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표
12월 어느 추운 겨울날 우편함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보통 관리사무실에서 보내오는 것은 관리비 청구서, 공사 안내장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번 편지의 내용은 동대표를 할 사람이 없으니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셈 치고 2년간 동대표 지원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가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언 36년 차가 되어가는데 동대표를 누가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등 도통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는 00동 00호에 사는 주민인데요. 관리소장님 계셔요?”
“네. 제가 관리소장입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소장님. 우편함에 편지를 보고 연락을 드리는데요. 저희 동대표 할 사람이 없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이 지원하시면 저는 안 해도 괜찮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거 덕분에 큰 걱정을 덜게 되었습니다.”
“그럼 신년 정기총회에서 뵙겠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지원하면 내가 할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 지원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파트 살림살이와 시설관리에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나?
며칠 후 정기총회에 나갔더니 총 7개 동에서 5개 동만 대표자가 선정되었고 나머지 2동은 지원자가 없어서 공석으로 운영된다고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일로 생각했다.
동 대표 5명이 참석해서 아파트 회장 1인, 감사 2인, 총무이사 1인, 이사 1인 등 5명이 회장단에 임명되었고 나는 덕분에 이사가 되었다. 회사에서 못 달아본 이사를 아파트 동대표회의에서 선임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연초 엘리베이터 교체, 아파트 도색 마무리, 보도블록 교체, 아스팔트 포장 등이 2021년 주요 현안으로 월 1회 동대표 회의를 한다고 한다. 이왕 하는 것인데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동대표가 되련다. 아울러 혹시 2년 후 기회가 되면 아파트 회장으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혹시 있을지 모를 내 선거공약을 미리 밝혀 둔다.
“저를 회장으로 뽑아 주신다면 노후 아파트 리모델링과 재건축 현안 및 관리비 인하를 통한 가정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층간소음대책위원회
동대표회의를 하고 나서 한 1주일 지났는데 신임 관리소장한테 전화가 왔다.
혹시 시간이 되면 상의할 일이 있다며 관리사무소에서 만나자고 하길래 시간을 맞춰 사무실로 갔다. 관리소장은 오랜 전 젊은 시절에 KOICA 활동으로 필리핀에 2년 동안 근무를 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코이카 활동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한 가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층간소음대책위원회장(이하, 층소대)을 맡아 달라고 하길래 최근 몇 년 사이에 평균 몇 건이 발생하였는지를 물었더니 1년에 약 2건 정도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동대표도 하는데 층소대 회장도 못할 것도 없기에 흔쾌히 승낙을 했더니 역시나 고마워한다. 사실 귀찮거나 민원이 발생하여 신경이 쓰일 수도 있겠지만 이왕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못할 일도 아니었다. 결국 관리소장의 권유로 동대표와 층소대 회장으로 2년간 봉사를 할 작정이다.
당신은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소음을 경험해 보았는가?
나는 신문과 방송에서 살인사건까지 확대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뭐 그런 것을 가지고 이웃사촌끼리 그렇게 몰인정하게 하나? 하고 지나쳤지만 내가 수년 전 경험한 층간소음은 현실 속에 지옥의 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위층으로 이사 온 아주머니가 이사 신고식을 한다고 와인과 케이크를 문 앞에 놓고 갔길래 부자가 왔거나 통 큰 주부가 이사를 왔구나 하고 넘어갔다.
며칠 후 심야에 위층에서 쿵쿵거리며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때만 해도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 날 다시 늦은 저녁에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참다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초교 여자아이와 중학생 남자아이가 엄마와 같이 보였고 소음이 심해서 올라왔으니 잘 부탁한다고 내려왔다. 며칠 후 심야에 다시 쿵쿵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힘든 아침을 맞이하는데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다음 날 늦은 저녁에 또 소음이 전해온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도와 달라고 요청을 했고 관리소장이 위아래 층을 다녀갔으며 며칠 후에는 급기야 누가 경찰을 불렀는지 시끌벅적하더니 아래층에 사는 우리에게 층간소음에 대하여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한다.
신고를 해도 우리가 할 상황인데 누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한테 물었더니 위층 엄마가 통제가 안 되는 아들에게 경찰출동 신고를 통하여 교훈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인내에 한계가 왔고 위층 아주머니한테 아래층이 없는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를 했다. 정서가 불안한 아들은 며칠 간격으로 심리적인 불안요인이 생기면 밤낮 구분 없이 집안을 뛰어다니는 상황은 아래층에 사는 우리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층간소음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음을 실감하는 사례로 이해를 하시라.
혹시 그대의 거주지에 위층과 층간소음 문제가 없다면 그럼 절반은 천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니 계속 행복하시라.
여담)
.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는 중재를 통해 이웃 간 층간소음 갈등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층간소음 전화상담 및 현장진단(방문상담 및 소음측정)을 위한 콜센터(1661-2642)를 운영하고 있다.
. 코이카(KOICA)는 정부 차원의 대외 무상 협력 사업을 전담하여 실시하는 기관으로 1991년 4월에 설립되었으며 한국과 개발 도상국의 우호 협력 관계 및 상호 교류를 증진하고 이들 국가들의 경제 사회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국제 협력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