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까지 '좋은삶'을 살기 위하여
미국 의사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 중 1인이기도 한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예전에 읽었다. 저자는 현대화가 되면서 노인들에 대한 존중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젊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존중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이라면, 독립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 아마도 이 책은 이 질문을 풀어가는 긴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미국 오리건주의 어시스티드 리빙 이야기가 나온다. 인상 깊게 읽었던 것을 지난 5월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3부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에서 보게 되었다.
어시스티드 리빙은 의존해야 하는 시기가 와도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되고자 했고, 주민들이 이곳을 ‘집’이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랬다. 80년대에 문을 열자마자 입주 인원이 꽉 찼고, 이곳 노인들은 1인실인 자신의 방에서 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는 등 각자의 습관과 취향에 맞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직원들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세심하게 묻고 살핀다.
초기에는 노인들에게 이런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공격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주민들의 건강이 오히려 좋아지고 만족도도 높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정부 보조 비용도 다른 요양원들보다 20%나 절감되었다.
창립자 케런은 이 시설에 사셨던 분이 처음 돌아가셨을 때 신문에 났던 부고를 떠올린다. “그가 집에서 돌아가셨다”라는 부고를 봤을 때를 그녀는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 ‘어마어마한 감동’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이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기가 저의 집이예요”라고 당연하게 말한다.
케런은, 나이 든 분들이 스스로 표현하기를 겁내지 않기를, 나이 든 분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들도 자율적인 인간이라는 점을 존중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전문적인 간병인이, 인간적인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상에 나오는 일본의 요양원에서는 식사시간이 2시간이다.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먹는 음식도 다르다. 가능한 자신의 속도대로 스스로 식사하고, 또 느리게 약을 챙겨 먹는다. ‘느리다’는 것은 외부의 기준을 설정했을 때 가능한 평가이다. 이곳에서 그들의 속도는 ‘느린 것’이 아니라 ‘나다운 것’이고, 필요할 때만 도움을 받는다. 본인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양원 소장은 돌봄이 지나치면 결국 노인들의 자유를 빼앗게 된다고 생각한다. 치매 노인들이 집에 간다고 시설을 나서도, 제지하는 대신 배웅 인사를 한 뒤 그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적절한 때 말을 걸고, 시설로 자연스럽게 돌아올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간다.
요양원에서 운영하는 과자가게에는 93세의 최고령자 할머니가 계산대에 앉아있다. 할머니는 6년 반 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는데, 잘 챙겨줘서 할머니가 말도 잘할 수 있다고 자기소개를 한다. 과자가게 손님 중에는 할머니의 손자도 포함되어 있다. 할머니는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어 행복하다며, 건강이 나빠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걷고 있다고 말한다. 내년부터는 수영장을 다닐 계획이다.
인간적인 삶의 마지막 과정에는 ‘느리다’, ‘치매에 걸렸다’라는 평가나 진단보다는, 그 사람의 속도와 욕구를 인정하고 함부로 고치려 들거나 침범하지 않는 인간적 시선이 있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내미는 조심스럽지만 숙련된 손길들이 있었다. 나이나 질병에 상관없이 우리는 근본적으로 같은 인간이라는 연대의식, 그리고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미는 연민이 있었다.
늙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도한 혐오와 공포는 아마도 이런 인간적 연대와 연민, 돌봄이 부재한 현실을 반영하는 현상인 듯하다. 영상의 앞부분에는 모녀 사이인 듯한 둘이서 죽음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엄마는 “어떻게 죽을까?... 많이 생각해.... 나도 갑갑해. 앞으로 사는 것이. 너무 오래 살아”라며, 죽음의 문제 앞에 속수무책임을 털어놓는다. 돌봄이 없는 장수는 재앙일 수밖에 없기에, 길어진 수명을 탓하는 어쩌면 마음에 없는 말로 갑갑한 대화가 마무리된다.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3부작은 고령화 속도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우리 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들을 깊게 다루고 있다. 아툴 가완디는 위 책에서 안락사 문제를 이야기하던 중 ‘어시스티드 리빙’은 ‘어시스티드 데스’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근본적인 바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바램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들을 끈기 있게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들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