환경이 실재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 Mona Lisa>가 어떤 순서로 그려졌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모나리자를 분석한다 해도 비슷하게는 그릴 수 있지만 똑같이 그릴 수는 없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마크 핸슨(Mark B.N. Hansen) 교수는 디지털 이미지가 아날로그 이미지와 다르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산 과정을 포함한다고 본다. 이처럼 작품의 생산 과정을 보여주는 미디어아트 작품은 관람객이 작품과 교감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디어아트 작품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열린 결론’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예술 작품에서는 관객이 완성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위치에 수동적으로 머물게 된다. 반면, 미디어아트 작품에서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예술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속에 개입되도록 만든다. 즉, 닫힌 체계로서의 완성품이 아니라, 열린 체계의 과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미디어아트가 전통 예술과 다른 점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러한 미완성은 곧 관객의 개입을 의미한다.


<반 고흐 인사이드 2> 전시 전경.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열린 결론을 가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예술 작품에는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술 작품에 아우라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래 우리가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미술관에 찾아갔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기술복제시대가 되자 예술 작품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변화하였다. 이제는 인터넷에 반 고흐를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고, 미디어아트로도 쉽게 반 고흐 그림에 몰입할 수 있다. 아우라의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아우라의 붕괴는 예술의 붕괴가 아니다. 벤야민은 기본적으로 ‘아우라의 붕괴’를 예술사에서의 진보로 판단한다. 즉, 예술이 현대 대중사회에 걸맞는 민주주의적 존재 방식을 취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복제기술이 가져온 가장 큰 특징은 ‘접근 가능성’이다. 벤야민은 복제된 것으로나마 예술 작품을 수용할 수 있게 된 점을 강조한다.


<반 고흐 인사이드2> 전시에서는 반 고흐의 그림 대부분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60여 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고흐의 일대기와 작품을 영화처럼 보여주는 미디어 홀의 작품은 이 전시의 백미다. 예술과 기술이 결합되면서 평면에 머물렀던 예술 작품은 3D 형태로 구현되고, 2D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정보를 관람객으로 하여금 채워 넣도록 유도한다. 작가와 관람객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출처: 나인블럭 홈페이지(9block.co.kr)


반 고흐 회화를 차용한 미디어아트 작품은 기존의 전통 회화 작품에 대한 접근 용이성을 높이면서도 관람객들에게 작품과의 일체화를 유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디어아트를 경험하는 관람객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원본의 아우라가 붕괴되어 관람객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아트는 성공적인 시도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위축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시된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다고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내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즐겁게 관람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흐의 그림을 이용한 미디어아트 전시는 고흐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든 적든, 몰입을 경험하며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그의 그림이 아름답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충분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 순서를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전시의 마지막에 배치된 미디어홀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면 마음 속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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