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놀자 낭만여행기 수상에 실패한 나의 소중한 글
야놀자에서는 여행의 기록을 담은 글을 받는 '야놀자 낭만여행기'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원래라면 그냥 넘겼을 광고였는데, 이걸 핑계 삼아 2년이나 지난 여행의 기록을 꺼내보고자 했다.
수상작이 발표되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수상작은 개인 연락이 온다고 했으니 결과는 당연하다.
결과와 별개로, 꽤나 소중한 글이다. 가까운 지인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재질로 소중하다.
간단히 보완해서 여기에 남겨두려고 다시 글을 읽고, 고쳐 쓴다.
줄거리와 플롯은 다르다. 스토리라고도 쓰이는 줄거리는 사건의 시간순 나열이다. 그 자체로도 재미있을 수 있지만 보다 많은 의미와 유희를 위해 작가는 플롯을 짠다. 시공간을 건너뛰거나, 고의로 숨기고 밝히며 의미를 부여한다. 삶도 비슷하다. 야속하게도 흘러가는 우리의 줄거리가 견딜 수 없을 때, 주인공이자 작가인 우리는 플롯을 짜려고 한다.
그리고 모험과 여행은 아주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플롯이다. 소정의 목적을 가지고 떠났다가, 그 목적을 달성하거나 달성하지 못한 채로 돌아오며 완성된다. 성장, 도전, 용기,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 플롯은 일상과 비일상을 장소로써 구분하기에 적잖이 흥미로운 플롯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적을 가지고 떠났다가 돌아오며 완성된다.
나의 목적은 시작이었다. 움직일 여력이 없어 겨울에 급히 떠났다. 그래, 일단 당장 떠날 수 있는, 육로로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기왕이면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순식간에 정한 목적지 여수에서도 이어지는 건 줄거리뿐이었다. 지도와 달리 두 다리의 힘으로 가기 곤란한 곳에서 허탈하게 웃어도, 입맛에 맞는 식당에 두 번 들러도, 볕이 잘 들어 탐스러운 자리에서 한참을 혼자 앉아있어도 내가 기대한 의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말그대로 '막' 떠난 여행이니 그럴 수 있지 하며 둘째 날 밤 숙소로 들어섰다.
나의 목적은 시작이었고, 시작을 가로막는 문제는 많은 생각과 미련이었다. 나의 생각이 여행을 떠나게 했다면, 그의 많은 생각은 세상을 떠나게 했다. 아니, 사회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리 믿을 수 없어서 과거에 매여 헤매었고, 움직일 수 없다. 길게 늘어진 생각과 남루한 미련을 다루지 않는 한, 나의 여행기는 완성될 수 없다. 이렇게 끝내도 되려나, 내일이면 다시 돌아가고 말 텐데. 그러다가 문득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그래, 시작을 보자. 가장 가깝고 어김없는 시작인 일출을 보자.
저절로 눈이 떠진 새벽의 놀라움과 달리, 일출은 대단하지 않았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깨달음을 얻는 일 따위는 없었다. 쌀쌀한 항구에서 러닝하는 몇 명을 보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게다가 야속한 해는 금방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잠깐이라도 봤으니 된 건가? 적어도 늦잠은 자지 않았으니까, 점심에는 돌아가야 하니까. 억지로 씁쓸한 힘을 얻을 뿐이지만 윤슬을 얹은 파도 사이 길게 늘어진 항구를 따라 뒤돌아 걸었다.
그런데 이놈이 한참을 따라온다. 해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데도, 윤슬은 눈이 아프도록 반짝이며 시야를 차지하려 든다. 해로 향하는 길을 그리면서 계속 따라온다. 그렇게 주변이 중심이 될 때, 배경이 전경이 될 때 알았다. 의외의 윤슬이 마음에 들어올 때 알았다. 해가 보이지 않아도 해는 존재한다. 그리고 윤슬은 대단히 반짝이며 해를 증명하고 있다.
해가 될 필요 없다. 내가 새로운 해가 되어 뜰 필요가 없었다. 그가 해라면 나는 그의 윤슬, 내가 해라면 그는 나의 윤슬. 다른 사람처럼 살기 시작할 필요가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 어처구니없을 만큼 빛나서 그가 존재했음을 증명하자. 그렇게 빛을 쏟아내고 난 다음에 만나 말해주고 싶으니까. 당신 덕에 살아보아 보람찼다고, 고맙다고.
그렇게 짧은 장면 하나를 안고 돌아가며 여행을 끝낸다. 단지 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나머지 경험도 필요했을 테지. 여행기는 역시 그런 거지. 목적을 달성하든 달성하지 않든, 어김없이 줄거리가 이어지며 번쩍이는 순간을 기다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