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짚고 휠체어 타고 마을길 걷기
내가 살던 지리산 마을은 작은 면 단위 마을에서 웬만한 일상생활이 거의 가능했다. 친환경 매장이나 농부들에게서 먹거리를 사고, 마음 맞는 이웃들끼리 모임도 하고, 산골마을이지만 관광지라 간간이 외식할만한 식당들도 마을 안에 있었다. 물론 그 일상이 조금 지겨워질 만하면, 친구들과 같이 차를 타고 가까운 도시로 나가 ‘도시스러움’을 즐기기도 했다.
이사 준비를 하며 앞으로 제주도에서 살아갈 상상을 해보니, 제주도는 내가 사는 마을에 비해 너무 넓었다. 장을 보려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겠고, 친환경 농부들의 생산물을 직거래하려 해도 농부들은 섬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좀 무거운 것을 사면서 “우리 집에 좀 갖다 줄래?”라고 부탁하면, 땅콩 부대가, 양파 자루가, 마늘 몇 접이 집 현관에 놓여 지던 지리산에서의 생활과는 많이 다를 듯 했다.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마을 친구들과 했던 ‘비니루 없는 점빵’같은 활동을 제주에서 해보려고 해도 차는 거의 필수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사 몇 달 전에 운전면허를 따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 남원 면허시험장에 전화를 했더니, 코로나와 더위 때문에 너무 사람이 없어서 처음으로 몇 개월 휴업 중이라고 했다. 이렇게 운전면허를 향한 결심은 잠시 접어두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제주에 오기 전에 면허를 따놓자던 생각도 차츰 변해서, 제주에서 살다가 절실해지면 따기로 마음먹었다.
결론적으로 제주살이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면허 없이 뚜벅이로 살고 있다. 짐을 갖고 가까운 곳을 다녀야 할 경우에는 지리산에서부터 아끼던 절친 ‘돌돌이’를 주로 끌었다. 이런 내 삶을 주로 카톡을 통해 보던 서울 언니가 자전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장바구니 자전거를 사주었다. 처음에는 불안한 자전거 실력으로 두근대며 소심하게 타고 다녔다. 그런데, 이젠 꽤 늘어서 심장이 팔딱대는 일 없이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다.
물론 차가 없는 삶은 불편한 점이 많겠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가능한 일들 또한 일어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던 즈음, 앞으로 날이 따뜻해지면 어머니랑 바닷가나 마을 연못 등을 산책하고 싶었다. 차가 있다면 고민할 것 없이 편하게 어머니를 태우고 다녀오면 되겠지만, 차가 없으니 궁리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5분 정도 넘게 걷는 건 불가능할 텐데..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휠체어 대여’였다. 요즘 복지 서비스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휠체어도 큰 경제적 부담 없이 빌릴 수 있을 것 같아 알아보았더니 정말 너무 부담이 없었다. 드디어 4월초에 번듯한 새 휠체어가 도착했다. 일단 거실에서 앉아보고 타보고 나서 흡족한 마음으로 잘 모셔두었다.
4월 마지막 일요일, 마치 봄 산책을 위한 날인 듯 화창한 날씨를 맞아 집을 나섰다. 바닷가에 갈 생각이었는데, 바람이 갑자기 거세져서 마을 연못으로 방향을 돌렸다. 지리산의 골바람도 만만치는 않지만, 이곳 제주의 바람은 한 수 위다. 몸이 휘청대고 작은 차마저도 흔들림을 느낄 정도로 강풍이 부는 날이 꽤 있다. 바람의 기세에 우산과 모자 등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때가 많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나는 휠체어를 밀면서 연못을 향했다. 휠체어를 미는 나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어머니는 가능한 휠체어에 앉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걸으려 했다. 곳곳에 피어난 꽃구경도 하고, 넓은 연못 정자에 앉아 물새도 보며 쉬다가 돌아왔다.
다음 일요일에도 우리의 휠체어 여행은 이어졌다. 이번 목적지는 어머니 집이었다. 간간이 오가며 마당의 풀을 베고 작물도 심고 있다. 혼자서 걸으면 30~40분 걸리는데, 어머니랑 같이 지팡이 짚고 휠체어 타고 가보니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가다가 빨간 장미가 예쁜 곳에서는 사진도 찍고, 힘들면 밭 돌담에 앉아 쉬기도 했다. 사람들은 돈 들이고 시간 들여가면서 제주도에 걸으러 오는데, 우린 그냥 집 나서면 걸을 수 있으니 너무 좋지 않냐며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의 얼굴도 밝다.
그동안 겨울에는 집안에서라도 운동 삼아 걸으라고 했었는데, 어머니는 조금 걷다가 허리가 아프다며 바로 앉곤 하셨다. ‘1~2년 전보다 걷는 것도 많이 힘들어졌구나’ 생각했었는데, 산책을 나와 보니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처음에 조금 걷다가 거의 휠체어에 앉아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머니는 몇 년 전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잘 걸었다. 나를 덜 힘들게 하려는 생각에 애를 쓴 것도 있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걷다보면 어느새 꽤 먼 거리를 와 있곤 했다.
도착해서 마당에 자란 풀들을 보시더니 어머니는 거의 자동적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풀을 뽑기 시작했다. 요리와 청소 등 약 70여년 당신의 일이었던 것들이 이젠 거의 내 몫이 되었다. 딸이 차린 밥상에서 맛있게 함께 밥을 먹는 것 역시 좋은 일이겠으나, 자신이 해야 할 일거리를 보았을 때 어머니는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었다.
장마 때가 되면 이 카베라 꽃들을 옆쪽에도 나눠 심어야겠다, 돌담을 둘러서는 쭉 옥수수를 심으면 좋겠다, 토마토 지주대에 끈을 묶어주고 올 걸 그랬다 등 어머니의 몸과 머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차가 없는 불편함 탓에 시작된 우리의 느린 휠체어 여행은 이렇게 진행 중이다. 더웠던 여름 동안 여행이 중단되긴 했으나, 이제 또 추워지기 전에 다시 느린 여행길에 나서야겠다. 이상은의 노래 ‘삶은 여행’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