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볍게 즐기는거, 그거 하고 싶어
취향은 타고나는걸까 만들어지는걸까 궁금했다. 아무도 나에게 덕질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덕질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 대상이 만화였고 중학생 이후로 대체로 연예인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웹소설로 이어지는 그 덕질 대상은 컨텐츠로 통칭할 수 있겠다.
모노노케 히메를 보고 사로잡혔던 1999년을 기억한다. 영상만으로 대자연에 압도될 것 같았던 순간들, 숲 너머로 사슴신이 보였을 때의 생경함과 두려움, 오감을 증폭시키는 음악, 선과 악으로 나누어졌다가 다시금 깨어지는 2시간의 세상을 처음 만난 충격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CD를 구하고, OST를 찾아보고, 자급자족으로 악보를 만들고, 아시타카를 그려가며 사랑했던 그 행위가 덕질이 아니면 무엇일까. 잘 만든 컨텐츠는 누구나 즐겁게 소비하지만, 누구나 러닝타임의 몇십배에 달하는 시간을 들여 탐닉하지는 않는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가 매료되는 이유는 뭘까.
덕질의 불가항력적인 특성을 고려했을 때, 덕질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이며 취향은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취미를 이야기 할 때 덕질은 논외로 이야기한다. 물론 덕질이 취미일 수 있다. 다만 나에게 덕질은 다소 저항할 수 없는 힘에 휘말리는 느낌이라, 가볍게 즐긴다기 보다는 운명에 순응하는 느낌이다. 서른이 넘어가니 취미생활 수준으로 조절이 가능해지기는 했는데, 그러한 이유로 이십대때는 덕질 말고 취미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덕질이란?
1. 깊이 몰두하여 일상 생활 불가능
2. 소비 활동
취미란?
1.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활동
2. 산출물이나 부가적인 효과 존재
물론 이제 취미 수준의 덕질이 가능하며, 생산은 회사에서 하고 있으므로 휴식을 위해서는 소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초년생 때는 회사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불안했고, 뭐라도 생산적인 취미를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계속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한국인 특유의 강박이 있었다.
덕분에 수많은 원데이 클래스를 들어보게 되었고 인생 운동을 만나 꾸준히 운동을 즐기게 되었다. 하나하나 왜 재밌었고, 왜 다신 하고 싶지 않았는지 이번 기회에 글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테니스, 스윙댄스, 발레, 필라테스, 요가, 명상, 목공예, 드로잉, 수채화, 오일파스텔, 줌바댄스, 커브스, 런데이, 헬스, 캘리그라피, 다도, 글쓰기, 독서모임, 베이킹, 스케이트, 바이올린, 기타, 피아노, 캔들, 필름카메라 등의 도전기가 궁금하다면 다음 글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