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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Aug 25. 2024

축구하면서 욕하는 여자들

운동하면서 욕 금지! (저도 잘 안됩니다만...)

풋살 경기 시작 전, 재미난 순간들을 목격하는데, 코치들이 팀을 모아놓고 여러 경기 수칙들과 작전들을 이야기하면서 ”다치지 마시고, 욕하지 마세요. “ 한다는 것이었다. 다치지 말라는 말은 뭐, 당연히 할 법한 당부말씀인데, 욕하지 말라니, 매 경기 전에 듣는 그 말의 중요성(?)을 알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플랩이라는 풋살앱으로 처음 만난 팀과의 경기였다. 보통 뛰던 운동장보다 훨씬 큰 운동장에서 뛰어야 했던 탓인지, 공을 잡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던 거리가 상당했다. 상대편의 슈팅을 우리 팀 키퍼가 걷어내고, 머얼리 공을 찼고, 오 이건 내가 잡아야 하는 공이었다! 그때, 정말 들소처럼 무섭게 상대팀 공격수가 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키가 큰 그녀의 어깨는 내 턱과 강하게 충돌했고, 지인짜 너무 아파서 별이 보였다.


그런데 대낮에 혼자 별 보고 있던 나에게 내뱉은 그녀의 말이, “아, 씨발!”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바로 사과를 했다. “아, 미안해요. 그쪽한테 한 말이 아니고요. 내 속도가 제어가 안되어서 내가 나한테 한 말이에요. 진짜 오해하지 마세요. 근데 괜찮아요...?” 아뇨, 안 괜찮은데요...라고 말하려는데 놀란 코치님이 바로 교체를 해주셨다.


사과고 뭐고 일단 턱에 차가운 얼음물부터 갖다 대고, 좀 쉬고 있으니, 통증도 좀 진정이 되고, 내가 좀 전에 들었던 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이 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욕에 대해 꽤 관대한 사람이었는데, 아까 그 순간엔 아파죽겠는데 욕먹으니(?) 초큼 기분이 별로긴 했다. (내 턱을 어깨로 들이받은 그녀는 경기가 끝나고도 계속 나에게 와서 ‘미안해요’를 시전 했고, 내 턱도 별문제 없이 잘 나았다. 아니, 별문제 없이 잘 나을 턱이었으면 왜 그리 아팠었는지, 원...)


솔직히 말해서, 정말 존경스러운 우리 팀 멤버들은 대부분 욕을 잘 안 하는데, 나는 그중 욕을 하는 멤버긴 하다. (나 빼고 한두 명 더 있다 (맞나? ;;;)) 너무 좋은 위치에 크로스가 들어왔는데 내가 볼 컨트롤을 잘 못해서 놓쳤을 때 “아, 씨...” 하는 말이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데, 그때 이후 바로 “죄송합니다, 욕한 거 아닙니다!” 하는 말을 붙여준다. 와, 이건 골이다, 싶게 단독 찬스였는데, 너무 빠른 상대 수비수가 어느새 내 앞에 와서 어깨빵하며 공을 걷어낼 때, “아, 씨... 너무 빠르시네..” 하고 필터링 없이 말이 나와버리는데, 또 바로 “죄송해요, 욕한 거 아니에요. 너무 잘하셔서요!” 하고 헤헤, 웃음을 날린다.


아직 다행히 누구랑 욕 때문에 싸운 적은 없고, 상대방 욕설에 아주 열받았던 적도 없지만, 늘 조심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앞뒤 안 보이는 승부의 현장에선, “씨..” 뒤에 붙는 한 글자 때문에 누군가가 열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치님들이 경기 전에 “욕하지 마세요” 하는 말 뒤에 같이 가끔 붙는 말이 ”싸우지 마시고요 “인데 그것도 참으로 이해가 된다. (실제로 욕하고 싸웠다는 다른 팀 카더라 이야기들을 참 많이도 들었다.)


한때는 ‘여자들, 풋살 하며 욕 좀 해도 되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네가 아아주 어린 시절 욕 좀 하는 날라리(?)  멋쟁이(?) 였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욕을 하면 교양이 없는 어른 같이 느껴서 입을 닫게 된다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쌍욕을 날릴 만큼 화나는 순간들이 없어지기도 해서 더욱 욕할 기회가 없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풋살장의 활활 타는 승부욕 속에 자연스럽게, 탄성처럼 터져 나오는 ‘욕’ 이라니! 이 정도는 이해해 줘도 되지 않을까. (물론 상대방을 저격한 과도하고 과격한 욕설이나, 의도적으로 위협하는 쌍욕에는, 저는 정말 반대합니다!)


이제는 “욕하지 마세요” 하는 코치님의 당부에, “아, 그 뒤에 ‘-발’만 안 하면 되죠?” 하고 싱긋거리는 상대팀 여자들의 말에도 꿈쩍 않게 되었고, 오히려 심한 욕설을 경기 중에 내가 직접 들었을 땐 (그런 적 거의 없지만) “아, 거 욕하지 맙시다!” 하고 외칠 줄 아는 배포도 생겼다. 또, 내 입이 방정맞게 “아, 씨-” 하고 말을 흘리게 되는 순간엔 ”아쉬워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욕 아닙니다! “ 하고 쭈굴쭈굴 쭈굴이가 되는 양심(?) 도 생겼다.


예술 축구, 예술 풋살 정도로 실력이 고수가 되어서 내가 스스로의 플레이에 욕할 것도 없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거칠 게 전혀 없어지면, 욕할 일도 사라지려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과 변명을 생각해보면서...  오늘도 나는 ‘풋살 하며 욕하는 여자들’이 있는 운동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매너말 & 고운 말을 쓰자!’ 하고 한번 더 다짐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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