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 첫째 날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Day 01.
스페인(마드리드)
#시작
"퇴사하면 뭐할 거예요?"라는 말에 "그냥 한 달 정도 유럽 여행 가려고요"라고 무심코 뱉어버린 말이 현실이 되었다.
같이 갈 친구가 없어서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났고, 그렇게 흔한(?) 퇴사 후 여행을 시작했다.
#도착
사실 비행기에 탔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내가 혼자 낯선 땅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누구보다 먼저 빠르게 비행기에서 내리고, 가장 먼저 짐을 찾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휩쓸리듯이 짐을 찾았다.
#숙소로1
이날 목표는 숙소로 가는 것.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유심을 핸드폰에 끼고 핸드폰을 껐다 킨 다음 구글맵을 켰는데, 인터넷이 안된단다. 왜지? 갑자기 당황스러워졌다. 얼굴은 굳어있고 평온(한 척)했지만 마음속이 벌써 벌렁벌렁 했다.
'음.. 건물 안이라서 잠깐 안될 수도 있을 거야'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방향으로 캐리어를 끌고 따라갔다.
그런데 내 앞에 가던 한국인 2명이 어느 순간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공항 표지판을 보고, 인포메이션에 물어물어 시내로 가는 렌페(철도)를 타러 갔다.
렌페.. 렌페.. 중얼거리면서 걸어가는데, 한국인 2명(아까와는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엄마 품을 떠난 아기 새가 다시 무서워서 엄마한테 되돌아 가는 심정으로 여기가 렌페 타는 데냐고 물어봤다. (렌페 타는 데라고 분명 써져있었지만..) 맞다고 했다.
역까지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둘은 서로 직장 동료라고 했다. 내가 혼자 왔다니까 대단하다고 했다. 사실 나도 내가 엄청 걱정됐지만 혼자 여행이 익숙한 사람인 척했다. 둘이 나랑 같은 역에서 내린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생겼다. 한 30분 정도.
#숙소로2
아토차 역에서 내렸다. 아까 만난 사람들과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아직도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망할 유심. 한국에서 미리 개통해온 건 편하게 숙소 찾아가고 불안감을 없애려는 거였는데..
불안감이 커져 화가 났다가도 지금 당장 누구한테 짜증도 못 내니까 다시 불안한 감정으로 되돌아왔다.
머릿속에는 숙소로 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말 다행히 구글 맵에 오프라인 지도를 받은 건 작동했고, 숙소는 역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 낑낑대며 캐리어를 들고 올라왔는데, 캐리어를 끄는 외국인이 나밖에 없었다.
공항에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깜깜한 저녁에 노란 가로등 조명 아래 키 큰 외국인들이 무리 지어 군데군데 있었다. 날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괜히 다들 날 보는 거 같아서 무서운 마음이 커졌다.
이젠 밖에 나왔으니까 유심이 되겠지?라는 내 기대를 비웃듯 오프라인 지도가 나를 반겼다. 5만 원 주고 산 유심인데 불량이면 어떻게 바꿔야 되는 거지. 지도 화면을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면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여기 골목은 왜 이렇게 어두운 거지.
인도는 좁은데 울퉁불퉁하고.
숙소 못 찾으면 전화해야 되는데 전화는 되는 거야?
온갖 생각을 하는데 멀리서 숙소 이름인 2060이 써져있는 하얀색 간판이 빛났다. 진짜 어둠 속에 반짝이는 빛이었다. 찾았다 내 숙소.
정신없던 하루가 끝이 나는 것 같았다. 유심 내일 진짜 돼야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쏟아져서 기절해버렸다.
기 억 에 남 는 순 간.
대한항공 기내식 양송이 카레. 따로 조리된 양송이가 버섯의 향과 식감을 살렸다. 그 사람이 던졌던 땅콩도 엄청 맛있는 땅콩이었겠지.
비행기 안에서 어느 순간 내 주변 모두가 신라면을 먹고 있던 모습. 여기가 PC방인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냄새를 맡고 하나 둘 시키는 사람들. 되게 비싸겠지 하고 안 시켰는데, 알고 보니 무료였다. 다음엔 꼭 먹어야지.
Tirso de molina 역을 나와 숙소로 가던 어두운 골목길. 적막한 길에 캐리어 끌리는 소리가 울퉁불퉁 울렸다.
찰 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