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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니니 Jun 23. 2019

난 이제 호스텔에선 못 자겠더라

상벤투역 호스텔에서 생긴 일

여행을 오기 전 계획을 짜던 나에게 친구가 이렇게 말을 했다.


"난 이제 호스텔에선 못 자겠더라"


 당연히! 나도 호텔이 좋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의 여행이었다. 호텔에만 묵을 수 있을 돈은 없었다. 그리고 숙소보다는 관광 장소나 음식, 체험 비용을 더 우선시했기 때문에 숙소의 퀄리티는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내가 여태까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호스텔들은


1. 아침 6~7시만 되면 부스럭 대며 캐리어를 정리하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설쳐야 하기도 했고,

2. 새벽 3-4시에 들어와서 부스럭 대더니 갑자기 토를 하는 서양 언니도 있었고,

3. 같이 다닌 친구가 유럽 빈대인 배드 버그에 물린 적도 있었고,

4. 내 돈이나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 있으니까, 물건 관리를 수시로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좋았던 호스텔이 두 곳이 있었다.


그중 포르투의 한 호스텔에서의 이야기.




내가

호스텔을

선택한 이유


 내가 호스텔은 선택한 이유는 '간섭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묵었던 숙소에서는 아침마다 내 일정을 물어봤는데, 난 그게 싫었다. 항상 어디 가냐고 물어봤고 '저의 오늘 ㅇㅇ에 가요.' 하면 거기 별로니까 가지 말고 ㅁㅁ에 가라고, 이미 몇 명 갈 예정인데 같이 가면 좋지 않냐는 식의 권유가 종종 있었다.


 처음엔 경험 많은 어른의 호의로 받아들였지만, 그중엔 일일투어 요금을 받는 업체랑 연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투어보다는 배낭여행을 더 즐기고 싶어서 거절했다. 그런데 일정을 마친 저녁이나 다음날 아침 식사 시간에 내가 주인 분 말씀을 안 듣고 얼마나 더 좋은 경험을 했는지, 꼭 확인을 하는 거였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외국에 나가면 나도 한국인이면서 한국 사람이 많은 덴 왠지 가기 싫은 마음이 든다.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쉬고 싶은데 한국 사람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다 보면,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안 난다고나 할까.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게 된달까.


(그러면서도 막상 심심하면 한국인 동행 구하고, 재밌게 노는 게 함정이지만..)


 이제껏 내가 경험했던 호스텔들은 전반적으로 서로 간섭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어쩌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고, 오늘 뭐하니 / 난 뭐했어 / 오 그러니 정도의 간단한 안부 정도.


결국, 난 적당한 거리감이 좋았다.




2층은

오늘 뭐해요?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1층 언니가 내게 물어봤다.


"2층~ 오늘은 뭐해요?"


 이 호스텔은 상 벤투 역 안에 있는 초역세권에 한국인이 많은 숙소였다. 우리 방 만 해도 거의 몇 명 빼고는 다 한국인 여성들이었다. 3층 침대가 4개 있는 방이었는데, 어느새 서로를 부를 때 1층/2층/3층 이렇게 침대 층수로 부르게 됐다.


 내 침대는 2층이었는데, 어느새 아래층 침대를 사용하고 있는 1층 언니가 나를 2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1층 언니뿐 아니라 방 사람들이 착했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체크인을 해서 이제 막 포르투라는 곳을 알아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물어보며 정보를 구하거나, 일정을 물어보게 됐다. 도시가 평화로워서 그런지, 아니면 다들 포르투가 여행 일정에서 첫 도시가 아니라 그런지, 다들 여유가 있었다.


 맞은편 3층 동생은 계속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오늘 뭘 할지 모르겠다고, 일단 나가겠다고 했다. 1층 언니는 대각선 2층 분이랑 근교 도시를 가기로 했다고 했다.


"아, 전 오늘 투어 해요!ㅎㅎ"


서로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인사를 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즉흥적

와인 파티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기대를 안고 참여한 시내 투어는 다소 가격 대비 아쉬웠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왔더니 벌써 우리 방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에 가기도 귀찮았다. 숙소 사람들 중에 저녁 안 먹은 사람이 있으면 저녁을 먹자고 하려고 했는데, 다 이미 식사를 한 눈치였다.


 눈치 레이더를 가동했더니, 같은 방 사람들은 밖에 나가긴 귀찮지만 뭘 하자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여행 중반이 되니까 이제 이런 눈치가 늘은 걸까. 아님 나의 착각이었을까. 에라 모르겠다. 안되면 혼자 빵 사 와서 먹지 뭐,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앞에 마트에서 와인 사서 마실래요?"


 오. 생각보다 다들 좋은 반응이었다. 호스텔에는 보통 주방이 있는 편인데, 이 주방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식사 시간만 아니면 하고 싶은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식사비를 아끼고 싶거나 이렇게 조촐한 파티를 할 때 이용할 수 있다. 고기가 저렴해서 고기를 사고, 감자칩도 사고, 와인도 사고, 나의 비밀 무기 고추장 튜브도 꺼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랑 얽히는 게 싫어서 호스텔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날의 파티를 계기로 조금은 닫힌 내 마음이 열린 것 같다.


고기 굽굽
고추장으로 사방위 찍어주기
와인 둘중 하나는 진짜 맛없었는데 뭔지 기억이 안난다..




하얀손 여행

DAY15. 포르투갈(포르투 2일 차)


퇴사하면 뭐할 거야? '그냥 한 달 유럽 여행 가려고요'라고 무심코 뱉어버린 말이 현실이 되었다. 20후반 백수 여자의 혼자 유럽. 흔한 퇴사 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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