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이유없는 배려.
아까 친구분이 계산하셨어요.
고등학교를 타지로 전학 와 기숙사 생활을 했었다. 학교를 전학 오며 처음으로 방문했던 도시였기에 지역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는데, 같이 생활하며 친해진 친구들이 자주 시내 곳곳을 외출할 때마다 소개해줬었다. 한날은 평소 공부를 잘 가르쳐주던 친구가 시내의 유명하다는 이탈리안 음식점에 데려왔다. 값나가는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나서 화장실 다녀온다는 친구의 얘길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다가 식당을 나가기 전, 계산대에 섰을 때 처음 들었던 말이다.
워낙에 어른스러운 친구이기도 했고, 배울 점이 많아 십대의 끝자락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은 지에 대한 영감을 준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이 꽤 오랜 기간 인상 깊게 남았다. 동급생인 친구가 한 행동에 꽤나 큰 파동이 일었던 것 같다. 그땐 그게 멋있어 보였다. 계산대 앞에서 서로 시간 쓸 일 없었고, 직원분께서 환히 웃으며 이미 계산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 마치 대접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부작용으로 인해 이상한 버릇이 생겨버렸다. 밥을 사야 할 명분이 없어도 밥값을 내가 먼저 내기 시작한 것이다. 방법은 이랬다. 화장실 갈 때 카드를 챙겨, 가는 길에 계산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완료된 계산서와 카드를 함께 받는다. 자리가 파하며 다 같이 가게를 나갈 때 점원분께선 이미 계산이 다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원치않는 호의
대학생이 된 딸이 밤늦게 택시비가 없어 집에 못 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아빠는 신용카드를 내게 쥐어주셨다. 성인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아침 일찍 나와 밤늦도록 정신없이 돌아다닐 정도로 새로운 경험들을 안겨주었다. 그 과정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당시엔 귀한 인연들이라 여겨져 부수적으로 소비되는 돈과 시간이 아까운 줄 몰랐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던 카드값은 알 턱이 없었고, 한동안 뭣이 중한지 모르고 써버린 돈과 시간 앞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의 행동에 심취해서 상대의 상태를 면면이 살피지 못했다. 과연 그들은 본의 아니게 얻어먹은 밥 한 끼가 좋기만 했을까?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게 지금의 생각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부담이 되거나 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상대를 배려한다고 했던 행동은 오히려 배려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 꼭 좋은 영향으로만 이어지진 않을 수도 있다. 크든 작든 내가 아무 이유 없이 행한 선의는 양날의 검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이는 관계가 좋을 땐 꼭꼭 숨어있다가, 조금의 균열을 보이기라도 하면 점차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한번 사면 네가 한번 사는 게 암묵적인 룰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반반 나뉘는 게 아니란 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정확하게 반반 가르려 했다면 그런 방법으로 계산을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애매한 설정에서 시작된 나 혼자만의 룰은 지켜질 리 만무했다. 어떤 관계에선 내가 사는 게 당연시 되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관계는 이상적이었던 걸까? 혼란스러운 상태가 계속되자 자연스럽게 내가 밥을 사지 않으면 만남이 줄어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리되고 있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했던가. 편입학으로 들어간 대학생활은 대부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한 푼이 아쉬워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과방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녀석들을 학교 앞 자취방으로 데려가 많이도 재워줬었다. 집에 데려온 애들이 배라도 고플까 부족한 음식 솜씨로 뭐라도 만들어주면 뭐든 맛있게 먹었고, 다음날 등교할 때면 '재워주고 먹여주어 고맙고 또 올게!' 정도의 귀여운 방명록들을 남기곤 했다.
알고 있었다. 지금 베풀고 있는 나의 호의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다만, 작게나마 기댈 수 있는 어른 비슷한 게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특유의 오지랖 일수 있지만 '나 대학교 다닐 때 그런 언니도 있었는데' 하고 기억된다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난 타인의 행복으로 나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란 것을 명확하게 알아버린 시기이기도 했다.
그토록 많은 녀석들이 스쳐갔지만 그 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후배는 손에 꼽힌다. 그중 한 친구가 몇 년 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며 첫 월급을 받아 맛있는 밥 한 끼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당당히 밥을 사고 싶었다고 말하는 녀석 덕분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며 맛있는 식사를 얻어 먹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 친구 녀석이 3호봉 진급 기념으로 밥을 사겠단다. 후배의 마음이 고맙고 예뻤다. 마음만으로도 고마웠지만 한사코 밥을 사겠다는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었기에 작은 축하 선물을 준비해 갔었다. 약속 장소로 가는 내내,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부자가 된 듯 벅찬 감사함이 가득했다.
각자내기
어릴 땐 친구들과 다 같이 밥 먹고 어떻게 계산했을까? 뜨문뜨문 나는 기억에 기대보자면, 다들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은 각자 용돈에서 백원 단위까지 나눠 끼니의 값을 함께 지불했었다. 용돈기입장을 써야만 다음 용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입 금액과 실제 잔돈을 맞춰야 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 한턱 쏴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더치페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시절부터 각자의 몫을 나눠냈었다.
이제는 세상이 편해져 앱으로 모임통장을 만들어 회비를 모으기도 하고, 어느 한 사람이 계산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입금을 해줄 수 있다. 더치페이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 놓였다. 더 이상 밥값 갖고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처음 한 두 번은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한번 익으면 부담 없이 친구들과 만나 각자 먹은 값을 계산하고 돌아올 수 있다.
건강하게 오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선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고 서로 공평하게 지불하는 행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래야만 사람들 간에 평등한 관계를 망치지 않을 수 있다. 어쭙잖은 선의가 관계를 망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불편한 마음들이 저 홀로 견뎌냈을지 모를 지난날들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