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원어 연극 준비로 그 해 여름과 젊음을 함께 불살랐던 연출/스텝/출연진들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려던 어느 날 예비역 형이 나를 보자고 하더니 제1회 중국어 연극을 준비하는데 같이 하자는 권유였다. 당시 나는 대3 중반을 넘어서자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에 리듬이 흔들리면서 눈에 띄게 게을러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군 입대는 3학년을 마치고 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기에 대3 생활은 유달리 삶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2학년을 마치고 대부분 군대를 가던 동기들의 빈자리를 제대 후 복학하는 선배들로 채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했던 부분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여름 방학 동안 연극을 한다면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연습을 하려고요?”
“하루에 3-4시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같이 해 봅시다. 그렇지만 날도 더운데 너무 많이 연습하지는 맙시다.”
“그래. 알았다. 같이 한 번 해보자.”
학과 내 <중문인의 향연>이라는 행사가 매년 공식적인 행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시절이지만 사실 나는 연극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원어 연극에 대한 동경이나 의욕도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연출을 맡은 선배의 강력한 권유와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 당시의 솔직한 내 심정이랄까.
그리 적극적이지도 소극적이지 않았던 기분으로 첫 발을 딛게 되었지만 훗날 아름다운 여름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연출 선배의 말처럼 하루에 연습은 3-4시간이 아닌 5-6시간이 보통이었고 공연일이 다가오자 7-8시간으로 늘어났지만 감내할 수 있었다. 학과 공식행사로 발표되는 제1회 원어 연극이었으니 학과 전체 교수님과 선배님 및 후배들의 관심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출연진과 스텝들을 합치면 물경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여름방학의 열기 속에서 단합된 역량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젊음이 30명이면 못할 일은 없다>라는 것이 내가 경험한 그 해 여름의 흔적이다.
도중에 식사시간이 되면 라면을 먹는 것은 다반사였고 학과 지원 및 선배들의 후원금으로 짜장면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연극이 부딪치는 소주잔에서 술술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원한 소주가 밋밋해질 정도로 나름 연극에 대한 열정과 완성도가 숙성되는 시기를 거치자 우리들 스스로도 이 정도면 연극무대에 올려도 욕은 먹지 않겠구나 싶었다.
특히 처음에 우왕좌왕하던 연극팀 간에 연대감이 날이 갈수록 끈끈하게 형성되었고 훗날 아름다운 경험으로 기억된 그 해 여름 연극 준비의 열기들은 밖에서 울어 대는 매미들 보다 뜨거웠으면 더 뜨거웠지 결코 서늘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기분 좋게 유지된 팽팽한 공기들이 연습 공간을 가득 채우며 맴돌았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인문대 강당에서 공연일자가 잡혀가면서 연극도 막바지 고점을 향하여 치닫게 된다.
단 1회 공연인데 참 많은 땀과 정열들이 모아졌다.
드디어 공연 며칠 전부터 무대용 분장도 하면서 전문 연극인들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면 얼치기 연극 초년병의 지나친 상상력일까?
공연 당일 연극은 사전에 발견된 수많은 시행착오의 수정 작업과 반복된 연습을 통해서 매끈하게 깎아진 연필처럼 잘 굴러갔고 별다른 실수와 동선의 꼬임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연극 무대가 그리 긴장되지 않았던 이유는 연출자가 꼼꼼하게 챙긴 섬세함과 스텝들의 준비성이 만들어 낸 편안한 무대 분위기로 판단된다.
영화는 잘 모르겠지만 연극의 맛을 살짝 맛 본 심정으로 말하자면 사전 준비의 완성도는 출연진들에게 올곧은 몰입이 가능하게 해 준다는 사실이고 전 스텝들이 연극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영향도 결정적으로 무대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 나의 결론되시겠다.
그 중심에 연출자의 뚝심이 있었고 지원팀의 열정과 출연진들의 작은 노력들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사히 연극을 마치고 뒤풀이 회식을 하는데 난데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매미들의 울림으로 가득한 강의실에서 버물려진 우리들의 젊음이 1회 공연으로 마무리가 되어서 인지 여름의 뜨거움 속에 감춰진 나의 허전한 감성적인 공백이 그 해 가을까지 이어지더라.
왜 지리지리한 여름 열기를 지나서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도 익어가는 곶감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기억나는 배우들의 시상식 수상 소감)
.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면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이 밥상을 차려 놔요. 그럼 저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근데 스포트라이트는 저만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해요."
. "제가 20살 처음 연극할 때 극단 단원이 15명이었는데 형, 누나들이 다 반대했어요. 넌 내성적이라 안된다고. 연습할 때 떨고 울고 그랬는데 지금 그분들 다 그만두고 저 혼자 하고 있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꿈꾸니까 이루어지더라. 포기하지 않고.”
. (앞의 팬들의 환호가 잦아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다) "감사합니다."
. "이 트로피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我将永远铭记为准备第一届原语话剧,与我一起燃烧那年夏天和青春的导演/工作人员/演员们。
暑假即将开始的某一天,预备役的学长说要见我,原来是邀请我一起准备第一届中文话剧。当时我刚过大三中段,学校生活和日常生活的节奏开始动摇,也是发现自己明显变得懒散的时期。
父亲也建议最好在读完三年级后再入伍,所以大三生活感觉特别松懈,承认当时也有相对意气消沉的部分,因为读完二年级后大部分同学都去了军队,他们的空位被退伍复学的学长们填补。
"如果暑假期间演话剧,每天打算排练几个小时?" "每天3-4个小时应该可以吧?" "那就一起试试吧。不过天气这么热,咱们别练习太多。" "好。知道了。一起试试吧。"
虽然系里<中文人的盛宴>这个活动每年都在成为正式活动,但事实上我对话剧没有什么特别的兴趣,对原语话剧也没有太多憧憬或热情。只是因为担任导演的学长强烈邀请,以及这可能成为美好回忆,这就是当时我的真实心情吧。
虽然以不太积极也不消极的心情迈出了第一步,但后来成为了美丽夏天的回忆。
正如导演学长所说,每天排练不是3-4小时而是5-6小时是常态,随着演出日期临近增加到7-8小时,但还能承受。作为系里正式活动发布的第一届原语话剧,不得不在全系教授、学长和学弟学妹们的关注中出发,演员和工作人员加起来竟有30人之多,在暑假的热气中开始展现团结的力量。
<30个年轻人在一起就没有做不成的事>这就是我经历的那年夏天留下的痕迹。
中途到了吃饭时间吃方便面是家常便饭,如果用系里支援和学长们的赞助金聚餐吃炸酱面,不知道是不是话剧在碰杯的烧酒杯中顺利流出,清凉的烧酒都变得平淡了,随着对话剧的热情和完成度逐渐成熟,我们自己也觉得这个程度搬上话剧舞台应该不会挨骂了。
特别是最初慌乱的话剧团队之间的团结感日益紧密地形成,后来作为美好经验被铭记的那年夏天话剧准备的热气,比外面鸣叫的蝉更热烈,绝不清凉。始终保持的愉快而紧张的氛围充满了排练空间并盘旋其中。
暑假快结束时,在人文学院礼堂定下演出日期,话剧也向着最后高潮冲刺。
只有一场演出,却汇聚了如此多的汗水和热情。
终于在演出前几天开始化舞台妆,如果说能稍微体会到专业戏剧人的心情,这是否是半吊子戏剧新兵的过度想象呢?
演出当天,话剧通过事先发现的众多试错的修正工作和反复排练,像磨得光滑的铅笔一样顺利进行,没有什么失误和走位混乱,进展顺畅。
神奇的是,话剧舞台比想象中不那么紧张的原因,判断是导演细致入微的关照和工作人员的准备性营造出的舒适舞台氛围。
电影我不太了解,但以略微品尝到话剧滋味的心情来说,事前准备的完成度能让演员们全神贯注地投入,全体工作人员对待话剧的心态也决定性地引领舞台氛围,这就是我的结论。
其中心是导演的毅力,加上支援团队的热情和演员们的点滴努力汇聚而成的结果。
顺利结束话剧后聚餐时,突然泪水倾泻而出。
在充满蝉鸣的教室里挥洒的我们的青春以一场演出收尾,也许是因为这个,隐藏在夏日炎热中我空虚的感性空白一直延续到那年秋天。
为什么度过漫长的夏日热气后,秋天的红叶如此美丽,我似乎有点明白了。
反正我们的人生不也是像成熟的柿饼一样的存在吗?
记忆中演员们的颁奖感言)
"说实话,我总是对人们说,我只是个演员而已。因为大约60名工作人员把饭桌摆好了,我只要好好吃就行了。但聚光灯只打在我身上,对此我感到非常抱歉。" ."我20岁第一次演话剧时,剧团成员有15人,哥哥姐姐们都反对,说你性格内向不行。排练时我发抖哭泣,但现在那些人都不干了,只有我一个人还在做。不放弃梦想就能实现。不放弃。" .(默默等待前面粉丝的欢呼声平息)"谢谢。" ."这个奖杯是用钱买不到的对吧。世上最重要的东西是用钱买不到的。真的非常感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