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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Nov 23. 2021

유배지에서 얻은 농밀한 행복

<유배중인 나의 왕>을 읽다

대부분의 경우, 누구나 늙고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내 부모가 치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설득당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치매와 늙음 등에 대해 깊고 따스한 받아들임의 경지(?)에 이른, 주로 책을 통해 접했던 사람들 역시 비슷하게 덜컹거리는 과정들을 겪었고, 어쩌면 지금도 그 과정의 어떤 지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특별함이라면, 이 이해하기 힘든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결국은 자신의 강고한 틀을 부수고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야 함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한 인간으로서의 상대에 대한 애틋함, 슬픔, 연민 등의 감정들을 갖게 된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 작가인 아르노 가이거의 『유배 중인 나의 왕』을 읽었다. 책을 출간할 당시까지 약 15년 간 치매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을 쓴 것이 10년쯤 전이고, 지금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90대 중반쯤 되었을 것이다. 늙음과 치매가 계속 진행되었을 책 이후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뒤져보았으나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책 속의 주인공과 저자의 사진을 볼 수 있어 오랜만에 만난 이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 저자는 갑자기 모든 것을 놓아버린 무기력해 보이는 아버지를 향해, 화를 내고 미워하고 비난하고 빈정거렸다. 제발 정신 좀 바짝 차려라, 제발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말아라 라며 아버지를 다그쳐댔다. 한참이 지나 아버지가 보이는 여러 행동들이 정신 차리라고 소리쳐서 될 일이 아님을, 상상도 못했던 일이 아버지에게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아버지를 비난하고 교정하려는 데 집중했던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어설픈’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마치 살아있는 듯이 말하는 아버지, 50여 년 전 스스로 짓고 쭉 살아온 자신의 집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집에 가야겠다는 말을 5분마다 반복하는 아버지, 이런 부모에게 우린 어떤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우리들은 사실을 ‘제대로’ 인식시키려는 의지에 불타서 소리를 높이다가 결국 화와 짜증으로 그 시간을 채우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이제 저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이 집이 당신의 집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을까 자문해본다.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죽은 이들을 조금씩 살려내면서 죽음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중이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집에 간다고 할 때의 그 말뜻은 낯설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염원이 담겨있음을 몇 년 만에 알아차린다. 

진실이냐 허구냐가 아니라 아버지를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일수록 더 좋은 것이며, 이제 아버지가 내 세계로 건너올 수 없으니 내가 아버지에게로 건너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객관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우리 사회의 저편에서, 자신의 아버지는 여전히 주목할 만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한 인간에 대한 가슴 아픈 공감과 함께 둘의 관계도 이전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온기를 띄게 된다. 서로의 뺨을 손으로 만지고, 어깨를 걸고 손을 잡으며,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는다. 저자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유난히 농밀해지는 행복’이라고 당시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도, 내 어머니에 대해, 나에 대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더듬더듬 생각이 이어졌다. 우리의 늙어감에 대해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늙어가는 우리네 삶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여전히 어설프고 쉽지 않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기대치, ‘~해야 한다’는 나의 사고의 틀 때문에 화와 짜증이 벌컥 일어나기도 하고, 그런 나를 곱씹어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목표지향적인 우리 사회’에 잘 길들여진 존재임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문득 문득 확인하곤 한다. 그렇게 어머니라는 거울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냉정한 존재이기도 하다. 한 존재에 대한 인정과 받아들임보다는 되어야할 목표치에 한 존재를 우겨넣는 어리석음이 내 삶의 곳곳에 스며있음을 보게 된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많은 순간들과 그 속에 묻어있는 삶의 진실들이 내 가슴에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 많은 것들을 여기서 그려낼 수는 없겠지만, 질문이 가진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 자신이 가졌던 습관적 신념체계에 대해 ‘과연 그럴까?’라고 돌아보는 질문, 타인을 다그치는 질문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질문, 이런 열린 질문은 목표, 성장, 발전 등 삶의 한 단면만이 삶인 양 이야기되는 불균형한 우리들의 삶을 균형과 여유의 길로 이끌어줄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무실래요?’라는 질문과 ‘주무실 시간이예요.’라는 정답 같은 말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의 차이는 질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대표적이고도 단순한 예이다. 이것은 단지 치매환자에게서 드러나는 특수성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남에게서 받고 싶은 대접일 것이며, 치매환자의 경우는 보통 그 반응이 좀 더 솔직하고 직접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인 것 같다. 

불안하고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삶이라는 길 위에서 질문할 여유와 솔직할 용기를 조금씩 배우며 오늘도 어슬렁거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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