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그리고 풋살
풋살을 하고 있다고 주변에 말하면, 보통 나오는 질문들이 있다. ‘동호회예요?’ 음, 정확히 말하면 동호회도 아니고 학원도 아니고, 암튼 돈 내고 코치님께 배우는 거예요. 그다음 질문은, ‘사람들 연령대는 어때요?’ 아, 내가 이 질문엔 할 말 많다.
나는 우리 팀에서 나이로 딱 중간이다. 40대 이상 언니들이 네 명, 그리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네 명이다. 사실 우리 팀은 5개월 가까이 서로의 나이를 묻지 않았었는데, 첫째는 서로 개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워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딱히 서로의 나이에 관심 없기 때문이다. 운동장을 뛸 때야말로 가장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팀에 들어간 초반만 해도 내가 나이로는 상위권(?)이라 생각했었다. 동안 피부와 강철체력으로 무장한 여자들은 누가 봐도 30대 초반, 많아봐야 30대 중반 같아 보였다. 몸 푸는 운동만으로도 헥헥거리던 나는, 그래, 내가 나이가 많아서 이래, 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생물체의 나이 듦이라는 것은 과학이니깐, 내가 저들보다 체력이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대회도 같이 두 번 정도 나가고 친해지기 시작해서 나이를 까던 그날, 나는 몇 번이고 더 물어야 했다. “진짜요? 진짜 85년생이시라고요? 진짜 몰랐어요... ㅠㅠ” 나는 이제 나이 먹어서 체력이 안된다는 이야길, 절대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체력이 없는 건,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체력이 저질인 거다, 암, 그렇고말고.
내가 미순언니를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그녀는 부상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풋살장에 나온거라고 했다. 한국인 특으로, 스캔해 보니, 그녀는 나보단 언니 같아 보였고, 당시 팀 내 스피드로는 자신 있던 나는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저 분보단 빠르겠지’ 하며 자신감 있게 미니게임에 돌입했다. 그런데 상대 골키퍼의 발을 맞고 나온 공을 내가 ‘찬스다!’ 하며 빠르게 몰고 가고 있는데, 어느새 눈앞에 미순언니가 떡-하니 수비 자리에 와있었던 거였다. 몇 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니, 이 언니 왜 이렇게 빨라?” 나는 결국 언니의 스피드에 번번이 막혔고, 탄탄한 언니 어깨에 어깨빵당해서 밀리고 말았다. 언니가 볼은 어찌나 세게 차는지, 진짜 장사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역시.
우리 팀 40대, 50대 언니들은 모두가 체력도 실력도 열정도 매너도 짱짱맨이다. 이런 게 연륜인 건가. 더더군다나 “우리 완전 축친자(축구에 미친 자) 들이잖아!” 하는 언니들의 열정을 보면, 이 언니들 도대체 못하는 게 뭐지, 싶다. 언니들 앞에서 나는, 언니들만큼 성숙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귀요미도 아니고, 정말 애매모호한 포지셔닝이다. 보통 가운데 껴 있는 나이대가 원래 이런 걸까, 흠, 아이덴티티의 혼란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풋살을 시작하고 나선,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하는 친구들이나 언니들의 말에 완전 동의하면서도 왠지 슬펐고, 나도 앞으로는 체력이 하향곡선만을 그리겠지, 하는 생각에 괜히 우울해졌었다. 그런데 이 언니들을 보라, 단단한 몸으로 풋살장을 휘젓고 다니고, 아파서 잠시 운동을 쉬더라도 회복하고선 다시 밝게 풋살화를 신고 복귀한다. 열정적으로 뛰면서도 동시에 동생들이 다칠까 챙기는 모습은 가히 예술이다, 저게 진정한 으른의 모습인가. 언니들을 보면서, 나이를 먹으면 점점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몸이 약해진다는 자연의 섭리(?)와 과학적 사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도, 혹시 건강이 나빠져 무슨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풋살과 함께라면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하는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내가 회복해서 복귀하길 기다려주는 동료들이 생겼다는 것도 또 하나의 기쁨이다.
축구를 하는 여성들, 풋살을 하는 많은 여성들의 꿈은 시니어 여자축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 볼을 차서, 환갑 때까지 같이 뛰는 게 모두의 소망이다. 나도, 시니어 여자축구를 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그러고 보니, 풋살 하는 여자들을 신기하게 보는 주변 사람들의 세 번째 질문이 이거다, ‘재밌냐?’
김혼비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반년을 넘긴 사람들은 평생 축구 못 그만둬요. 이거, 기절해요” 그러고 보니 내가 막 반년을 넘겼네, 재밌어서 기절하겠다규,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