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탄생과 성장 18

by 제이킴

겨울 산행


둘째와 미뤄왔던 겨울 산행을 다녀왔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설경의 정점에 있었던 북한산을 눈과 코를 통하여 뇌리와 폐에 넣고 왔다.

적당히 내린 눈은 보기 좋게 넉넉하게 쌓여 있었지만 날이 너무나 좋았고 푸른 하늘은 설경과 초록의 침엽수들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등산로가 얼지 않을 온도라서 위험한 산행의 가능성은 그리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고 겨울 산행에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었다.

온도가 낮지 않아서 인지 결빙 전 적당한 습도와 푹신 거림은 즐거운 산행길로 우리 父女를 인도한다.

일단 북한산 송추 계곡부터 시작해서 오봉을 목표로 출발하는데 평일이고 눈이 온 영향인지 등산객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호젓한 산행이 가능했다.

눈이 내린 등산로가 얼면 고생하겠구나 싶었지만 얼지 않았고 그래도 아이젠이 필요하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전체적으로 등산로는 이미 많이 녹아 있었고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서 아이젠이 주는 불편함을 생략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닌가.

오봉에 오르자 비경이 펼쳐진다.

사실 오래간만에 겨울 산행인데 바람이 너무 강하거나 시야가 좋지 않으면 감상의 기회가 반감되어 묘미를 느끼기가 어려운데 하늘과 맞닿은 산기슭은 저 멀리 먼 산까지 우리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내 여성봉까지 마저 거친 후 다시 하산을 하는데 오봉 정상에서 만나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던 산행객들이 길가에서 컵라면을 먹으려 준비하다가 우리를 부른다.


“컵라면 먹고 가세요.”

산행에서 컵라면은 빠트릴 수 없는 진미로 등산 중 운동량으로 밀려 들어오는 허기와 뜨거운 라면 국물은 산행으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는 훈훈함이 들어 있는 신기한 음식이기도 하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인 우리 부녀는 경사진 침엽수 솔기들을 모아 방석을 만들어 자리를 잡았고 우리가 가져간 당도와 향이 좋은 제주산 감귤을 나누어 먹으며 각자의 갈증 해소와 식전 식욕을 돋웠다.

보온병에 준비된 뜨거운 물이 그리 온도가 높아 보이지 않아서 면발이 잘 익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귤을 먹으며 여유 있는 기다림 덕분인지 80% 정도 익은 면발은 딱 먹기에 좋은 온도와 식감을 제공하였고 산행객이 같이 주섬주섬 꺼내 놓는 소금에 절인 백김치는 라면과 합이 잘 맞았다. 아침에 나오면서 소금물에만 담갔다는데 그냥 먹어도 배추의 신선함과 고소함이 그대로 넘어왔다.

누군가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스위스 정상에서 한국 컵라면을 먹는 순간 알프스 산신령이 부럽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고.

우리 父女도 딱 그만큼 그랬다.



호수공원 달리기


오늘은 둘째와 약속된 호수공원 달리기 하는 날.

내가 둘째에게 반 강요와 반 회유로 시작한 달리기는 어언 3년 차로 들어선다.

둘째가 중문과 입학 후 광조우에 있는 처남집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오더니 편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려왔을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공부는 학생이 하는 몫일 터이고 그럼 애비는 무엇을 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둘째가 낮에는 편입학원을 다니고 있으니 평일 저녁시간과 주말에 도움이 되어야 하겠구나 싶었다.


첫째, 평일은 퇴근 후에, 주말도 개인적인 약속을 자제하고 같이 도서관에 다닌다.

둘째, 주말 아침 중 하루는 호수공원을 같이 달린다.


우선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거나 귀동냥으로 알고 있던 책들을 골라서 1년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로 결정한 후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둘째는 둘째대로 낮과 밤의 학습 비율을 조율하면서 효과적으로 학습과 여유를 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덕분에 본인이 원하는 목표와 시기를 정하고 도전하는 자세를 유지하며 자신 인생의 변화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 스스로 자식한테 배운다는 느낌이 이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연장자이거나 경험이 많아서 인생사가 해결이 된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 부부나 아이들의 인생이 부디 본인이 원하는 방향이든지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노력의 과정을 즐기며 다가오는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인생은 분명 그럴 가치가 있는 여정이며 껍질을 벗겨야만 맛있는 알맹이를 먹을 수 있는 감귤 같기도 하다.

여러분의 감귤은 잘 보관만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껍질을 벗기고 그 맛을 즐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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