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 시절 방과 후 주요 일과는 축구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주변에 놀이터보다 동적인 활동에 더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친구가 최근에 오래된 사진을 가져와서 보여주는데 초1 봄 소풍으로 기억되는 사진을 가져왔다. 그 사진에 같은 반으로 가물거리는 친구들의 어릴 적 모습이 들어 있었다. 심히 미안했다. 유달리 1학년 때 기억이 별로 없는데 너무 어려서 그런 가 보다.
주변에 7살에 학교를 들어간 친구들이 있어서 어느 때는 부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8살에 들어간 초1의 추억이 잘 기억이 안 나서 생각을 해보니 만약 내가 7살에 입학을 했더라면 2학년도 잘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엄마의 현명한 판단 덕분에 나의 2학년의 기억은 건진 셈이다.
그럼 나의 초교 1학년은 어떤 추억들이 존재할까?
우선 친구들과 축구가 떠 오르고 학교와 집, 그리고 외가의 삼각형 구도가 있었다.
즉 집에서 학교까지 동선을 X축으로 외가는 Y축 중앙에 위치하여 나의 동심과 정서적인 이동거리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당시 우리 집은 초교 1학년이 통학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한 모양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중에 이사없이 이루어진 학구 변경으로 전학을 간 학교가 더 가까웠으니 말이다.
또한 재미있는 감성은 우리 집에서 전학 전 학교는 시 중심으로 들어가는 방향이었다면 전학 후 학교는 집에서 시 외곽으로 나가는 기분이 들게 하였다.
그래서 전학 전 학교를 다닐 때는 시 중심으로 들어가는 설렘이 있었고 전학 후 학교는 외곽으로 빠져 소풍 가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즉 전학 전은 시내 지향적인 동선이었고 전학 후 학교는 교외 지향적인 동선이었는데 쌍방향의 경험을 둘 다 해 보았으니 좋은 경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초1 담임 선생님이 얼굴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산뜻한 숏커트 스타일로 영민하셨던 분위기가 나중에 장학사로 이어져 학교를 방문하셨을 때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기억하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그분의 따뜻했던 손길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렇게 초1의 기억은 훈훈한 손길들로 채워져 있음을 감사드리며 초1 담임선생님의 건강과 즐거운 인생을 기원드립니다.
초교 생활을 관통하는 쾌남아 가수.
어릴 적 남진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나훈아와 쌍벽을 이루었지만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남진의 인기가 한 수위였다.
경쾌한 이미지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안무 능력도 있었다.
한 번 월남전쟁 참전 후로 기억되는 TV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군복을 입고 프레슬리의 팝송을 춤을 추며 노래하는데 너무도 근사했다. 한마디로 어린 내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당시 소풍을 가면 남진의 흉내를 내면서 춤을 추던 녀석들이 몇 명씩 있었다.
1946년생이니 75살인데 내가 보기에는 60대 초반으로 보인다.
가수 데뷔가 1965년 1집 앨범 타이틀이 ‘서울 플레이보이’로 그때부터 캐릭터를 제대로 잡았다.
검색을 해 보았는데 영화도 64편이나 찍었으니 웬만한 영화배우보다 출연작이 더 많은 것을 보면 당시의 인기를 가름할 수 있겠다. 1967년부터 ‘가슴 아프게’로 스타덤에 오르면서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보이는데 22살부터 주연을 한 셈이니 얼마나 절정의 인기를 누렸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1967년 ‘푸른 사과’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가장 오래된 자료로 올려져 있는데 흥행 제조기 김응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남진, 최영희, 조영남 주연에 음악은 신중현의 조합이었다.
분야별 당대 최고의 흥행사들로 만든 영화이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고 싶은 영화이다.
신중현의 ‘비속의 여인’과 ‘왔세요’가 영화음악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서 기대가 된다.
마지막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는 1975년 ‘가수왕’인데 약 8년 동안 64편 영화 출연이니 1년 평균 8편의 영화에 대부분 주연으로 등장을 하는데 거의 3달에 2편이라는 경이적인 출연으로 아마도 당시 남진의 인기에 편승하여 흥행을 기대한 측면이 강하게 다가온다.
하여간 이렇듯 복 많은 진이 오빠는 뭇 여성들의 인기와 남성들의 지지를 받아 전 국민 가수로 남아있다.
인기 동료 가수들과 더블콘서트 자료를 찾아보니 장윤정, 김혜연, 현숙, 최진희, 설운도 등 당대의 최고의 후배들과 같이 공연을 할 수 있는 저력과 체력이 아직도 짱짱하다.
작년에도 ‘남진&설운도 레전드 오브 트롯’의 무대를 기획한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사 중 한 명이며 하늘을 찌르는 인기와 함께 많은 화제를 생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의 일부분 일뿐.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원한 현역.
남진이여 영원하라.
小学1年级时放学后的主要日程是踢足球,也许比起周围的游乐场,对动态活动更有魅力。 朋友最近拿来一张老照片给我看,给我看了一张记得初一春游的照片。 那张照片是同学们小时候在同一个班级里晃来晃去的样子。 非常抱歉。 特别是1年级的时候没什么记忆,可能是因为太小了。
身边有7岁就上学的朋友,有时候很羡慕。
但是我记不清8岁进入小学1年级时的回忆,所以想了一下,如果我在7岁入学的话,2年级也会想不起来。 多亏了妈妈明智的判断,我2年级的记忆才得以恢复。
那我的小学一年级有什么样的回忆呢?
首先,想起了朋友和足球,还有学校和家,还有外婆家的三角形构图。
即,从家到学校的移动路线位于X轴外行的Y轴中央,抓住了我的童心和情绪移动距离的中心。
当时我家好像离小学一年级走读相对较远。
因为后来在没有搬家的情况下进行的学区变更,转学的学校更近。
另外,如果说有趣的感性是从我们家转学前学校是进入市中心的方向,那么转学后学校就会有从家到市郊的感觉。
因此,转学前上学时,有进入市中心的激动,转学后学校好像有去郊外郊游的感觉。 即转学前是面向市内的路线,转学后的学校是面向郊外的路线,但双方都有过双向的经验,可以说是很好的经验。
而且到现在还记得小学1年级班主任的脸。
清爽的短发风格,灵动的氛围后来演变成奖学金获得者,访问学校时打了招呼,到现在还记得我,抚摸我头发的他温暖的手还没有忘记。
就这样,感谢小学1年级学生的记忆里充满了温暖的手,希望小学1年级班主任的健康和愉快的人生。
贯穿初校生活的快男歌手。
小时候南镇的人气很高。 虽然与罗勋儿形成了双璧,但从儿童的立场来看,南镇的人气更胜一筹。
她还具有轻快的形象和让人联想起猫王的形象的编舞能力。
参加过一次越南战争后,他出现在电视节目中,身穿军装,边跳边唱普雷斯利的流行歌曲,非常精彩。 一句话点燃了我年幼的心。
当时去郊游时,有几个模仿南镇跳舞的家伙。
1946年出生,75岁,在我看来是60岁出头。
歌手出道后,1965年第一张专辑的主打歌是《首尔花花公子》,从那时起就很好地抓住了角色。
搜索了一下,电影也拍了64部,从出演作品比一般电影演员多的情况来看,可以判断当时的人气。 从1967年开始通过《心痛》跻身明星行列,出演了电影,从22岁开始担任主演,可以想象会有多高的人气。
查阅记录后发现,1967年《蓝苹果》电影的海报是最古老的资料,由票房制造机金应天导演执导,南镇、崔英姬、赵英男主演,音乐是申重铉的组合。
这是一部各领域当代最受欢迎的电影,以后有机会想看的电影。
申重贤的《卑俗的女人》和《来了》被用作电影音乐,是倾注心血的作品,因此备受期待。
最后主演的电影是1975年的《歌手王》,在约8年的时间里出演了64部电影,平均1年8部电影中大部分都是主演,几乎3个月就有2部,以惊人的出演,大概是当时南镇的人气,期待票房的层面非常强烈。
总之,如此有福气的Jin哥哥受到众多女性的人气和男性的支持,成为了全国民歌手。
翻阅人气同僚歌手和双人演唱会资料发现,张润贞、金惠妍、贤淑、崔真熙、雪云道等当代最优秀的后辈们一起演出的潜力和体力仍然很强。
去年也企划了《南镇&雪云道传奇Of Trot》舞台的韩国最受欢迎的活动之一,虽然人气冲天,制造了很多话题,但这只是传说的一部分。
现在也在积极活动的永远的现役选手。
南真啊,永远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