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영원하길 바래
나는 한때 저출생(으로 인한 문명의 쇠퇴)을 걱정했었다.
근데 이젠 딱히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왜 저출생을 걱정했었는지를 먼저 쓰고
그리고 이제는 왜 걱정안하는지에 대해선 다음에 쓰겠다.
인생사 찰나다. 행복한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처없이 바뀌며 유한하다.
짧은 생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란 것.
그렇기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궁극의 방향성이 있다. 그 방향성은, 모든 생물체가 자신의 욕구와 기질에 맞게 / 적당하고 도덕적인 선으로 / 한평생 /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다 갈 수 있는 시스템의 영원한 실현이다.
그걸 위해선 체계적이고 꼼꼼한 환경 구축과 관리가 필요하고 우리 인류 공동체는 만인(매우 커다란 집단이지만 동시에 하나하나 무거운 단일 목숨이기도 한 우리 당사자들)의 행복을 위하여 구체적인 좌표와 경로를 찾아야 한다.
궁극의 방향성을 찾아서 도달하기 위해선 자연 상태로는 부족하다. 자연상태는 위험하고 오락가락한 것이며, 자연상태에 머문다는 건 통제되지 않는 강력한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것과 똑같다.
(그리하여 나는 문명을 선호하고, 자연 상태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거부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봤자 인간은 불평등하게 강자 집단의 이익에만 충성할지 모른다. 왜냐면 인간 개개인은 모두 '주관'을 소유했다는 점[+지능의 제한, 죽음이 있다는 점, 공동체 구성에는 평균이 중요한 점 등]으로 인하여 정신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ㅋㅋ 이게 인간이 신이 못되는 이유이며, 인간이 공동체를 꾸린 이유다. 주관은 심지어 때로는, 그리고 어떤 관점으로는 축복이다.)
그렇기 위해서 문명은 더욱 고도화되어야 한다. 불완전한 시스템 때문에 생긴 문제를 수복해나가면서.
왜냐면 문명은 남은 문제의 지뢰밭임과 동시에 문제 해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결책의 연구실이자 도서관이다. (지구감옥? 응 궁극적으론 부정하면 돼~)
문명이 남은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더욱 보완되기 위해선 이제껏 그래온 것처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문명은 빠르게 없어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손을 안낳는다네? 지성을 가진 다수의 구성원은 문명의 기초 조건이자 필요충분조건이다. 안드로이드로 대체하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 큰일났다.
더군다나 생물 공동체는 각기 다른 특질과 유전자를 가지면서 사회를 구성한다. 사회와 생물 집단이 더 오래, 더 풍성하게 번영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부류(예를 들어 단일 개체와의 깊숙한 몰입 및 상호교류로 상당히 충족되는 부류, 성적 스킨쉽에 거부감 없는 부류 - 생물학적으로는 문란한 암컷, 바람둥이 수컷이라고 분류되는{그러한 번식 전략을 가진) 개체들 등}가 다수의 자손을 낳는 방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다양하고 건강한 유전자가 널리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식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청년층에게선 기질이나 성격, 환경 등에서 특정한 패턴이 보이는 것 같다. 어떡하지!
그렇다고 청년층에게 자식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 없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유전자를 대물림한다는 건 여성 개개인이 과중한 부담을 지녀야 하는 절차인데, 이걸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강요한다는 건 인권 침해이며, 인류가 저질러온 여성혐오 역사의 대표적인 폐단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색채를 뒤집어 쓴 천민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초기 자본주의 이념(?)과 의의(?) - 노력의 양과 보상의 양이 비례하는 게 공정하다는 가치관-에 사실 나는 꽤 동의하는 편인데, 그러한 이상과 이론과는 별개로 지금의 자본주의 현실은 강자를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당연한 거 아님? 일한만큼 노력한만큼 보상 받는다는 게 현실에 얼마나 지켜짐? 글의 맥락과 맞게 '유전자 대물림[과 그를 통한 사회 존속]에 기여하는 정도'로 따지면 여성이 훨씬 압도적이지 않나? 애초에 난자부터가 그렇게 생긴 세포인데? 애초에 성별 구분이 그런 원리로 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당연히 여성이 자손 양육 공동체의 역할을 하는 현대사회의 1차 집단인 '정상가족'에서 일반적으로 가장의 지위를 차지하거나, 아님 2세로 하여금 엄마의 성씨를 물려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도 '엄마'의 지위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공감대를 얻기는 커녕 일부 불량 반동론자들의 헛소리로 치부되지 않나? 한명한명한테[양육, 그리고 지금 나이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자원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생명 경시는 또 왜 하는가?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노력을 평가하려면 전쟁도 없었어야지? 또 하나 예를 들면, 노력의 양과 보상의 양이 비례한다는 가정이 틀린 것이, 그렇다면 직업 귀천이란 게 있으면 안됐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 사회는 오류는 많다.
갑자기 빨갱이 색채를 드러내서 미안하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이유는, 아동 양육을 도와주는 여러 시스템이 잘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요하면 이미 태어난 세대가 겪어온 문제들을 반복하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부모 중 누군가(대부분 모 혼자)에게 희생을 떠맡길 뿐이고, 각자 태어난 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생명들을 균등하게 잘 양육하기 어렵다.
첨언:
이런 생각을 오래 해오면서 공동육아, 마을학교, 마을교육공동체의 개념(노노케어 노노쉐어 이런 것도 앎)에도 조금은 관심 있던 나를!
인면수심 스토커가 잠재적 아동학대범이자 여미새로 모독했다!
https://brunch.co.kr/@whyonlyenglish/112
이 글 링크에 나온다.
이렇게 제대로 된 대안 없이 구세대의 문제를 답습하려는 새끼들이 바로
가임기 여성 지도, 여성부 폐지 같은 정책이나 만들면서 가부장 체제로의 회귀를 꿈꾸는 위정자와 그 지지자놈들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꽤 오래 적용 가능한
새로운, 첨단화된 이데올로기 체제와 시스템을 설계하려면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https://brunch.co.kr/@whyonlyenglish/21
예전에 쓴 이 글, [인간답게 희망을 : 반항하는 종속영양생물종이 기후불안에 대응하는 자세]에
상술한 나의 가치관이 담겨있다.
바로 위에 첨부한 글에서 문단 하나를 따와 첨언한다:
절대적이고 종합적인 정답이 있으리라 믿는다. 오만하게 그 정체를 확신하려 들진 않겠다. 해바라기는 몸체가 연약하여 태양에게 열 발자국만 다가가도 화상을 입는다. 나는 주관이 짧고 한정적이기에 전체를 규명하려다간 평생이 불타거나 머리가 폭발할지 모른다. 진리의 테두리라도 만져볼 수 있으면 만족한다. 오직 한편의 견해만 믿으며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힘을 겨룰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정답은, 우리가 갸륵해서 한결 가까이 와준다.
나는 주관이 짧고 한정적이기에 전체를 규명하려다간 평생이 불타거나 머리가 폭발할지 모른다.
이 부분은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인간 모두는, 아무리 고지능이라 할지 언정, 생물체란 한계로 인하여 주관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한명이 어떻게 (본인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투표권을 가진 정당한 민주시민이며 천부인권의 보호를 받는, 그러면서 당신과 기질이며 배경이며 다른 것이 많아서 당신과는 최소 한 개 이상의 영역에서 다른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 수많은, 억 단위를 넘기는 단일 지성체 모두의 입장과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한 최선의 정답을 내놓는다는 것인가? 게다가 그 정답은 한줄짜리 격언이 아니라 세부사항과 예외사항, 개념 간 관계성을 고루 챙긴 절대적인 메뉴얼이어야 하는데도? 게다가 그게 한 분야가 아니라 대학교 전공 수보다 많을텐데? 아무리 역사적인 성인이라 할지어도 내가 말하는 "총체적이고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없다.
진리의 테두리라도 만져볼 수 있으면 만족한다.
늘 만지고 있다.
오직 한편의 견해만 믿으며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힘을 겨룰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정답은, 우리가 갸륵해서 한결 가까이 와준다.
내 말이 정답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인류가 정답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틀렸다는 게 밝혀질지라도
나의 오만과 과오로 인류가 발전한 역사에 지대한 누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만족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역사의 순간에 있다고 치자.
나는 정답이라고 생각한 체제에 붙어 충실한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따지고 보니 공익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를 더 잘 준수하는 건 반대편 혁명가들이었다.
정답은 시대마다 변할지라도, 내가 살아간 시대에서는 그들이 답이었다. 발전이었고.
정답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 학살을 저질렀다면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뚱딴지나 자꾸 거는 식으로 온건하게 괴롭혔다면 괜찮다.
또는 시혜적 복지라도 체제 안에서 나름대로 애썼다면 괜찮다.
혁명가들에게 반면교사로써 모범을 보여줬다면, 그걸로 어떤 인사이트를 줬다면 그것도 괜찮다.
이런 경우들이면 난 나를 용서할 수 있다.
모든 진실을 깨닫고 나면 새로운 정답의 편에 충성할 것이다.
어쨌든 그렇다는 이야기.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못말리는 빌런이 되고 싶지는 않다.
큰 방향성 밑에서 옳은 방향을 잡았다는 것, 기꺼이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마음, 그게 내 자존심이다.
즉,.. 요약하면
문명이 계속 발전해서 완벽한 낙원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다수의 지성체가 계에속 있어야 한다!
이게 내 걱정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꽤 오래 전에 들었다.
왜인지는 다음에...
7월 6일에 쓴 글을 마무리해서 올린다.
원래 왜 어떤 생각으로 인해 더이상 걱정하지 않게 되었는지까지 쓰려고 했는데, 쓰다가 지쳐서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