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생존의 모든 조건이 되면 안된다
능력주의가 천민 자본주의와 결합하면 불공평한 자원 분배의 멋진 변명거리가 된다.
천민자본주의 안에서 진짜 나쁜 놈은 지워지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하다는 죄목으로 각종 형벌을 받는다.
지금 나만한 나이대 청년들 대다수는 경쟁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손상은 하나쯤 입었을 거야.
생명은 수단이 아니기에 존재 의의가 필요하지 않다.
왜 가난할수록 지불해야 하는 목숨값이 비싸지는가?
능력주의가 천민 자본주의와 결합하면 불공평한 자원 분배의 멋진 변명거리가 된다. 가난뱅이들은 노력하지 않은 죄, 공부하지 않은 죄, 인내하지 않은 죄를 해명해야 한다. 이제 또 복지로, 지원금24 같은 복지플랫폼이 나오고 청년기본법 등 각종 처우개선이 이루어지고 나니깐 새로운 죄목이 생겼다. 지원혜택이 많은데 왜 찾아보지 않았는가? 우리가 어디까지 떠먹여줘야 하는가? 이쯤되면 의지 문제 아닌가? 그런 대단한 정보를 왜 못찾고 무기력하게 늘어져있었는지 납득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기회가 불평등한 것만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내가 7월의 어느 토요일에, 지인들과 이와 관련해서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때 내가 계속 주장했던 포인트가 이거다. 왜 능력으로 적자생존 해야 하는가? 능력으로 보상을 지급했더니 약자들이 생기네. 알고 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부터 불평등해서 그렇네. 그럼 기회를 공평하게 만들면 약자의 삶이 나아지겠네! 그러나 지는 사람이 벌칙 받는 이상은 누군가는 꼭 그 자리에 가야한다. 경쟁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게 전부가 되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안전망을 두툼하게 보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일로 가는 삶 정도는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무능하고 게으른 게 사실이어도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나쁜놈 빼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 혼자서는 다 약해빠졌다. 당대표도 교수님도 페북 개발자도 혼자 살 수는 없다. 우리가 놀면서 들리는 건물 화장실도 청소해주시는 분이 계시기에 쾌적하게 쓸 수 있는 거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동체를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왜 가난할수록 지불해야 하는 목숨값이 비싸지는가?
그리고 게으르고 야망 없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생명은 수단이 아니기에 존재 의의가 필요하지 않다. 있다면 그냥, 태어난 김에 서로 행복하고 내가 못하는 것 나 대신에 해주는 것 정도. 천민자본주의 안에서 진짜 나쁜 놈은 지워지고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의욕 없고, 무능하다는 죄목으로 각종 형벌을 받는다.
말이 딴 길로 샜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경쟁에 이기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과 놀고 관계를 온화하게 구축하는 것으로 의의를 얻는 사람도 있고, 관심 있는 분야에 지적인 탐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나처럼 대충 햇빛 멋지고 넓고 시원한 숲 속에서 감동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러므로 스포츠와 같은 경쟁이 필요한데 다만 협동심, 자존감, 성취감 등의 어떤 가치들을 얻는데 한정되어야지 그걸로 인생을 결정지으면 안된다고. 기회가 무수히 많기라도 하면 감안이 되는데 그것도 아니니 사람들이 자꾸 병드는 거 아니겠는가.
애시당초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고 가난도 환경이라서 무기력을 학습하고 정보 소외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왜 궃은 환경에 있는 약자들한테 더 강한 철인급 멘탈을 요구하냐고.
그러나 현재, 질문 많이 하는 학생을 진도 방해된다고 꾸짖어놓고 갑자기 창의력 타령하는 한국에서, 집주와 지주들이 집을 소유하기까지의 노력을 대가로 일평생 보상 받는 것을 비판하지 않는 세상에서, 재벌이면 작품을 기증할 수 있으니까 사후에도 자기 이름 적힌 미술관을 갖는 것도 가능한 세상에서, 그게 가당키나 하냐.
사람들이 착각하는건지 내가 우기는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 능력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말 잘하고 누구는 춤 잘 추고 누군 다 못하는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지 왜 굳이 등수를 나누는건지 모르겠다. 아주 먼 옛날부터 있던 영웅신화는 지금 이렇게 개천룡까지는 허락해주는 시대로 오니까 세를 엄청나게 부풀렸다. 지금 나만한 나이대 청년들 대다수는 경쟁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손상은 하나쯤 입었을 거야.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도 일베청년들도 다 그런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함. 전자는 시야가 좁은 거고 후자는 도덕성부터 빻았다는 차이가 있는데. 이런 영웅신화는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서 배포가 된다. 그리고 주류 미디어로 배포될 때는 주류 이데올로기와 결합한다. 이 사회에서 기본형 인간으로 설정되는데에다가 시야마저 좁으면 거대한 자아상을 갖게 된다. 이렇게 시야가 좁고 기세등등한 사람들이 기득권으로 들어가면 민주주의의 방해물이 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큰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끼고 분노의 화살을 이상한 곳으로 돌린다. 경쟁에서 졌다고 느끼는 쪽이 미국에서 트럼프 뽑은 인간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놈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데 인식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고 본다. 나, 내가 속한 집단, 내가 동경하는 집단한텐 선하고 외에는 타자로 설정해서 경계하거나 배척한다. 나로부터 출발해서 유사성이 떨어질 수록, 혹은 이상향과 멀어질 수록 그러하다.
내 존재를 확장하고, 증명하고, 담보하는 과정에서 육체 쪽으로는 재화 경쟁에서 차별이 나오고 정신 쪽으로는 기본형 다툼에서 차별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나는 차별을 두 종류로 나눈다면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겠지만은..
나는 주관이 축복이자 저주라고 본다. 우리는 우리 입장만 아는 게 당연하다. 그나마 내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은 부딪히면서 파악하게 되는데 그 외에 잘모르겠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바깥 정보를 통해서 인식하고 판단한다.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책을 보고 그 사람의 상황을 상상하기보단 단면적으로 평가한다고 그러더라.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이해하는 거는 배워야 가능하다.
여기서 문학의 장점이 등장하거든. 나는 옛날에 문학 장르가 오락 기능 말고 무슨 효용이 있는건지 궁금했었다. 지금은 그 답을 안다. 문학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저 사람이 나랑 다른 상황에 처한 나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연관 지어서 자아를 확장하고 배척할 타자가 아니게 되는거지...
어쨌던 기본형 아닌 사람들, 예를 들어
2021년 8월 5일에 페이스북에 쓴 글.
진짜 저렇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