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가 함께 재미나게 늙어가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나 ; 어머니. 어머니랑 나랑 앞으로 한 10년 재미나게 살아보까?
어머니 ; 10년이나 살아질 건가?
나 ; 어머니 지금 몇 살?
어머니 ; 몰라
나 ; 어머니 몇 년생?
어머니 ; 1930년
나 ; 올해는 몇 년?
어머니 ; 몰라
나 ; 달력 봐봐
어머니 ; 2020년
나 ; 그럼 어머니 몇 살?
어머니 ; (한참 빼기 암산을 한 후) 90?
나 ; 우리 나인 한 살 더해야 되니까 어머니 올해 91세라. 그니까 앞으로 10년이면 101세 되겠다.
어머니 ; 아휴~~
나 ; 할머니도 104세에 돌아가셔시난(돌아가셨으니) 어머니도 앞으로 10년 재미나게 잘 살 수 있겠지~
어머니 ; 늙어도 재미나게 살아져?
나 ; 어머니 젊을 때는 어신(없는) 돈에 자식 여덟 명 키우고, 아버지 목회 뒷바라지 허느랜(하느라) 고생고생 해신디 이젠 그런 힘든 거 다 지나갔잖아. 살 집도 있고, 좀 있다 같이 살 딸도 있고, 돈 들어갈 자식들도 엇고 허난(없으니까) 어머니 몸만 건강허믄 재밌게 살아질 거 아닌가?
어머니 ; 게메이? (그런가?)
작년에 귀향을 결정하고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이다.
제주를 떠나 서울생활을 시작한지 33년, 그리고 지리산에서 산지 15년 만의 귀향이다. 내가 결정한 일이면서도 지리산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조금은 얼떨떨했다. 처음에는 제주도에 가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친구에게 하면서 울컥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초록이 예쁘기 시작하던 봄, 함양의 상림공원 벤치에서였다.
1년 정도 기간을 두고 올해 초쯤 이사할 생각으로 지리산의 집을 팔고, 제주도의 전셋집을 구하는 등 필요한 일들을 해나갔다. 생각보다 일이 쉽고 빠르게 풀려서 작년 말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마을 이웃들과 이별밥과 술을 나누고, 목기장인 친구에게서 목기도 선물받고, 마침 수확철이라 농부들의 햅쌀도 선물받고, 지리산의 정다운 기운을 받으며 귀향을 준비했다.
꽤 담담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가끔 익숙한 풍경을 보면서 ‘이 풍경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스산한 바람이 일기도 했다. ‘마당에서 보이는 천왕봉도, 기분 좋은 밤공기도 이제 3일 후면 내 눈 앞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새로운 현실은 너무도 쉽게 훅 다가왔다. 이제 51세의 내가 91세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가끔 ‘51세의 어머니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1980년, 51세였던 그녀는 제주도 구좌읍 김녕리의 교회에서 목회자의 아내로, 여덟 자녀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 11살 아이였다. 가난했지만 피아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가끔 생 때 부려대던 아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도시의 잠옷 입은 아이가 너무너무 부러워서 참다 참다 잠옷 사달라고 울먹이던 아이가 나였다. 잠옷은 육지에서 잠시 내려와 있던 큰언니가 나중에 사서 소포로 부쳐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연분홍 잠옷을 입고 그냥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친구들이랑 동네 밤길을 싸돌아다니며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바랬던 것 같다.
51살이었던 어머니를 떠올려보며, 동거를 며칠 앞두고 어머니를 향한 인사를 건넸다.
“51살 어머니~!
11살 나를 돌보느라 애쓰시는군요~
이제 51살의 제가 91세의 당신을 돌보러,
그리고 40년 인생 선배와 사는 것은 어떤 것일는지 배우러
조만간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