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
義城 김 씨 총각과 廬山 송 씨 처녀가 만났다.
혼기 찬 두 젊은 남녀는 맛 선을 보러 나갔는데 서로를 처음 보았다고 한다.
아마도 다방에서 만났으리라. 아버지는 군청 토목기사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시집 준비 중이었다고 하는데 아버지한테 어머니의 첫인상을 물었더니 처녀가 부자 집 장녀라서 곱게 큰 줄 알았는데 선보는 자리에서 눈에 띈 것은 엄마의 튼 손이었다고 한다.
‘튼 손’ 외가 집안 살림을 돕다가 손이 거칠어진 모양인데 이상하게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손이 잘 텄다. 아마도 외가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첫눈에 들어온 어머니의 튼 손은 성실함과 순종의 상징이 되었다.
아버지는 쌍둥이 형인데 쌍둥이 동생인 작은 아버지는 결혼할 처녀가 있어서 아버지 입장에서 조금은 다급할 수도 있었겠다. 쌍둥이는 1936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해방이 되었고 중학교 때 6.25를 경험한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어머니는 1941년 출생이니 일제시대는 흐릿할 테고 6.25는 기억하시겠다.
그렇게 송 씨 처녀가 들킨 튼 손의 영향인지 두 사람은 양 가 어른들의 합격점을 받아서 미래의 청실홍실을 엮게 되는데 이 또한 나에게도 전설의 시작이 된다.
쌍둥이 합동결혼식
그해 좋은 봄 날에 쌍둥이는 합동결혼식을 했다.
쌍둥이가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에 합동결혼식은 장안의 화제였고 신문에도 났다고 한다.
상상을 해 본다. 주례 앞에 두 쌍이 나란하게 섰다. 그러면 혼주 측은 어떻게 섰을까?
일반적인 결혼식장은 신랑/신부 하객들의 자리가 좌/우로 구분되던 시절인데 하객들은 3등분 되었을 테고 혼주들도 3개 집안으로 나뉘었을 텐데 어떻게 자리를 배정하였는지 궁금하다.
결혼식 사진을 보지는 못했지만 전반적인 결혼식 장면이 그려진다. 하객 사진도 2번을 찍었을 것이고 폐백도 한 자리에서 했겠다.
신혼여행도 같이 가셨나? 쌍둥이라고 첫날밤을 한 방에서 같이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쌍둥이는 행복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
홍시
어머니는 나를 갖기 전 유산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결혼이 5월이었고 내 생일은 다음 해 11월이니 중간에 공백이 생기는데 그분의 흔적이다.
어머니는 유산 경험으로 아마도 나를 품게 되었을 때 많이 조심스러웠으리라.
훗날 아버지한테 들어보니 나를 임신한 어머니가 늦가을에 홍시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제철이 지난 과일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아버지 월급으로는 부담이었다고 한다. 결국은 어머니가 못 먹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나는 감을 보면, 먹을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지금 어머니가 감을 먹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어머니도 내 생각을 하며 감을 먹으려나?
나훈아의 '홍시'도 그렇게 탄생한 걸까?
쌍둥이가 낳은 쌍둥이
쌍둥이 동생 작은 아버지가 또 쌍둥이를 낳았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확률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신기한 일이다. 아버지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두 분은 판박이로 일란성쌍둥이로 보인다. 작은 집 쌍둥이 형들도 어릴 적 사진을 보면 판박이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아버지 형제도 쌍둥이 형들도 얼굴이 조금씩 변해간다. 아마도 후천적 환경인지 유전적 변화인지는 모르겠다.
내 주변에 중/고교 동창 중에 쌍둥이가 있는데 형은 중학교 동창, 동생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두 명은 아직도 얼굴이 똑같은데 나는 구분할 수 있다. 얼굴에 베인 표정이 약간 다르다.
어릴 적 쌍둥이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과 아이들의 사랑과 호기심에 어린 눈총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시골에서는 한 학년에 한 반만 있었을 텐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6년을 같은 반으로 다녔다고 생각하면 여러모로 재미있는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탄생
그 해 11월 초 함박눈이 내렸다고 한다.
어머니 기억으로 나는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에 태어났다.
‘정오의 함박눈’은 나의 탄생을 알렸다.
쌍둥이 동생보다 반년이나 늦은 자식의 탄생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친가 할아버지, 할머니,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축복의 선물이었다.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을 것이다.
같이 결혼한 작은 어머니는 한 번에 아들을 두 명이나 출산하여 수유와 육아로 정신없이 바빴겠지만 유산을 경험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이 또한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함박눈이 펑펑 오는 날 나는 태어났다.
양 가 어른들과 친척들, 지인들이 나를 보러 병원에 왔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살면서 밝고 맑게 자라겠습니다.
여러분의 축복 속에서 저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