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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함 Sep 14. 2023

시간은 관리할 수 없는 것

몽골에서 생각한 일 (1)

16시 01분, 몽골 울란바토르로 떠나는 비행기가 출발 예정시간에서 2시간 연착한 후 드디어 출발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몽골 칭기즈칸국제공항까지는 항공으로 약 3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러니 예정대로 출발했더라면 지금쯤 아시아 대륙 위에 있었을 것이었다.


여행이 몇 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여행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런 건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자유여행보다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모든 것이 다 예측되고 예상할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떠나는 어딘가가 지구라는 것이 분명한 이상, 새로운 곳에 가서 예상치 못한 일을 안전하게 겪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패키지는 여행문명의 극치라고 주장해 본다.

 

하지만 이번 몽골 여행은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가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여행에 인생의 큰 뜻을 품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여행도 대수롭지 않게 대할 수 있지만, 인생에 처음 일어나는 사건까지 덤덤하게 다룰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누가 정해주지 않고 내가 머물 장소와 머물 곳으로 가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인생에 대한 고민과 닮았기 때문일까? 여하튼 여행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몽골 자유여행을 준비했다. 아마 그때부터 여행이 시작된 것 같다.


여행 전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해야 하는 줄 몰랐다. 교통편을 끊을 방법과 시기, 숙박시설의 위치와 가격과 조건, 여행지에서 할 일 같은 것을 알아봐야 했고 이를 간략하게 엑셀파일에 정리했다. 평소라면 책이나 읽고 빈둥거리면서 보냈을 시간이었다.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출국일이 다가왔다.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에서 중앙아시아 어디에 있는 칭기즈칸 국제공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람이 이렇게 먼 거리를 쉽게 떠나는 것이 어색한 일 같다. 그간 준비에 들인 고생은 별 것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항공권을 발권받고,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을 섰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상념에 잠겨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데 점점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서 긴박감이 느껴지고, 몇몇은 빨리빨리 좀 하라며 언성을 높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멍하니 있는 동안 2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입국심사장 검색대조차 통과하지 못한 걸 알게 되었다. 그때가 비행기 보딩시간 30분 전 일이었다.

가능한 뭐든 약속시간 전에 여유를 두고 준비하는 것이 습관인지라, 초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30분 내에 처리할 수 있으니 이렇게 관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믿음으로 불안을 다독거리려는데 주변 분위기를 보니 그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고, 우리도 덩달아 백기처럼 표를 흔들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랬더니 또 누군가가 얼마나 초조하냐며 앞에 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순서를 양보받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오래 기다리느라 지쳤을 텐데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양보를 받아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니 보딩까지 5분이 남았다. 몽골 항공이 출발하는 게이트와 방금 심사를 마친 장소는 끝과 끝이었다. 긴박한 상황이 되니 5분이나 남았다는 긍정적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거리와 시간과 속도의 방정식을 생각했다. 아 시간, 시간은 무엇일까? 여행을 떠나기 전 일상생활 속에서 나는 지도 어플을 통해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은 내 핸드폰 속에서 내 소유였고 나는 내 목적을 위해 시간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생각해 보면 우리는 KTX 직행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갈 수 있는 시간 동안, 그 어떤 지도 어플도 계산해 줄 수 없는 도착예정시간을 마주했다. 그것이 여행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보딩 하는 줄의 끄트머리에 서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중국 내륙에서 발생한 토네이도 때문에 출발시간이 2시간 정도 늦어진다는 방송이 들렸다. 그야말로 귀를 의심할 소식에 어이가 없어 숨을 헉헉거리며 자리에 앉아 우리는 웃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간은 저 먼 태양빛으로 생긴 일이고 토네이도는 넓은 평야에서 태어났으니 태양과 가까운 초원과 바람의 땅인 몽골 여행과 제법 어울리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시간여유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늦을 뻔 한 이 기막힌 사건은 여행 내내 트라우마처럼 우리 뒤에 붙어 다녔다.


어딘가로 떠날 때 목적지 도착 예정 시간을 묻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몽골사람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였다는 걸 그때의 우리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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