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던 곳도, 만났던 사람도 다시 또.
유럽 여행을 하면서 가봤던 곳을 또 가보게 될 일이 있을까? 이미 갔던 장소를 다시 가기란 쉽지 않다. 보통 숙소가 근처에 있거나, 꼭 사야 하는 물건이 있지 않은 이상 갔던 곳을 다시 가진 않는다. 다른데도 볼 데가 너무 많으니까. 그런데 나는 리스본 5일째였다. 남는 건 시간이라, 눈으로 지나쳤지만 들어가 보지 않았던 장소를 다시 가기로 했다.
유독 이번 여행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겨울에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을 하면서 생각보다 한 번 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아무래도 겨울에는 스페인-포르투갈만 중점적으로 도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을 거라고 추측한다.
내 루트는 마드리드(톨레도)-리스본-포르투-세비야-그라나다-세비야-파리 였다. 뭐.. 일반적이진 않은 루트다. 친구랑 언니랑 시간을 맞추다 보니, 특이한 루트가 나왔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나의 이 괴상한 루트 때문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는 톨레도에서 만났던 동행을 리스본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어제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던 벨렘 탑을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몰랐지만, 아.. 이 곳은 생각보다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렇고, 이런 탑들은 다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 공간이 매우 좁다. 아마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찾게 될 줄은 몰랐겠지.
어쨌든 눈이 돌아갈 듯이 어지러웠던 계단을 오르고 나니 탁 트인 풍경이 보였다. 바다다! 강이다!? 정답은 강이다. 타호 강 너머로 4월 25일 다리가 보였다. 4월 25일은 포르투갈 혁명의 날이라, 다리에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자세한 역사는 모르지만, 혁명이라니 우리나라로 치면 4월 19일 다리려나? 싶었다. 바다 같은 강을 한참 바라보고 거센 바람을 맞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나는 그전까지 동행은 잠깐 스쳐 지나치는 사이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 기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렇다고 완전 혼자만 다니는 건 심심하고.
다시 만난 동행은 한 번이라도 같이 다녀서 자기소개를 다시 하지 않아도 됐다. 그 점이 좋았다. 점점 내가 누구고, 어떤 이유로 여행을 왔고.. 이런 설명을 기계처럼 반복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톨레도에서 만났던 동행은 나보다 8살 어렸다. 처음에 걱정했던 나이 차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좋은 장소, 경치 그리고 맛있는 음식만 있으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도 하고, 톨레도에서 처럼 리스본에서도 또 한참을 걸었다.
요새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너무 먼 나이 차이를 순간적으로 좁히려다 보니 생긴 어려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나와 비슷한 나이 대 사람들과 어울리기만 하면 좁은 세계와 시야를 갖게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 같다. 이번에 나이 차이가 나는 동행과 어려움 없이 다니면서, 앞으로도 계속 열린 마음을 가져야지 싶었다. 내가 지금 싫어하는 꼰대의 모습을 나중에라도 혹시 내가 갖지 않기 위해.
자.. 드디어 31일 중에 12일째의 기록을 마무리했다. 금방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여행을 다녀온 지도 어언 4개월이 넘어간다. 요즘 미세먼지가 낀다는 일기예보를 보면 맑고 청명했던 포르투갈의 하늘이 그리워진다. 이번 달 안에 31일까지의 기록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꾸준하게 마무리해야지.
하얀손 여행
DAY12. 포르투갈(리스본)
퇴사하면 뭐할 거야? '그냥 한 달 유럽 여행 가려고요'라고 무심코 뱉어버린 말이 현실이 되었다. 20후반 백수 여자의 혼자 유럽. 흔한 퇴사 후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