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공포, 그럼에도 그리움과 희망을 품는 나날들
국방부의 시계가 돌아가듯 병원의 시계 역시 돌아갔다. 통증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몸의 많은 부분이 고장 나 있던 상황, 그리고 극도의 통증의 시간이 지나고, 통증으로부터의 해방의 시간이 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생활이 익숙해지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과 기억들이 오갔다.
사고 장소에서 내 앞에 보이던 트럭이 스냅 사진처럼 떠올랐다. 오빠의 말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서 정신이 들어 소방대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도 하고, 사고가 좀 났다고 오빠에게 전화도 했다 한다. 내 말투가 별스럽지 않아서 오빠는 큰 사고가 났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나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고 며칠 후 경찰이 전화가 와서 현장 사진을 보니 트럭 밑에 자전거가 있더라는 말을 해주었다. ‘죽거나 혹은 머리나 척추가 다쳐서 의식에 문제가 생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순간이었구나’란 생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최대한 피해보려고 구석으로 피하는 나를 왜 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타인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차를 몰면서 사람들이 너무 부주의하단 생각에 분노스러웠다.
‘5분만 일찍 아니면 늦게 집을 나섰더라면’하는 생각이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떠오르곤 했다. 항상 쓸 데 있는 것만 하며 살아지는 건 아니니. 또 ‘트럭과 부딪친 후 떨어진 곳이 흙이 아니라 시멘트였더라면’하는 상상을 하며 끔찍해하기도 했다.
내가 이전에 마음 편히 즐겨 걷던 마을길을 앞으로도 그렇게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달리는 차가 나를 덮치는 순간이 자꾸 그려졌다. 각자 지킬 것을 지키면서 서로를 지켜 주리라는 믿음이 완전히 부서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몸이 조금씩 아물어가듯 이런 공포와 불신도 서서히 아물어갈까?
사고 전날 마을길 풍경이다. 이 익숙하고 편안했던 길을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이라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할 것 없던 말이 엄청난 무게로 나를 눌렀다. 알 수 없는 어두운 미래를 더듬으면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숨이 막혔다. 내 머리나 마음으로 감당하기 힘든 생각들이 나를 내리눌러 마치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듯 답답한 순간들이 불쑥 불쑥 찾아왔다. ‘으악!’ 소리라도 질러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정신적 어려움을 오랫동안,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강하게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힘들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두 달 조금 넘게 병원 침대에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들에 대해서도 평소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넘어가지 않는 밥을 삼키느라 목이 아프지는 않은지, 매 끼니 나오는 약을 넘기는 일은 안 힘든지, 간병사님과는 좀 친해졌는지 등 묻지 못한 말들이 많다.
나는 그래도 뼈가 잘 붙으면 예전처럼 자유롭게 걸을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지만, 그런 희망조차 없이 현재를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내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전까지도 당연했던 나와 어머니의 일상이 손에 닿지 못할 과거이자 미래로 멀어진 현실이 생생하면서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요즘 가족 단톡방의 대화를 거슬러 보다보니 어머니 소식을 알리는 오빠의 글이 있었다. 글에 따르면, 내가 다치고 이틀째 되던 날 아침, 어머니가 일찍 일어나 거실에 나왔다. 오빠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고 물으니 울먹이면서 진순이 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다. 좀 더 주무시라고 하니 두 시간쯤 또 푹잠 주무시는 중이란다. 목은 울컥하면서 아파오고 눈엔 눈물이 고이는데, 입으로는 푸훗 웃음이 나왔다.
또 어머니는 언젠가 언니와 오빠에게 자신 때문에, 자신이 볼 책을 빌리러 가다가 진순이 사고 났을 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사고 하루 전이던가 어머니에게 내가 물었었다. 이제까지 봤던 동시집을 도서관에 반납할 건데, 다음에 또 시집을 빌려올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책을 빌려올지. 어머니는 이야기책을 원했다. 잠시 지나치듯 나눴던 대화를 어머니가 기억하고, 사고가 자신의 탓이라고 연결지어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아팠다. 사고가 났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튼튼하게 낳아줘서 잘 회복되고 있다고 전화로 고마운 맘을 전했다. 어머니는 그런가 하며 말을 흐리면서도 마음이 조금 놓이는 듯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사고를 당했고, 또 우연히 그리고 감사하게도 의식에 문제없이 살아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동정이라곤 없는 듯 무심히 흘러가는 삶의 흐름 속에서 과거의 내 몸이 얼마나 온전했는지를, 가끔은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던 나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온몸으로 깨달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 깨달음이 앞으로의 내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