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개조심'은 개를 키우던 대문 앞에 눈에 잘 띄는 페인트로 보기 거슬릴 정도로 크게 쓰여 있었다.
미관상 부조화로 굳이 그렇게 까지 썼던 이유로는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정말 사나운 개가 있어서 잘못 들어오면 개에 물리거나 봉변을 당한다는 사전 고지의 의미와 집 안에 개가 있으니 도둑님은 들어오지 말라는 역시 사전 경고성 멘트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개조심을 보고도 집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개가 또는 개들이 독창 아니면 떼창으로 무단 침입자의 진입을 집주인에게 알린다. 일종의 충견들이 주인들에게 자신들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인데 당시 개들은 식용과 경찰견의 중간 영역에서 사육되는 사례도 많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누군가 야만으로 치부한다면 그 사람의 감성에 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가 있기 마련이니 양해를 하고 넘어가자.
개들은 재생산이 굉장히 빠르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집에서 기르던 견공들이 원인불명의 임신과 출산으로 주변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무상 분양이 흔하게 일어나던 시대이므로 단독주택에서 살았던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는 개와의 동시대 추억이 공존한다고 본다.
그 시절 우리와 함께 추억을 나누었던 개들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병아리도 광범위한 개념으로 보면 조류에 속한다.
약병아리를 어설프게 라면박스에 넣고 사람들의 일방적인 기준으로 수탉이 되기를 기다려 보지만 결과는 그리 희극적이지가 않다. 99.99% 비극을 맞이한 우리는 평범한 서민으로 살고 있고 0.01% 성공을 맛본 그분은 끊임없는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결국 그 병아리 몇 마리로 시작해서 닭으로 기업을 일으켜 굴지의 회장님이 되셨다.
내가 살던 인근 농고를 다니다가 꾸준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기업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과 꿈의 도전을 가능하게 실현한 분이 되시겠다.
나도 당신도 그렇게 어설프게 실패를 맛본 양계사 중 한 사람이지 않은가?
한국은행에 다니는 사촌 형과 코트라에 다니는 선배와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던 시기에 주고받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자신이 정한 미래는 방향성만 맞으면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빛을 발한다.”
“영국의 보유세 도입으로 한국의 부동산 투기심리를 안정시킬 수도 있다.”
“인문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러한 의견들은 대한민국 대표 석학들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서민들 생각 속에서도 나올 수 있는 표현들이다.
책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명언들은 아니지 않은가?
인생 50이 넘어가면 일단 자기 인생과 다른 인생들을 비교하면서 반절은 도인들이 되어 간다.
“도를 통했다.”
도는 물론 여러 종류이고 내가 정한 도가 다른 사람과 반드시 일치하라는 법도 없다.
“나의 도는 나의 것이고 당신의 도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특공대'를 말하며 주로 조직과 상관없이 별도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
4학년 같은 반에 어머니가 터미널 근처에서 식당을 하셨던 친구가 있었다.
위로 누나가 한 명 있었던 것으로 기억나고 남자아이는 혼자이니 외아들이다.
당시 ‘외’가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한자로 獨子독자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건데 출산장려를 하던 60년대 본격적인 다동이 시절에는 더욱 그러했는데 기본적으로 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붐 키즈들은 기본적으로 형제자매가 평균 3-4명 수준이었다.
부지런한 부모들일 경우에는 5명을 초과하는 경우도 흔했다.
아들 선호 사상이 있었던 그 당시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아들만 자식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참 많았었다.
그러다 보니 따님의 연속된 출산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 시대의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난감해하셨을까 상상이 간다. 다 오래된 사진 같이 당시 시대가 만들어 준 빛바랜 추억들이다.
그러한 내 친구가 4학년 때 학년 짱으로 등극하더니 5학년 6학년이 되면서 학교 대표선수가 되었다. 실제로 그 친구가 싸움을 얼마나 잘했는지 잘하는지 본 적은 없다.
그냥 학교 내 분위기가 그랬었는데 당시 친형들 가운데 싸움 좀 한다고 소문이 나면 그 동생들도 같은 반열에 자동으로 올라서는 현상들이 있었다.
형의 후광을 받아서 ‘호랑이 덕에 나팔을 부는 격’인데 어쩌겠는가?
집에 싸움을 잘하는 형이 없다면 자신이 스스로의 완력으로 개척을 하던지 아니며 조용하게 일반적인 학생으로 지내면 만사가 편안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싸움을 잘하는 형이 없었으니 일명 ‘독고다이’로 출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어를 검색하니 ‘스스로 결정하여 홀로 일을 처리하거나 그런 사람’.
나중에 그쪽에서 대성한 것으로 알고 있고 영화 ‘친구’ 주인공 배우를 보면서 그 친구에 대한 추억이 스쳐 지나갔었다.
초4 시절이면 만 나이로 10살.
유치하게 보이겠지만 당시 수준에 맞는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가 있었다.
잘 지내나? 친구야! 보고 싶다. 친구야!
小时候的"小心狗"在养狗的大门前用醒目的油漆写着让人看不惯的大字。
出于美观上的不协调,可以推测出几种非要使用的理由。
因为真的有凶猛的狗,所以如果进错家门,就会被狗咬伤或遭殃的事前告知的意义和"家里有狗,小偷不要进来"的也是事前警告性话语。
那看到狗心还进屋的话会怎么样呢?
狗或狗用独唱或群唱告知房东擅自闯入者进入。 这是一种忠犬向主人告知他们忠实地履行自己的任务,当时狗在食用和警犬中间领域饲养的事例也很多。
如果有人把这种时代状况视为野蛮行为,就不想给那个人的感性泼水。 但是肯定有当时的社会氛围和文化,所以让我们谅解一下吧。
狗繁殖的速度很快,而且频繁发生. 由于现在是养在家里的犬工们因原因不明的怀孕和分娩而经常向周围亲戚或邻居无偿出售的时代,因此对于生活在单独住宅的那个时期的孩子们来说,与狗同时代的回忆共存。
那些曾经和我们一起分享回忆的狗仍然活在我们的心中。
从广泛的概念来看,雏鸡也属于鸟类。
将药雏轻率地放入方便面盒中,等待成为人们单方面的标准公鸡,结果却不是那么好笑。 遭遇99.99%悲剧的我们过着平凡的平民生活,尝到0.01%成功的他克服了不断的磨难和挫折,最终从那几只小鸡开始,用鸡做起了企业,成为了屈指可数的会长。
在我生活过的附近农业高中,通过不懈的努力,作为大韩民国值得骄傲的企业家,我将成为向很多人提供教训和梦想挑战的人。
我和你,不都是那么轻率地尝到失败的养鸡师之一吗?
想起了在韩国银行上班的表哥和在韩国贸易投资振兴公社上班的前辈定期登山时期的故事。
"自己定下的未来,只要方向正确,即使花费时间,总有一天会发光的。
"英国引入拥有税也可以稳定韩国的房地产投机心理。"
"人文正,国家才立。"
这些意见即使不是大韩民国的代表学者,也可以在普通百姓的想法中表达出来。
这些不是只能在书里感受到的名言吧?
人生过了50岁,首先比较自己的人生和其他的人生,一半就会成为道人。
"通了道。"
当然,道有很多种,而且我规定的道不一定与其他人一致。
"因为我的道是我的,你的道是你的。"
日语中的"特工队",主要指与组织无关,喜欢单独行动的人。
四年级同班同学,母亲在航站楼附近开过饭店。
我记得上面有一个姐姐,男孩是一个人,所以是独生子。
当时加入"外"的孩子并不多。 用汉字表述为獨子读者。
也许我认为,在鼓励生育的60年代正式多童时期更是如此,基本上60年代出生的婴儿潮儿童平均兄弟姐妹只有3-4名。
如果是勤劳的父母,超过5人的情况也很常见。
在儿子偏好思想的当时,受儒教的影响,很多人认为只有儿子才是子女的概念。
因此,一想到因女儿的连续生育而饱受压力的那个时代的母亲们,就能想象到她们该有多为难。 这些都是像旧照片一样,当时时代留下的褪色的回忆。
这样的朋友在4年级的时候成为了年级老大,到了5年级6年级的时候成为了学校代表选手。 实际上,我从未见过他有多会打架,有多会打架。
学校内的氛围就是这样,当时亲哥哥们中只要传出会打架的消息,他们的弟弟们也会自动进入同一行列。
托哥哥的光环"托老虎的福"了,还能怎么办?
如果家里没有擅长打架的哥哥,就不是自己用自己的力量开拓,而是安静地作为普通学生生活,就是万事都安逸的时期。
但是这位朋友没有擅长打架的哥哥,所以推测他是以"独孤戴"出发的。
搜索单词,自己决定独自处理事情的人。
后来我知道他们那边大成,看着电影《朋友》的主人公演员,对那个朋友的回忆就闪过了。
小学4年级时满10岁。
虽然看起来很幼稚,但是符合当时水平的男人们的友情和义气。
过得好吗? 朋友!我想你了。 朋友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