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밀고 시작한 두번째 병원생활

조만간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거야

by 이진순

나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급하게 알아본 결과 가게 된 두 번째 병원이 솔담한방병원이었다. 기본적으로 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치료를 받는 층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받아주기로 했다. 앰뷸런스에 실려 솔담한방병원으로 가다보니 창문으로 조금 익숙한 바깥이 보였다. 가끔 시내에 나올 때면 걸어 다니곤 하던 길이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듯 했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눈물의 이사로 시작된 한방병원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편안했다. 깔끔한 새 건물인데다 종합병원처럼 북적대지도 않았고, 4인실의 방에서 환자 두 명과 간병인 두 명, 이렇게 네 명이 침대 하나씩 썼다. 간병사님은 간병일을 하면서 침대에 자본 적은 처음이라며, 침대를 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화장실, 샤워실 등도 너무 많고 좋다며 연신 감탄했다.

이전 병원 분위기가 위급한 것을 치료해야 하는 긴장되고 분주한 응급실 같았다면, 이 병원에서는 차분히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한약과 침 등으로 그동안 시달린 몸이 달래지는 듯했다. 처음보다는 입맛도 회복되어 가는데, 밥까지 잘 나왔다. 시내에서 산으로 조금 올라간 곳이라 열린 창으로는 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침대에서 등을 뗄 수 없는 이 상태에서도 행복해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옮긴 다음날,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었다. 머리를 감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밀기로 진작 결정은 했는데, 새로운 병원으로 올 때 첫인상이 너무 안 좋을까 싶어 미루어 두었었다. 잘려나간 머리만큼 마음도 시원해졌고, 머리감는 일도 훨씬 편해졌다.

한 달 후인 6월 중순에 수술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는데, 그 날 침대를 벗어나 일어서는 연습을 시작할지 결정을 내려줄 것이다. ‘이제 일어서는 연습 시작해도 돼요’라는 의사의 말을 떠올려보며 이제 또 한 달을 잘 살아내기로 했다.

좋은 컨디션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해서 이틀째 되던 날, 갑자기 누가 만지기만 해도 발목이 아파왔다. 또 며칠 후에는 엄지 발가락과 발바닥 앞부분이 전기 통하듯 찌릿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수술의에게 물어봤더니 골반 깨진 곳이 신경이 많은 부분인데, 거기에 깨진 뼛조각들이 있고, 그것들이 신경을 건드려서 생기는 증상일 수 있다며 좀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히 이런 증상들은 차츰 사라졌다.

사고 40여일 만에 허리에 침을 맞기 위해 엎드리기를 시도했다. 반쯤 돌아누웠는데 세상이 빙글 돌았다. 잠시 멈추니 괜찮은 듯해서 완전히 엎드리기를 시도했고, 등에 침을 맞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참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침을 빼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기력 부족이 원인일 수 있으니, 보하는 약을 먹으면서 허리에 침 맞는 것은 미루기로 했다.

침대를 조금씩 더 세우다가 거의 완전히 세워서 앉아보았다. 컴퓨터도 조금씩 쓸 수 있게 돼서 병원에서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창가 침대에 있던 환자가 퇴원해서 그쪽으로 옮겼다. 창을 통해 저 멀리 바다와 하늘이 보였다. 다음날 바다가 보이는 아침 풍경을 벅찬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바다가 보이는 아침입니다. 얼마만이니 제주바다~!!’라는 톡을 가족들에게 보냈다.

이렇게 내 몸도 환경도 조금씩 좋아지던 그 때 멀미가 시작되었다. 그 때 멀미기와 함께 썼던 글이 ‘트럭이 나를 치었다. 나의 일상이 부서졌다’이다. 멀미기는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침대를 거의 90도 가까이 높여서 앉은 채로 한 시간 가까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먼 곳의 풍경들을 창을 통해 맘껏 볼 수 있었던 것 정도가 큰 변화였을 텐데, 그런 변화들에 내 머리와 눈이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올렸던 침대를 다시 내리고 속도조절을 하며 지내다보니 서서히 멀미기가 누그러졌다. 또 어지러울까 두렵기도 했지만, 몸을 뒤집고 싶었다. 혼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어지러우면 잠시 멈추어가면서 뒤집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엎드린 채로 한 30분간 쉬는 것도 가능했다. 엎드려 있으니 오랜만에 등이 숨을 쉬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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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기, 발가락운동, 다리 들기 운동 등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운동들을 조금씩 하고, 티비를 많이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침대를 조금 세워서 책 읽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친구가 책을 사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한 친구는 내가 원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곤 했다. 책의 이야기에 쏙 빠져 있는 동안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내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다. 책을 빌려다 주면서 앞으로 걷기 시작할 때 신을 편한 신발도 사다주었다. ‘조만간 저 신을 신고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거야’라며 서있는 내 모습을 간절히 그려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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