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延吉 故事 9

by 제이킴

종합예술인


지점 직원들은 한족 1명에 운전기사 포함 조선족 3명 그리고 나까지 5명이 근무한다.

초기 근무 시절은 주 2회 운항이었으니 비교적 시내 영업과 공항 근무의 비율이 적절했다.

부임 후 다음 날 오전부터 대리점으로 판매활동에 들어갔다.

회사 사무실도 연길 시내 중심 호텔에 있었고 대리점들도 손님들의 동선을 감안하여 시내 주요 지역에 포진되어 있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녀도 무방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시간 절약이나 의전이 필요한 경우이고 그 외는 걸어 다니는 것이 오히려 자유롭고 활동에 제약이 덜하다.

사무실 뒤 편 거리에 시장 골목이 있어서 가로지르듯 지나가면 연변 특산품 상가와 지역별 음식점 그리고 제철 과일이나 해산물들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무실 건물에 있는 1번째 대리점은 아침에 방문했으니 점심 먹고 오후에는 2번째 대리점에 갔다.

한족 대리점 사장으로 나보다 1-2살 형님 뻘인데 사무실에 들어가서 신임 지점장이라고 소개를 하자 반갑게 맞이하면서 앞으로 협력관계를 잘하자며 즐거운 다짐을 하고 나왔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거리에 사무실이 있는 것을 보면 사업 센스가 있어 보였다.

나중에 소식을 들어보니 일본유학원을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그때도 일본 여행객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짧은 머리에 훤칠한 체형이 잘 관리된 중년의 모습이었다.

직원들은 여동생을 중심으로 판매관리를 하고 있었고 한족과 조선족 비율은 반반이었다.

여직원 중 조선족 아가씨가 있었는데 사촌 동생처럼 내가 들릴 때마다 반갑게 대해 주었다.

메인 도로 양측에 늘어선 건물에는 대리점이 5군데 정도가 있었고 도시 전체로는 약 10여 곳이 협력사로 최소 월 1회 이상 방문을 영업활동의 기준을 정하고 반가운 만남들을 가졌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구분 없이 사회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며 어느 경우는 저녁에 술자리가 없어도 별무리가 안 되는 女 사장님들과 주로 점심이나 가벼운 저녁식사를 하게 되는데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男 사장님들과는 약속을 해도 주로 저녁에 집중되며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한국인 정서상 영업에 술이 빠지면 만남이 건조해서 오랜 시간을 같이 하기가 힘든 경우도 있었고 그때 당시 나를 동생처럼 또는 친구처럼 대해 준 사장님들과 지금도 한족/조선족 구분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연락을 해서 근황과 현지 상황에 대하여 문의를 하곤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동문들


연길에서 사업하는 대학 동문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매우 반갑게 지냈으며 빈번하게 연락을 하게 된다.

연변지역 한국인 소식을 전하는 월간지 발행인이 대학 후배로 자주 만남을 갖게 되었고 부임 초기 연길 생활의 선배로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이 후배의 부인도 동문 후배라서 부담 없이 잘 지내게 된다. 둘은 학생 때 교제를 시작하여 아름다운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져 연길에서 사업을 잘하는 것을 보면 신통방통하다.

삼계탕으로 유명한 식당을 하는 동문 선배님이 계셨다.

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사업가 남편을 따라서 연길 초기에 정착하여 연길에서 한국인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신 분이다. 나중에 여동생 부부도 함께 합류하면서 사업가 가족들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지점 사무실과 가까워서 전날 음주의 해장과 환절기 몸보신을 하러 자주 들리게 된다. 특히 본사나 개인적인 지인들이 찾아오면 지하 특실을 예약하고 한방 삼계탕을 대접하면 다들 잘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연길에 다시 가게 되면 반드시 들려야 할 맛 집 중에 한 곳이다.


한인회


연길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교적 언어의 제약이 적고 초기 중국 개방 시점에는 특히 사업하는 한국인들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초기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조선족(이후, 동포) 입장에서도 한국과 수교 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기회였고 이러한 우호적인 분위기는 결국 한/중 관계 증진에 큰 작용을 한다.

내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상회로 인사를 드리려 갔다.

사무실 건물 안에 위치하여 자주 들리게 된다. 회장님/총무님은 연길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면서 많은 한국인의 사업과 복리를 돌보고 있었고 훗날 심양 영사관이 생기기 전까지 외교/무역대표부와 같은 다양한 임무로 연변지역 한국인들에게 다각적으로 지원을 하게 된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분들로 지점영업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연길과 연변 지역 내 사업을 하거나 의료, 선교, 교육 심지어 탈북자 지원단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연길 시내에 한국인 식당은 약 5곳 정도가 성업 중에 있었으며 나중에는 지인들이나 손님들이 오면 자연스럽게 식당을 순환하면서 식사를 하게 된다.

한결 같이 따뜻하고 정성으로 보살펴 주셨다.



综合艺术家


分店职员有1名汉族和包括司机在内的3名朝鲜族,还有5名我。

初期工作时期是每周2次航班,因此市内营业和机场工作的比率比较合适。

上任后的第二天上午开始作为代理店进行销售活动。

公司办公室也在延吉市中心酒店,代理店也考虑到客人的移动路线,分布在市内主要地区,一般街道步行也无妨。 乘车移动需要节约时间或礼宾,除此之外,走路反而更自由,对活动的限制更少。

办公室后面的街道有市场胡同,像横穿一样经过的话,可以欣赏到延边特产商街、各地区餐厅以及时令水果和海鲜。

办公楼的第1家代理店是早上来的,吃完午饭下午去了第2家代理店。

作为汉族代理店社长,他是比我大1-2岁的哥哥辈,进入办公室介绍说他是新任分店长时,他高兴地迎接,并愉快地决心说:"以后要好好发展合作关系。"

在人流量大的街道上设有办公室,看起来很有事业感。

后来听到消息后,听说在运营日本留学学院,我记得当时也有很多日本游客。 这是一名短发和修长的体型管理得很好的中年人。

职员们以妹妹为中心进行销售管理,汉族和朝鲜族的比例各占一半。

女职员中有一位朝鲜族姑娘,每次听到我像堂弟一样亲切地对待我。

在主道路两侧排列的建筑物中,有5家左右的代理店,整个城市约有10多家合作公司制定了每月至少访问1次以上的营业活动标准,并举行了愉快的会面。

中国一般无论是男性还是女性,对社会活动都非常积极,有些情况晚上即使没有酒席,也主要和没有多少负担的女老板一起吃午饭或简单的晚餐,这对我来说真是万幸。

男 即使和老板们约定,也主要集中在晚上,有时无法避免酒席。

而且,在韩国人的情绪上,如果陷入营业状态,有时见面会很干燥,很难长时间在一起,而且当时把我当作弟弟或朋友对待的社长们,现在不分汉族/朝鲜族,都保持着良好的关系,必要时还会联系询问近况和当地情况。

真是美丽的缘分正在延续。


同门们


在延吉做生意的大学校友们首先站稳脚跟,所以非常高兴,而且经常联系。

报道延边地区韩国人消息的月刊发行人作为大学后辈经常见面,上任初期作为延吉生活的前辈给了我很多帮助,这位后辈的夫人也是同门后辈,所以相处得很好。 两人从学生时代开始交往,结下了美丽的夫妻缘分,在延吉做生意,真是了不起。

有一位开一家以参鸡汤闻名的餐厅的同门前辈。

曾任学校老师,后来跟随企业家丈夫在延吉初期定居,成为延吉代表韩国人的象征。 后来妹妹夫妇也加入进来,以企业家家族闻名。

因为离分店办公室很近,所以前一天经常来解酒和换季时补身。 特别是看到总公司或个人熟人来访时,预约地下特室,招待韩方参鸡汤的话,大家都很喜欢吃的样子,我也不是一两次心情变好了。

这是以后如果再去延吉的话一定要去的美食店之一。


韩人会


延吉从韩国人的立场来看,语言限制较少,在初期中国开放时期,形成了优待做生意的韩国人的氛围,对初期定居有很大的帮助。

从朝鲜族(以后,同胞)的立场来看,与韩国建交后维持良好关系是相互共存的机会,这种友好的氛围最终对增进韩中关系起到了很大的作用。

我上任没多久,就到韩国商会去请安了。

位于办公楼内,经常光顾。 会长/总务在延吉起到了元老的作用,照顾了很多韩国人的事业和福利,在日后沈阳领事馆成立之前,将通过外交/贸易代表部等多种任务向延边地区的韩国人提供多方面的支援。

真的是非常感谢和庆幸的人,在分店营业上得到了很多帮助,通过延吉和延边地区内的事业或医疗、传教、教育、脱北者支援团体等多种途径完成了很多事情。

延吉市内约有5家韩国人餐厅生意兴隆,后来熟人或客人来的时候,自然而然地轮流在餐厅用餐。

始终如一地关怀备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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