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영 씨와 17세 소년 이야기
어지러움과 멀미기가 심하던 며칠간은 창밖 풍경에 대한 감동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일지 않았다. 회복되었던 입맛도 사라졌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증상이 가라앉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했다. 몸 어딘가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도 내 온 신경은 그곳으로 향했다. 세상의 중심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이라는 글을 읽었던 게 떠오른다. 몸도 사회도 문제가 생기고 아픔이 있는 곳이 중심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원리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다 보니 조금씩 살만해져갔다.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던 후배와 통화하다가 내 어지러움 증세를 얘기했더니 유투브 영상 하나가 생각났다며 보내왔다. 언젠가 슬쩍 보고 지나간 이야기 같기도 했다. 미국에서 의대 교수이자 소아정신과 의사 일을 하는 지나영 씨의 영상이었다. 엄청나게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왔고, 소위 ‘성공’이라는 것도 이룬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 앞에서 인생이 멈췄다. 어지러움과 통증 등의 증세로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일상이 이어졌다. 특유의 의지력과 의사로서의 정보력 등을 동원해서 엄청나게 노력했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할 때, 낭포성 섬유종으로 죽어가는 17살 소년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은 것, 힘들고 아프면 나쁜 거라 생각하고, 아픈 사람을 그저 불쌍하게만 생각하고 나아야 될 텐데 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렇다면, 나을 수 없는 죽을병에 걸린 자신의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닌가라고 묻는다. 비록 자신이 나을 수 없더라도 지금 내가 뿌듯하게 사는 것이 삶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지나영 씨는 ‘앞으로 낫고 말리라!’라는 미래형보다는, ‘여기서 살자!’라는 현재형 다짐을 하게 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는 글쓰기였다. 일어나기 힘들 때는 누워서, 그리고 앉을 수 있을 때는 앉아서 책을 썼다.
그는, 좋은 의사가 되려면 아파보고 사랑해보고 이방인으로 살아봐야 된다고 한다. 몸과 마음의 아픔을 직접 겪어본 의사가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아프기 전에도 자신은 환자에 공감할 줄 아는 꽤 괜찮은 의사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프고 나서는 환자들의 아픔을 느끼는 깊이가 달라졌다고 한다. 몸부림치더라도 치유될 수 없는 아픔도 있음을, 환자의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을 탓할 수 없는 깊은 수렁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도 있음을 온몸으로 알게 된 듯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현재’를 살아가라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적 잣대나 타인들의 요구에 자신을 희생시키지 말기를,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현재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당부한다.
나는 ‘희망’이라는 말이 좋다. 침대에 누워 지내던 두 달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큰 힘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병원생활 마지막 한 달을 보냈던 재활병원에서는 창가에 서 있으면 방파제 길을 걷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그 풍경에 나는 포함될 수 없었지만, 그 풍경을 보며 신세한탄을 하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언젠가 나도 마음껏 저렇게 걸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17살 소년의 경우처럼, 나아질 수 없는 상황, 희망이 불가능한 상황 또한 만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다. 아픔과 고통을 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소년의 모습은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한 것임을 잔잔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말해주었다. 보통의 건강한 어른들이 가르쳐줄 수 없는 삶의 진실을, 아프고 어린 몸으로 가르쳐준 그의 삶은 이미 ‘성공’한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등 어쩌면 그 기준과 내용이 분명한 듯한 것들이 나는 의심스럽다.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걸 수없이 들어와서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하며 살아온 것 아닐까 하는 의심.
우리는 아무리 재수가 좋아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고 아프고 죽는 존재이다. 발전과 성장만이 바람직하고 쇠퇴와 상실은 피해야만 하는 재앙이라면, 우리의 삶은 너무 불행할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삶의 진실들을 받아 안으며, 오늘을 뿌듯하게 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