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는 음식의 재료에 대한 관심
런던에서 3개월가량 민박집 스태프로 지냈던 적이 있다. 매일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던 일상에 익숙해질 때쯤 장기간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된 투숙객을 만났다. 여행객이 아니었기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던 그 손님은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옆에 머무르며 각종 궁금증에서 시작된 수다의 포문을 열고는 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대화 내용이 오늘 이 글의 주제를 떠올리게 했기에 지난날을 언급하며 글을 시작해 보려 한다.
그는 "저는 공장식 농업한 고기는 안 먹어요"라며 운을 뗐다. 사실 당시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유인즉, 저야 앉아서 수다 떨고 싶은 속셈이지만 나로선 바삐 움직여 시간에 맞춰 요리를 완성시켜야 했기 때문에 조금은 거슬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운을 뗀 그는 Tesco에서 배달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식재료들을 집어가며 이 고기는 어떻게 사육되었는지, 이 계란은 어떠한 환경에서 자란 닭이 낳은 것인지 등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었다.
그땐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의 말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간혹 직접 마트에서 글로벌한 각종 산지의 고기 종류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할 때라든지, 계란값이 폭등해 수입산 계란까지 매대에 나열되어 한층 더 다양해진 계란들 중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하는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겼을 때 같은 상황들 말이다.
확실히 직접 요리를 하다 보면 재료 선택의 순간들에 자주 놓이게 되는데, 그럴 때면 기준이 되어야 할 사항들이 필요하다. 결정에 가장 큰 작용을 하는 요인은 "맛"과 "가격"이겠지만, 비슷한 조건이라면 먹었을 때 좀 더 건강해지고 덜 해로울 것 같은 재료를 고르는 편이다. 요즘은 장바구니 물가조차 많이 올라 아무래도 가격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겠지만, 질문을 던져본다. 저녁거리를 사러 간 마트에서 수많은 재료들 중 당신의 장바구니로 들어간 녀석들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자라온 환경
그가 말한 공장식 농업이란 무엇이었을까? 찾아보니 대량생산을 위해 좁은 공간에서 가축들을 한데 모아 평생을 실내에서 사육하며, 가능한 한 적은 자원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런 식의 공장식 농업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계기는 '생산성 향상'에 궁극적인 목표를 두었기 때문이다. 생산성만을 높이려다보니 농가에선 당장 눈앞의 수확량을 늘리기에 애썼다. 동물 개체 수가 늘고, 몸집이 커져감에 따라 증가하는 메탄가스를 외면하였고, 심지어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위협하는 항생제 사료를 먹여 키웠다. 그러다 보니 궁극적 목표에 반하는 결과로 토양과 지하수는 오염되었고 농가 간 소득격차로 인해 기술적 발전에서 소외되는 농가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부작용들로 인해 공장식 농업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게 풍요로워지고 삶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건강과 사회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했다. 먹거리 공급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균형이 벌어지고, 환경이 오염돼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면 지속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의 농업형태도 있을까? 실로 예전에 비해 많은 농가들에도 변화가 찾아온듯하다. 유기농 사료를 먹여키우기도 하고, 대지에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친환경적인 축산방식 또한 늘어났다고 한다.
실례로, 몇몇 해외 국가에선 식자재 포장 시 겉면에 농장 주인의 이름 혹은 얼굴을 라벨링 해 다른 상품들과 차별화를 둔다고 한다. 차별화된 상품은 다른 기타의 상품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생산자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어떤 차별점을 인식하는지, 왜 판매자가 제품 포장에 기재한 기준들이 중요한 표기사항이 되어버렸는지, 단순 선택지가 아닌 타당성을 띤 정보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로써 소비자가 재료를 고를 때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선택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상품 표기란에 도축 날짜와 지역, 부위, 등급만을 나타내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특수성을 띤 제주의 관영 목장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축산농가는 우사에서 갇혀 자라는 소가 전부이다. 꽃처럼 퍼지는 마블링을 위해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둬 기르며, 사료와 짚 풀을 먹고 자란다. 마늘의 고장 의성에선 '마늘 먹여 키운 소'라고 라벨링 하기도 하지만, 좁은 축사에 갇혀 자라기는 매한가지이다.
여러 가지 전염병과 좁은 면적들로 미루어보아 더 이상의 커다란 발전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우리에게도 지속 가능한 농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더 나아가 도축되는 과정까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순간들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원산지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된 계기도 어찌 보면 먹거리에 대한 안전과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생긴 관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반찬의 식재료 하나까지 어디에서 왔는지 출처를 알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어느새 식당을 들어가도 주문을 하기 전엔 늘 먼저 원산지를 확인하고 메뉴를 고른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원산지 표기란을 보고 그에 상응하는 가격인지를 확인한다.
대중들이 원산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사건은 '순살치킨'의 배신으로 부터다. 2017년, 브라질산 썩은 닭고기 파동(당시 브라질 연방경찰에 의해 30여 개 현지 대형 육가공업체가 해외에 부패한 닭고기를 수출하면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용 금지된 화학물을 쓰고 유통기한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던 사건)을 겪으며 그동안 먹어온 순살치킨이 대부분 브라질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국민들은 분개했다. 그러자 국내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국내산 닭다리살 정육을 사용했다며 해명하기 애썼고, 이러한 소비자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홈페이지와 광고 문구 등에 원산지를 표기하며 국산 닭고기임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가공육에 브라질산 닭고기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점차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파는 햄버거를 구매할 때조차 햄버거 패티를 구성하는 성분과 원산지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업체들은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원산지를 적극 표시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후, 구매하게 되는 모든 식품들에 적혀는 있지만 주로 관심 밖이었던 주재료의 원료명, 원재료 함유량 등이 적힌 상품 뒷면을 면밀히 살피는 사람들까지 늘고있다.
또한, 제철 산지의 음식을 즐겨야 할 여행지에서도 원산지 확인은 필수이다. 제주의 식당에서 반찬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옥돔'도 중국산이 즐비했다. 제주 특산품을 사 가려고 들렀던 전통시장에서도 국산 옥돔을 찾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메밀'의 고장이라는 봉평에서조차 5일장을 내도록 뒤져 겨우 메밀가루를 구할수 있었다.
동해라고 해서 모든 어류들이 동해산은 아니었다. 속초의 한 유명하다는 생선구이집을 엄마와 함께 갔었다. 식당에 들어와 주문을 하고 나서 원산지 표시를 보니 몇몇 생선은 노르웨이 등의 낯선 산지가 적혀있었다. 또한, 대게라든지 킹크랩 같은 갑각류들도 바닷가 근처에서 팔고는 있지만 대부분 러시아산으로 수입품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확인을 해보지 않는다면 도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을 굳이 먼 바닷가까지 가서 사 온 격이 된다. 지역 특산품을 즐기러 왔다가 분위기만 즐기게 되어버린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가?
농부들 이야기
어릴 적, 밥상 예절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밥은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먹어야 해. 밥 한 톨에 농부 아저씨 땀 한 방울의 가치가 있단다. 귀한 쌀이다."라고. 그래서인지 밥은 꼭 먹을 만큼만 프고, 밥공기에 붙어있는 밥 한 톨도 남기지 않는다. 귀하다고 여겨온 곡식의 가치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5월, 처음으로 시댁에 내려가 모내기를 도왔다. 할 줄 아는 게 없고 모든 것들이 생경했지만, 천진한 마음으로 도움이라도 되고자 트랙터를 운전하겠다고 나섰다. 작은 일손이 하나라도 아쉬운 농촌에서 보탬이 되고 싶었다. 생각보다 어려움 없이 습득해 다행이었다. 난생처음 몰아본 트랙터는 나의 연식과 꽤나 가까워 보였다. 한바탕 모판을 옮기고 나니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기쁨과 가족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정도면 이 쌀의 저작권이 나에게도 1% 정도는 있지 않을까?
우리가 먹는 밥이 위의 사진처럼 모의 형태로 땅에 심어져 장장 6개월가량을 자라나 수확해 얻은 쌀이라니! 그간 해마다 밀려오는 태풍과 홍수를 견뎌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걱정과 노력을 들여야 했을까? 감히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 이토록 소중한 작물인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노고를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으니까. 우린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
최근에 알게 된 농부들의 마켓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전국 각지의 농부들이 직접 농사지은 농작물들을 실어와 도심 한켠에 작은 시장을 연다. 이곳은 단순히 소비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행위만이 존재하는 죽어있는 마트와는 달리 생동감 넘친다. 농부들의 이야기가 소비자들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농부가 된 계기라든지, 작물을 기르는 과정, 수확의 기쁨 등이 있을 것이다. 그중 단연 소비자의 식탁까지 오를 이야기는 농작 과정에 있을 것이다.
이곳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농부들은 SNS를 통해 농사 기록을 공유한다. 어떤 종자를 심었고, 바람과 날씨에 어떻게 버텨내고 있으며, 곧 수확할 작물들에 대해 설명한다. 수확한 채소들을 챙겨 오늘은 어느 장소로 언제 모일 것인지 공지하고, 그곳에서 소비자를 만난다. 이렇게 만난 식재료들은 확실히 만족감이 크고, 직접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먹는 것과 같은 유대감이 들기도 한다. 확실히 농부의 이야기는 밥상 위 우리를 즐겁게 한다.
내 감정에도 출처가 있을까?
이번 주제를 준비하며 온갖 출처에 대해 조사를 하다보니, 비슷한 맥락의 궁금증이 생겨났다. 재료에도 출처가 분명히 있는데, 그렇다면 모든것들은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이러한 궁금증도 분명 어떤 질문을 따라오다 보니 생겨난 것일텐데, 과연 나는 그 출처를 밝혀낼 수 있을까?
우연히 접한 프로그램을 보고 격하게 공감했는데, 흘러간 후에 그게 어떤 프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많은 매체를 한꺼번에 접하다 보니 출처가 뒤섞인 채로 기억된다. 엉클어진 기억들 사이로 추출되는 감정은 가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말을 하고 있는 주체는 '나'일지라도 누군가의 말을 내 생각인 양 착각하고 있진 않을까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르니, 인식한 정보의 출처가 뒤섞이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다. 누군가의 의견으로부터 왔을지 모를 출처가 불명확한 생각들이 정처 없이 헤매다 신념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겠다.
어디에서 온 것이지 알아야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 본연의 성질이나 품성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 것이다. 알고 소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 난 이상 제대로 파악하고 선택해야 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재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고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불공정한 생산을 줄이고, 건강한 식재료들을 얻을 수 있다. 자, 당신의 장바구니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참고한 페이지*
-공장식 농업이란?
https://thehumaneleague.org/article/what-is-factory-farming
*프랑스, 캐나다의 식품 라벨링 사진 출처*
-https://images.app.goo.gl/BmRT6EF46nRqvWpt5
-https://images.app.goo.gl/VTAG7SBwYxSLyeMA9
-https://images.app.goo.gl/rbxnVJmPVDod2L5T8
*재치있게 원산지를 표기한 사진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927975&memberNo=36750962&vType=VERTICAL
-https://blog.naver.com/hellopinksis/222506815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