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제주로,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나 죽을 때까지 이집에서 살면 안 될까?”

by 이진순

작년은 ‘지리산에서 제주로’라는 나의 인생 프로젝트를 위한 해였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마음의 결정을 한 후 어머니에게 전화할 때마다 내가 전셋집을 구해서 어머니랑 같이 살려고 한다는 말을 계속 했다. 어머니 지금 사는 집이 너무 낡아서 거기서 계속 살기는 어려우니 내가 전세를 구하겠다고. 어머니 역시 동의했다. 그래, 이집은 태풍이라도 불면 이젠 불안하다며.


25년 전, 부모님은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그동안 어찌어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자그마한 땅을 사고 아마도 당시 최고로 싼 재료로 조립식 주택을 지었다. 목회를 하는 동안은 교회 사택에서 계속 살아오셔서 부모님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내 집 마련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내 할머니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사시다가 104세에 자신의 방에서 돌아가셨다. 마침 육지에 살던 우리 형제들도 제주에 내려가 있던 상황이었다. 밖에 나가있어서 죽음의 순간을 지켜보지는 못하였으나,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갔을 때 할머니의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내 인생에서 ‘죽음’이란 걸 처음 피부로 느꼈던 곳이 바로 그 집이었다. 할머니처럼 집에서의 임종은 아니었으나 아버지 역시 20여년을 그 집에서 사시다 가셨다.


작년 말 아버지가 위독해져서 병원 입원하신지 한두 달쯤 지나서 제주도에 갔을 때였다. 어머니랑 같이 자고 있던 새벽, 화장실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도 잠에서 깨어 왜 안 자고 앉아있냐고 물었다. 최근에 일어난 많은 일들을 잊고 지내시는데, 아버지가 병원에 가시던 그 날의 상황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상황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병원 가시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아버지를 돌보러 오셨던 요양사 분은 당연히 위급한 상황을 오빠에게 알릴 의무가 있었고, 소식을 들은 오빠는 황급히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셔갔다. 너무나 상식적인 대응이었다. 그렇게 발 빠르고 상식적인 대응 앞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틈도 자신도 없었으리라. 어머니에게 죽음은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어떤 것 같다. 늙고 병들면 죽는 것이다, 왜 병원 가서 고생고생하다가 가야 하느냐라는 게 내가 들은 죽음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이다. 의료의 발전이 자신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소에 잘 안 쓸 법한 단어들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셨다.


무엇이 정답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모두의 앞에 명확한 진로로 놓여있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살아있을 때 충분히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원하는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상태에서 의료시스템에 일방적으로 맡겨진 채 침상에 누워있는 광경들은 생명의 존엄보다는 삶의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튼 그때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기를 바랐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그러셨듯이. 그 집에서 어머니는 10년간 할머니를 모시다가 임종을 지켰고, 아버지와 20년을 함께 살고 마무리하였다. 그런 그곳이 어머니의 삶에서는 당연하게도 특별한 공간이었으리라.


이사해서 나와 함께 살게 될 거라고 수차례 이야기했음에도 계약을 최종 결정하기 위해 집을 보러 갔을 때 어머니는 매우 당혹스러워 하셨다. 집을 둘러보려 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거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같이 갔던 언니와 내가 집을 돌아보며 괜찮지 않냐고 물어도 어머니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 정도만 했다.


차차 이야기하다보면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족들이 총동원되어 지금 사는 집이 얼마나 낡았고 그동안 충분히 잘 살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집은 화장실도 두 개나 있고, 춥지도 않고, 태풍에 창문도 덜컹거리지 않을 것이고 등등 좋은 점들을 나열하는 것이 일이 되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드디어 1박2일에 걸쳐 지리산의 짐이 제주로 내려왔다. 일주일간은 어머니 집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이사한 집으로 가서 짐정리를 하며 보냈다. 그리고, 저녁에는 어머니 짐 중에 가져갈 것들을 챙기며, 어머니의 이사를 준비하였다.

이제 또 설명과 설득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 짐은 이미 이사를 왔고, 어머니 짐은 일주일 후에 앞으로 우리가 살 새로운 집으로 갈 것이다.’ 어머니는 내 설명을 듣고 상황을 이해는 하면서도 ‘이 집에서 그냥 살면 안 될까? 집이 헐어도 나 죽을 때까지는 여기 살아도 되지 않을까?’ 등등의 이야기를 하셨다. 설명을 계속하다 발끈하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너무 여러 번 목이 터져라 이 집에 살기 힘든 이유를 이야기했고, 어머니도 이 집이 불안하다며 동의해놓고 왜 이러시냐고, 나는 이 집에 살기 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게 보자면, 내가 제주행을 결심하기까지 2년이 넘는 주춤거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15년의 세월을 털어내고 정리한다는 것이 그만큼의 과정을 요구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에게도 지금까지 25년 동안 살아오셨던 그 집을 정리한다는 것이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일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연하게나마 어머니는 그 익숙한 공간에서 자신이 숨을 거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4-1.jpg 제주살이 2주째 되던 날, 한라산이 이렇게 자신 모습 전체를 드러내주었다. 이었다. 귀향 2주를 축하하는 한라산의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식된 나무가 몸살의 과정을 거치듯 우리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으리라.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며, 창문 너머 아름다운 풍경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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