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동안 감사했던 간병사님

퇴원 4개월만에 다시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by 이진순

넉 달이 조금 넘는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온 지도 벌써 넉 달이 되어간다. 시간은 한 해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이었다. 몸은 꾸준히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불편함과 통증을 안고 산다. ‘재활’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보구나 하며 적응을 위해 노력 중이다.

조금씩 몸이 회복되어가는 와중에 어느 샌가 마음이 골절상을 입은 듯 힘든 시간들이 찾아왔다. 특별한 그 무엇을 해내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하루가 밝아오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낸다는 평범한 일상이 버거워지곤 한다.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치료의 시간이 필요한가 싶다. 무언가 내 마음이 쏙 빠져들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보려 한다. 조만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재밌는 소설들을 읽어야겠다. 그러다보면 마음이 조금씩 꼼지락거리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오랜만에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이미 써놓았던 글을 조금 짧게 줄이거나 나누어서 올려야지 마음먹고는 오래도록 못하거나 안 했다. 그다지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일을 실제로 시도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끙~!’ 소리를 내며 힘을 모아본다. 그리고 앞으로는 매일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아야지라고 작은 소리로 소심하게 다짐한다.

이제 퇴원한지 4개월이 지나가니 지난 병원생활이 아득히 먼 옛일처럼 느껴진다. 그 때의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다시 새롭게 나의 일상을 보듬어보려 한다. 그 때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간병사님이 떠오른다. 내가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두 달 간은 전적으로 내 손발이 되어주었고, 그 이후 두 달 간은 조금씩 움직이려 노력하는 나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도와주고 응원해주었던 분이다.

물론 타인이 내 손발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은 당연히 불편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편을 감수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남을 돌본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던 책 중 『노인 수발에는 교과서가 없다』라는 책이 있다. 재미라곤 없을 듯한 책 제목에 비해 아주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그 책에 따르면, 수발은 2인3각 경기와 같이 서로를 맞추어가는 과정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목표로 호흡을 맞춰야지만, 넘어지거나 나뒹구는 일 없이 하루하루 일상을 별 탈 없이 살아낼 수 있다.

통증을 견뎌내는 일, 24시간을 침대에 누운 채로 있어야 하는 일, 입맛이 전혀 없는데 누운 상태에서 남이 떠주는 밥을 삼키는 일, 침대에서 머리만 밖으로 내밀고 목을 가누면서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애쓰며 머리를 감는 일 등 순간순간이 불편함 그 자체였다. 간병사님은 내 표정, 말, 몸짓 등을 통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냈다. 그리고 불편함을 피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덜 불편하도록 내 몸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살피고 닦아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나의 아픔과 불편을 넘어 주변을 볼 여유가 조금 생기자 내 옆 낮고 좁은 간이침대에서 거의 24시간을 보내고 있는 간병사님이 보였다. 좁은 공간으로 간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밤이건 낮이건 계속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간병이란 것이 이루어졌다. ‘저 좁은 데서 24시간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입원 두 달쯤 되던 때였던지 후배랑 전화하던 중에 간병인과 계속 같이 있어야 하는 것도 참 불편하겠다는 말을 후배가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당연히 내 옆에 있어야 되는 사람이 없으면 난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간병사님의 손길과 존재에 익숙해져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즐기는 편인데, 전적으로 남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어느새 그런 욕구 자체가 없어져 있었다.

탑동방파제길.jpg 우리 병실 간병사님 두 분이 새벽마다 산책을 나가셨던 방파재. 창문에서 두 분이 걷는 모습을 찍었다. 많이 확대해야 알아볼 수 있는데, 손주에게 찾아보라고 해보시라며 보내드렸다.

간병이라는 것이 힘들고 고된 박봉의 일이라 한국인들은 간병을 하려는 사람이 적고, 간병인의 90% 정도인 20만 명 정도가 중국동포라고 한다. 간병사님도 그중 한명이다. 간병사님이 쓰는 말투나 단어는 당연히 남한의 우리들과는 꽤 다르다. 들어본 지 오래됐지만, 어렸을 적부터 익숙했던 단어들을 간병사님을 통해 듣곤 했다. 예를 들면, 목욕을 시키려다가 때수건을 안 갖고 왔다며 “제까닥 가서 가져올까?”라고 간병사님이 묻는다. “제까닥 갔다 오는 사이에 누가 제까닥 문 열면 어떡해?”라고 맞받으며 웃었다. 성격이 급했던 아버지가 종종 썼던 ‘제까닥’은 ‘얼른, 바로’를 뜻하는 북한 말이다.

입원 중 특히 초기에는 누워 있다가 갑자기 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가 종종 있었다. 사고 당시를 상상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떠올리다가 그런 순간들이 문득 문득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 간병사님은 애써 위로의 말을 찾거나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항상 옆에 있는 사람이 위로하려 애쓰는 스타일이었다면,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그 시간이 지나길 말없이 기다려준 덕에 나는 조금 더 편하게 내 감정을 풀어낼 수 있었다.

간병사님에게서 그동안의 간병 경험을 들어보니 간이침대가 있는 것은 양반이고, 맨바닥에서 자야 하는 병원도 많다. 바닥의 냉기가 너무 심해서 담요 한 장만 더 달라고 부탁하면, 이미 한 장 받아가지 않았냐고 찬바람 불게 쏘아대는 간호사들도 있다고 했다. 냉기를 막아줄 작은 핫팩을 사던지 다른 간병인을 통해서 환자가 쓰는 것처럼 둘러대서 담요를 얻기도 했다. 병원마다 또 개별 간호사마다 간병인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큰 것 같다.

내 간병이 끝나고 하루 쉬고는 또 한라병원에서 할아버지의 간병을 하고 있는 간병사님께 남 간병하느라 몸 상하지 않도록 건강 잘 챙기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돌봄 노동을 비롯해서 타인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을 하는 많은 이들이 그에 걸맞는 대우와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이 조금은 더 겸손하고 따뜻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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