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소박한 호강과 행복
제주에 온 지 3주쯤 되니 거실 소파와 커튼까지 필요한 큰 것들이 대부분 갖춰졌다. 대형 박스들로 가득 차있던 거실도 매우 거실스러워졌다. 어머니도 널찍하니 여기에서 자도 되겠다며 좋아했다. 일요일에 교회 다녀와서 창가의 햇살을 받으며, 가끔씩 여기에서 여유로운 낮잠을 즐기신다.
어머니의 구순 생신 전에 기본 가구들이 갖춰지니 만족스러웠다. 이사 계획을 할 때부터 집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어머니 생신을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날을 잡았다. 12월 6일 생신 전날 가족들이 모였다. 원래 거창한 규모나 격식을 따지지 않는 집안이라 부담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했다.
맛있는 반찬 몇 가지와 미역국, 예쁜 꽃떡케잌, 그리고 구순 축하 영상 등을 준비했다. 뭘 이렇게들 준비했냐는 어머니 말에 건강하게 90번째 생일을 맞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대단히 축하받아야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모였던 가족 중 누군가가 케잌이 얼마냐 물어서 7만원이라고 답하며 어머니를 쳐다봤더니 예상대로 매우 놀라셨다. 왜 이렇게 비싼 걸 샀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 꽃 하나하나 만드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엄청난 기술과 노력과 시간이 든 케잌이다, 90번째 생일은 이 정도 비싸고 예쁜 케잌은 사도 된다고 선수를 쳤다. 그 말에 조금 설득이 되는 듯 예쁜 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촛불을 밝히고 축하노래를 부르고 먹고 정리하고 좀 쉬다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만족스럽게 배가 불렀으니 이제 영상을 볼 시간이다. 결혼사진부터 해서 중년의 어머니 모습들이 이어졌고, 90의 어머니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4분 조금 넘는 영상이었다.
영상을 멈춰가면서 사진 하나하나 설명을 곁들이고 예전 기억들을 함께 회상해가며, 4~5번이나 반복해서 봤다. 물론 사진이 귀하던 시절이라 어렸을 때 사진은 없었다. 결혼 쯤은 해야 사진을 찍던 시절, 사진 없음이 또 그 시절을 이야기해주는 것일 거다.
집에 보관돼 있거나 내가 찍었던 어머니 사진들 중에서 50장 정도를 고르고, 그 사진을 보며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썼다. 물론 이것을 기술적으로 완성시킨 것은 내가 아니다. 실상사작은학교 교사 시절, 나보다 반년쯤 일찍 학교에 들어와서 자기가 ‘선배교사’임을 잊을만하면 강조했던 동료 교사가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믿고 부탁할 수 있고, 기꺼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할 뿐이다.
내가 보낸 글을 보고는 어머니가 글을 보시기보다는 목소리로 듣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혼자 글을 읽고 녹음을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목소리도 맘에 안 들었다. 그러나, 음악과 사진이 함께 하니 잠긴 듯한 목소리도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어머니, 생신 축하합니다’를 제주말로 번역해달라고, 구글 번역기에도 없다고 카톡이 왔다. 구글보다 훌륭한 제주어 번역기인 내가 ‘어머니 생신 축하햄수다예~’라는 답을 보냈고, 이것이 작품의 제목이 되었다. 영상 덕분에 잔치의 급이 높아졌다고, 감사의 카톡을 보냈다.
잔치 다음날이자 어머니 생신날, 둘이서 교회를 다녀온 후 다시 그 영상을 봤다. 어머니는 어제 우리가 이걸 몇 번이나 봤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냐며 신기해하고 좋아하셨다. 일주일 후쯤 또다시 영상을 봤는데, 어머니는 볼 때마다 처음이고 새로웠다. 한 번 만든 것이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되니 이것도 나쁠 건 없었다. 앞으로도 간간이 심심할 때 봐야겠다.
너무 좋은 상황일 때 어머니는 할머니나 아버지 얘기를 하곤 한다. 영상을 보고나서는 “아버지도 같이 봐시민 좋아실 건디”라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햇살이 비쳐드는 창밖을 내다보면서는 할머니도 이런 집에 살았으면 엄청 좋아하셨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도 남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살다가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이 좋은 것들을 혼자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에 할머니와 아버지 생각이 나나보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절은 이렇게 ‘호강’하며 살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너무 편하다, 호강한다,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볼 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발이 시리지 않을 정도의 온기가 있는 방바닥, 방에 화장실이 있고 변기가 차갑지 않은 것, 편안한 침대 등 어쩌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당연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이런 소소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나 역시 감사하다.
영상의 마지막은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우리들의 마음을 전했다.
‘1930년 음력 10월 22일에 태어나 90년을 고생하며 살아오신 우리들의 어머니 고영선 씨~!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91세의 고영선을 우리 모두가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다니는 센터에서도 10월부터 12월까지 생신을 맞은 분들의 생신 잔치를 열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니는 축하 카드와 선물 꾸러미를 안고 오셨고, 센터 SNS에는 잔치 영상도 올라왔다. 곳곳에서 전해오는 축하의 기운으로 어머니의 표정과 기운은 하루하루 밝아지고 젊어지고 있다.
비행기표도 예매해뒀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만만치 않아 육지의 언니네 가족들은 함께 하지 못했다. 우리들이 ‘일상’이라 말하던 당연한 것들이 무너진 지금, 이 역시 우리를 가르치는 따끔한 회초리라 생각하며, 일단 우리 둘의 건강을 잘 돌보며 하루하루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