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 우리가 꿈꾸는 정의는 무엇인가

Musical Marie Antoinette 뮤지컬 마리앙투아네트 후기​

by 율무


7월 20일, 8월 4일, 8월 18일, 9월 4일 연공, 9월 29일

총 여섯 번의 마리앙투아네트 공연을 관람하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담았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시거나

이해하지 못하시는 부분이 담겨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고 포스팅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면서 느낀

세 가지 포인트


1.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 아르노’


2. <마리 앙투아네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


3. 가장 집중해서 본 인물인 ‘페르젠’


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속

유일한 창작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


“저들이 우리에게 거부한 걸

돌려주겠어, 정의!”



마그리드 아르노, 마리 앙투아네트와 동일한 이니셜(M.A)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유일하게 창작된 인물로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마그리드의 넘버인 <왜 너만 행복할까>의 가사에도 등장하듯이 마그리드는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받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마그리드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너는 최상, 난 최악/왜 너만 행복할까?”라고 생각하며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귀빈층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자고 결심합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 귀족들을 제외한 프랑스 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면 마그리드 아르노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극을 이끌어 가기 위해 기필코 필요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에게 아쉬운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그리드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출생의 비밀입니다. 이런 출생의 비밀이 극이 진행되는 전반적으로 굳이 필요했던 요소인지에 대한 아쉬움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요소가 혹시나 "마그리드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비슷한 출발선을 공유하고 있으며 결국 둘 다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출생의 비밀을 넣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을 본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뜬금없는 요소였습니다.


다른 아쉬운 점은 “여자는 감상적이잖아.”라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는 자코뱅 당원들이 마그리드 아르노를 자코뱅 당으로 받아들일 때 마그리드 아르노가 여자이기 때문에 반대하며 나온 대사입니다. “여자들은 감상적이잖아. 왕비를 동정할지도 몰라!”라는 자코뱅 당원의 말에 마그리드는 그렇지 않다며, 자신이야말로 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며 자코뱅 당원으로서 자신을 받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결국 혁명은 성사되었지만, 이 장면 이후 마그리드는 감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랑발 공주가 살해되어 시민들이 그 시체를 가지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에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을 때에도, 마그리드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동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여자는 감상적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다소 불편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이러한 감정의 동요는 동정이 아닌 그저 혼란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감옥으로 보내는 장면에서부터 자코뱅 당원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그녀가 하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 씌우고 시민들의 정의와 자유를 위한 일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그리드의 동요는 자신들이 꿈꾸는 정의를 이루기 위해 거짓 죄목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꿈꾸던 정의인가? 라며 느끼는 혼란스러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몰락>이라는 넘버에서 마그리드는 “내가 왜 그 여잘 동정하고 있지/우리의 배고픔 외면했던 그 여자”라고 말하며 감정의 동요와 혼란이 동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보기에 정유지 배우님이 표현하는 마그리드 아르노는 이 감정의 혼란이 납득되었습니다. 정유지 배우님의 발성이나 이미지가 김연지 배우님에 비해 어렸고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단 한 번도 윤택한 삶을 경험해보지 못하여 내가 추구하는, 내가 바라는 정의만을 위해 달려오며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트렸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게 진정 내가 원했던 정의인지, 이런 방식을 통해서 구현된 정의가 자신이 바라던 진정한 정의인지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2.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우리가 꿈꾸는 정의는 무엇인가”



분명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리의 비극적인 삶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극을 여러 번 본 사람으로서 아직도 마리가 불쌍하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을 한다면, 어느 정도 대충 짐작은 가지만 관객들은 어쩌면 한 번 보고 마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기에 곱씹을수록 너무 아쉬운 극입니다. 마리를 프랑스 백성을 위해 많이 생각하고 배려한 왕비로 묘사하고 싶었다면 드레스를 고르는 장면이나 트리아농에서의 사치 대신 시민들을 굽어살피는 장면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혁명을 일으키는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외국 군대를 이끌어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던 점은 마리가 현명하고 어진 왕비였다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마리의 비극을 보여주려고 만든 것인지,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곱씹어보라고 만든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마리와 페르젠의 사랑도 표현하고 싶었고, 마리의 비극적인 삶도 표현하길 원했고, 진정한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싶은 나머지 전반적으로 극이 어수선했다고 느꼈습니다. 이것은 극 중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낸 배우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페르젠, 있는 그대로의 마리를 사랑한

그 시대의 로맨티시스트


“내가 사랑한 건 오직 너야

난 왕비가 아닌 널 사랑한 거야.”



페르젠은 오를레앙이 주최한 파티에서 마리와 재회를 하게 됩니다. 이때 페르젠은 마리에게 혁명을 지켜보았다고, "때로는 이 세상의 법과 총보다도 신념과 말이 더 강력할 수 있다"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후 빵집을 털고 시민들에게 빵을 나눠주어 바스티유 감옥으로 끌려갈 뻔한 마그리드가 풀려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때 페르젠은 마그리드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페르젠은 이 장면에서 마그리드를 포함한 프랑스 시민들의 표정에서 혁명의 전조를 읽었습니다. 이후 트리아농에서 마리와 만났을 때 마리에게 경고합니다.


다시 말해서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를 페르젠은 마리보다 일찍 들었고, 이를 마리에게 경고해줍니다. 페르젠은 유일하게 마리에게 혁명의 전조를 알리고 경고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리아농을 비롯한 자기만의 유토피아에 빠져 있는 마리에게 현실을 알리고 앞으로 있을 위험으로부터 마리를 구출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페르젠은 마리를 사랑했습니다.


마리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던 마그리드를 찾아가 그녀를 도와 회유하려 하고, 마그리드와의 대화를 통해 프랑스 또한 시민이 일으킬 혁명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 수차례 마리에게 경고하고 조언합니다. 자신의 개인부관이 되어달라는 마리의 부탁에 대한 거절도, 추기경에 대한 고소 취하를 조언하는 것도, 모두 마리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는 페르젠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는 것인지 혹은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철없게도

페르젠에게 개인부관이 되어달라고 명령하려 하기까지 합니다. 사실상 마리는 페르젠이 개인 부관으로서 자신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보다 부관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곁에 페르젠을 두고 눈치 보지 않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페르젠이라는 주제에서 다소 떨어진 이야기이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부터 안하무인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마리가 불쌍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여담을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사실 다른 나라에서 무대에 올라가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페르젠을 이렇게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악셀 폰 페르젠 백작을 페르젠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악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요. 부르는 호칭을 바꾼 것은 확실히 페르젠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기 위해 노력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페르젠 역할에 대해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페르젠의 명대사 중 하나인 “이 공원에서 11년 전에 만난 바로 그 사람이죠.”라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는 마리와 페르젠이 트리아농에서 싸운 이후 만난 가면무도회에서 하는 첫 대사입니다. 도영님이 표현한 페르젠(이하 도르젠)을 제외한 모든 페르젠이 ‘11년 전’이라는 대사를 말하고 있는데, 도르젠(도영 배우님이 맡은 페르젠을 칭함)만이 유일하게 11년 전을 ‘오래 전’이라고 수정해서 표현하셨는데요. 저는 11년 전과 오래 전이 주는 감성이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은 그저 ‘내가 당신을 오래 봐왔지~’하는 느낌이라면, ‘11년 전’은 왠지 페르젠이 마리와의 첫 만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최근에도 이따금씩 마리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는 느낌을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해서 떠올리는 느낌을 줌으로써 페르젠이 얼마나 마리를 사랑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도영 배우님이 소화하시는 페르젠의 해당 대사는 도영 배우님의 나이대에 맞게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감미롭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10년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아닌 구체적으로 11년이라고 명시함으로써 마리와의 첫 만남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대사는 마리와 페르젠 사이 사랑의 깊이를 단 번에 알 수 있게 하는 문장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관람하며 다루고자 했던 주제들입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관람하면서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지, 또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인물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어 행복했고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이 글은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관람자분들의 생각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