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오션 Nov 12. 2024

우리 사장님

#3 신입사원 잔혹사


길바닥에선 수년을 굴러도
있는 거라곤 보푸라기 지푸라기 찌꺼기

이 모양 이 꼬라지에서
자라본 적이 없다

곳간, 양질의 쌀이 있는 곳
길바닥 거렁뱅이에겐 환상의 공간
곳간지기는 쉽게 말해서 사장이라고 한다

어느날 엄지 발가락이 튼튼하다는 이유로
한 사장의 눈에 띄었다

씨앗만한 몸뚱이에
티끌 같은 발가락
먼지만한 놈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사장도 없는 놈들은 부러워했다
어떻게 했담? 페디큐어라도 발랐담?  

야야 우리 사장은 말이야
덩치가 이따시만해
달리기가 느려도 혼쭐내지 않아
나도 드디어 사장이 있어

이제
잘 먹고 잘 자라기만 하면
어른이 되겠지

어서 자라서
먼저 어른이 된 녀석들을 따라잡아야지

길바닥 놈들은 모두 떠나보낸 동지가 있고
먼지는 굽어 살펴야 보이고
이대로는 행차하시는 길에 방해가 될 뿐

그래서 쌀알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모조리 날랐다
밥그릇이 가득차는 날
드디어 자라볼 테니까

달이 한 번 익은 날
쌀도 익어야 하는 날
달만 배불리 먹은 날
어쩐담, 곳간에 쌀이 없어  

한 뼘 더 큰 녀석들은 해주는 말이 달랐다
'우리 사장님 좋은 분이야'
'곳간 벽에 구멍이 뚫려있어'
'늦기 전에 길바닥 생활로 돌아가'

걔 중 하나가 곳간을 나갔
쌀이 없는 곳간은 곳간인가
우리네 밥그릇이 괜시리 큰가

갈 곳은 없으므로
더 열심히 구해오저 마음을 먹었다
애초에 뒷다리가 튼튼했다면
진작에 자랐었을 테니까

달이 두 번 익은 날
네 밥그릇은 여전히 크다시네

여전히 곳간의 자랑스러운 일꾼
먹는 거라곤 보푸라기 지푸라기 찌꺼기
길바닥 거렁뱅이 티를 벗어본 적 없다

달이 두 번 익고 또 익어가는 때에
사장님은 말했다
드디어 밥그릇을 채워줄 수 있다고

그래도 자랄 순 없을 것이다
달이 두 번 익을 동안
등과 배가 붙어버렸으니






2024.11.12

매거진의 이전글 한때 저출생을 걱정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