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뷸런스 타고 퇴원하라고요?

by 이진순

마당에서 불쑥불쑥 돋아나는 풀들이 봄을 알린다. 봄의 생명력이 기쁘기만 한 게 아니라 이제 빨리 풀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 한편이 묵직하다. 그래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나서 마당에 주저앉아 풀을 뽑는 것이 오늘의 계획이다. 아마도 따뜻한 햇살이 풀 뽑는 나를 따뜻이 응원해줄 것 같다. 일기예보를 검색하며 택일한 덕이다. 바람에 실려오는 봄냄새, 마당에 피어난 빨간 동백과 노란 수선화, 산책길에 만나는 유채꽃의 흔들림 같은 일상의 순간들을 당연히 맞이하다가도 문득 ‘이 봄을 내가 다시 느끼는구나!’라며 약간의 울렁증을 느끼기도 한다.

언제쯤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을까 손꼽던 지난 병원생활이 마치 오래전 이야기인 듯 흐릿하다. 지금의 일상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그 흐릿해진 기억을 찬찬히 되돌아본다. 수술한지 열흘 정도, 입원한지 20일 가까이 지나자 안 아픈 한에서 30도쯤 침대를 세워도 된다는 의사의 말이 떨어졌다. 설렜다. 침대를 조금 세우니 주로 천정만 바라보던 눈에 건너편 침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가슴에 그릇을 놓고 20여일 만에 스스로 숟가락을 들고 짬뽕밥을 떠먹었다. 입맛을 잃은 상태였는데, 얼큰한 맛이 속을 어루만져주듯 반가워서 국물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물론 여기저기 흘려가면서.

그리고 입원 이후 내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 어쩌다 얼굴을 만져보면 관자놀이와 턱 부위가 좀 아프기도 하고, 눈을 세게 감으면 묵직한 느낌이 전해지기도 했다. 조금씩 살만해져가니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약간 궁금해졌다. 침대 세운 날 기념으로 가족들에게 사진도 보내고 얼굴도 확인할 겸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간병사님 얘기를 들으니 처음엔 얼굴도 붓고 멍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새 많이 가라앉았는지 나름 멀쩡해 보였다.

이렇게 막 몸이 아물어가기 시작할 때 ‘퇴원’ 얘기가 조금씩 나왔다. 나는 그 단어를 들으면서 ‘아! 조금 있으면 내가 목발에 의지해서라도 집으로 갈 수 있는 몸이 되나보다. 그렇게 집에 계속 있기는 힘들 테니, 다시 입원 준비를 해서 다른 병원에 입원해야겠지? 양방병원보다는 한방병원에 입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등등의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퇴원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퇴원이 아니었다. 이 병원에서 수술은 잘 끝냈으니 이제 수술 후 관리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앰뷸런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병원의 시스템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몸도 움직일 수 없는 내가 퇴원을 해야 한다는 말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는 것이 발등의 불이었기에 당황스러움같은 감정은 서둘러 치워야 했다. 그래도 상황을 조금 이해는 해야 마음이 편해지니 애써 이해를 해보았다. 긴급 환자들의 수요를 감당해야 하는 종합병원에서 수술과 같은 긴급 처치가 끝나고 최소한의 시간이 지나면, 환자는 또 어딘가로 옮겨야 되는 건가보다 라고 대략 스스로에게 이해를 시켰다.

급한 불을 끄느라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나는 아마 ‘퇴원 상담’같은 서비스 제도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병원이라는 환경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환자들은 병원이나 의사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라는 존재 없이는 불가능한 병원에서 환자는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수술이 잘 된 것만으로 회복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기에 환자의 여러 상황에 맞게 이후에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주고 얘기 나눠줄 상대가 있었으면 했으나 없었다.

‘의료연계서비스’라고 해야 할까? 그런 서비스는 큰돈과 많은 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작은 정보와 도움이 아픈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작은 도움의 결과가 큰 도움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따뜻한 ‘효율성’을 품은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환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보니 그런 것들은 환자 개인이나 가족의 몫이었고, 환자들끼리 이런저런 정보와 서비스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돕고 의지하고 있었다. 도울 가족이 없거나 주변과 소통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환자라면, 몸이 아픈 것 이상으로 이런 상황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방치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의사들 개개인을 보자면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보다는 친절하고 덜 권위적인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은 금’이라는 표어가 가장 잘 들어맞음직한 병원이라는 구조 속에서, 3분 진료 원칙 등이 의사와 환자의 등을 떠미는 상황에서 의사는 한 환자에게 충분한 금을 줄 여유가 없다.

아픔이 마중하는.jpg

부모님의 노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의 동거, 그리고 나의 사고와 병원생활...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삶의 필수 요소인 아픔과 늙음, 질병과 돌봄 등에 내 마음이 머물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왕진 의사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슬픔, 따스함, 절망 등 여러 감정들이 오갔다. 메마르고 딱딱해져 돈 계산 외에 무언가를 느끼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만성 불감증을 앓는 듯한 세상에서 그래도 나를 덜 딱딱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도 삶은 살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전 09화4개월 동안 감사했던 간병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