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초기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
사고가 난 곳 바로 건너편에는 119센터가 있었다. 아마도 그곳 근무자들이 나를 응급차량으로 이송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제주권역외상센터인 한라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낯선 병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3인실에 며칠 지내던 중, 4인실에 창가 자리가 났다며 이사를 권하기에 그곳으로 옮겼다. 침대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하늘이 보였다. 누워있는 침대가 내 공간의 전부인 나에게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내 침대와 간병인 침대 사이는 간호사나 의사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1~2평정도 될 듯한 공간이 나와 간병인의 방인 셈이다. 커튼 바로 너머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다른 환자의 침대가 있었다. 부서진 몸에 온 신경이 가있는 터라 그 공간이 좁다거나 답답하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다.
사고와 함께 식욕도 거의 사라졌다.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고역인지 내 인생 처음 느껴보는 것 같았다. 더구나 이 병원 저 병원의 상황을 잘 아는 간병인들의 말에 따르면, 한라병원의 밥은 맛없기로 유명하단다. 누운 상태에서 남이 떠주는 그 맛없는 밥을 삼키는 일은 피하고 싶은 힘든 노동이었다. 사고 전에는 단맛의 군것질거리도 좋아했는데, 그것 역시 생각만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사발면이었다. 다행히 사발면은 국물 한 방울 안 남길 만큼 내 입맛에 맞았다. 입맛 없던 초기에 4~5번 정도 사발면 덕에 행복했었다.
입원 며칠 후 정신이 조금씩 들다보니 통증이 몰려왔다. 먹는 진통제는 기본이었고, 그것으로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링거 진통제가 들어왔다. 그것으로도 역부족이면, 마약성 진통제가 링거에 더해졌다. ‘너무 아파요’라고 애원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언제까지 이 통증이 계속 될지 공포가 밀려왔다. ‘아프지만 않다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트럭과 부딪친 왼쪽 종아리뼈, 골반, 갈비뼈가 부러졌고, 입원 8일째 골반수술이 진행되었다. 좀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수술 설명을 대략 들었다. 지금 몸 아픈 것이 우선이라 앞으로 있을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코로나로 모든 면회가 금지된 상태였는데,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그 앞에 있던 언니와 잠시 눈을 맞출 수 있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수술은 잘 됐다고 했다. 요즘에서야 내가 받은 의료 자료를 살펴보니 한 시간 정도 수술이 진행되었다. 깨진 뼈를 잇기 위해서는 꽤 많은 살을 가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술의 흔적은 작은 상처 자국 정도로 남아있었다. 의료 기술의 발전이 놀라웠고, 성공적인 수술로 부서진 내 몸을 치료해준 의사 등 의료진들이 고마웠다.
수술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링거 진통제 없이도 편히 잘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그 순간만큼은 지상최대의 소원을 이룬,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날아다닐 듯했다. 그 힘든 통증의 시간도 지나갔으니,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는 이 시간도 지나가리라는 긍정의 에너지가 피와 함께 몸속을 힘차게 흐르는 기분이었다.
침대가 내 공간의 거의 전부인 단순한 생활 속에서도 나름 다양한 순간들을 맞았다. 5월의 어느 날인가는 우연히 간병사님의 생일인 것을 알게 되어 케이크를 사고 촛불을 끄고 옆 칸 이웃과 수다 떨며 나누어 먹었다. 아주 초기였으면 케이크도 속이 울렁거려 못 먹었을 텐데, 예전의 입맛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
또 언젠가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문득 발견하기도 하고, 간병사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소리 내어 웃는 시간도 있었다. 황무지에 작은 새싹이 돋아나듯 내 삶에도 언젠가부터 노래, 웃음 등 내가 평소에 즐기던 순간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어~ 내가 흥얼거리고 있네!’, ‘내가 소리내서 웃는구나~’라며 속으로 놀라곤 했다.
병원으로의 이송, 수술, 나의 손발이 되어주는 간병사님, 매일 전화를 해서 나의 하루를 묻는 언니들, 나의 안부를 묻고 걱정을 나눠주던 친구들의 마음과 정성 등 많은 것들이 병원에서의 내 삶을 가능케 해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3개월이 넘게 내 대신 오빠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관계 속에서 나의 부서진 몸과 마음과 일상은 다시 조각조각 모자이크처럼 자신의 자리를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