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십년 제주살이를 넘어 이제 백년살이를 향해 가는 나의 어머니
“잘 이선?(잘 있었어?)”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온 어머니가 들어오며 항상 하는 말이다.
“응, 오늘은 오랜만에 바닷가 산책 갔다 완.(왔어)”
그날 있었던 일을 간단히 이야기하며, 우리의 오후 시간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1930년 제주의 서쪽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오빠와 남동생이 있었다고 하는데, 다들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무남독녀로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태어나서 접한 세상은 초등학교에 일본인 교사가 있고, 학교에서 한국말을 쓰다가 걸리면 매 맞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얼마 전 TV에서 위안부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자신이 어렸을 때 친구가 돈 많이 버는 곳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며 같이 가자고 했었다고 그 때의 기억을 말씀하셨다. 모집 하면 같이 가자고 약속해놓고 있었는데, 해방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듣게 된, 1940년대 제주의 두 소녀가 했던 약속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16세의 나이에 ‘해방’이라는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거의 살인 허가를 받은 집단들이 벌이는 4·3의 광풍이 몰아쳤다. 아주 가까운 옆마을까지도 죽이고 죽는 난리가 났었는데, 어머니가 살던 서쪽 바닷마을은 비껴갔다. 그러나, 소위 ‘폭도’들이 마을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마을 주민들이 성을 쌓고 밤마다 보초를 서던 날들이 이어졌던 것은 어머니의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10대의 소녀로서는 해석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시간들이 흐르고, 23세의 어머니는 한반도 북쪽 끝 함경북도가 고향인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아기일 때 생모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버지는 짙은 외로움과 소외감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20대 때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민군 소집령에 의해 모집 대상이 되어 한밤중에 군청에 소집되었다. '전쟁하다 죽을 것인가, 지금 뛰다가 죽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죽을 각오로 어둠 속 탈영을 감행했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종교인들에게는 여러 갈등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모든 종교행위를 당에 보고하도록 강제하고 통제당하였던 당시를 아버지는 ‘자유’가 없는 삶이었다고 표현하셨다. 탈영병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2주가 넘게 지인의 집 마룻바닥 밑에서 숨어 지냈고, 가족들과 조만간 만날 것을 약속하며 남한으로 넘어오게 됐다.
9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꿈속에서 북한의 아버지를 만나 “며칠일 줄 알았는데, 64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라며 뒤늦은 인사를 드리곤 했다. 현실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만큼 그 아쉬움과 허함은 강하게 가슴 밑바닥에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이렇게 월남해서 남한 육군으로 근무하다가 제주에까지 오게 된 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작년 1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65년 넘게 함께 살아오셨다.
23세의 신부는 24세에 첫딸을 시작으로 41세에 막내인 나까지 16년간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다. 낳고 젓 먹이고 키우고를 반복하던 세월이었다. 아버지는 결혼과 함께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서 48년 정도 그 길을 걸어오셨다. 많은 아이와 적은 돈으로 가정을 꾸려가야 했고, 교회의 대소사를 챙기며 아버지의 목회를 돕는 것이 어머니가 그 세월 해 오신 일이었다.
아버지가 마음이 급하고 불같은 성격인 것에 비해 어머니는 언제나 조용히 맡겨진 일을 하신다. 늙으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일편단심 신앙인, 자신의 불같은 성격을 견디고 함께 해준 호인이라고 '애정 표현'을 하곤 하셨다. 아버지의 극복하기 힘든 박탈감과 결핍을 어머니는 조용한 기도로 옆에서 함께 견뎌내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성격에 돈 욕심이 있었다면 대단했을 텐데, 그것이 없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가난에 대한 한탄이 아니라, 돈 욕심이 없음을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의 힘에 대해 자연스럽게 존경의 마음이 우러났다. 또한 정원과 관리인 딸린, 별장처럼 사용하고 있는 옆집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잘 가꾸어진 정원을 자신들이 더 잘 누리고 있다며 만족해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존경스러웠다. ‘내 부모’라는 틀에서 바라볼 때는 그저 당연하고 무심했던 것 같은데, 한 인간으로서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서 곳곳에 존경의 ‘꺼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년 간의 투병 기간을 거치면서 나에게 늙음과 아픔, 상실과 죽음이라는 '인생질문'들을 남겨주셨던 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시다. 90 넘으신 어머니가 혼자 살아가시는 모습은 어떻게 그림을 그려보아도 삐걱거리고 불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내 마음의 먹먹함과 어머니의 어두운 일상에 불빛 하나쯤은 필요할 것 같았고, 나의 결단으로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와 내 어머니는 1년 가까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내 나이 50을 막 넘어섰고, 41살에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90을 넘어섰다. 앞서서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늙어가는 두 여자의 동거생활은 비슷비슷한 일상이면서도 여러 가지 모습과 감정들이 들고난다. 동거를 결정한 덕분에 30년 넘게 떠나있던 제주살이도 새롭게 시작되었다. 오늘은 스치듯 지나가버릴 가을바다를 보기 위해 마을 바닷가 산책을 다녀왔다.
내 마음 속에 담겨있는 나의 50대, 나의 어머니, 나의 제주도 이야기를 앞으로 이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