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믿는다.
계획하다.
부족하다.
쓰다.
벌다.
채우다.
남다.
넘치다.
없다.
내다.
훔치다.
아끼다
낭비하다.
여유롭다.
시간과 연결되는 동사를 나열하다보니 ‘돈‘의 언어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옛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둘은 참 닮았다. 그리고 다르다.
아니, 다르다고 믿고 싶다.
돈은 숫자다. 현실에 맞닿은 냉정한 숫자다.
그것은 불공평의 세계다.
지폐나 동전, 통장의 잔고로 그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숫자가 작을수록 자주 들여다 보게 하고,
정확하게 세어보게 만든다.
때로는 사람을 옹졸하게 만들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좌지우지 한다.
시간은 반복되는 숫자의 나열이다. 쉼없이 흘러간다.
나의 관점이나 상황을 초월해 흐른다.
저장하거나, 보관하거나, 빼돌릴 수 없다.
그것은 감정의 세계와 별개로 존재한다.
시간과 돈은 한정된 자원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그 한계를 거듭 넘어서려 한다.
인류학자 제인 구달이 우주로 날려보내고 싶은 인간 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적 대화가 포착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흘러나온, 독재자들의 속내였다.
대화의 주제는 바로 '불멸'
푸틴 : “시주석. 생명공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인간의 장기는 계속해서 이식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오래 살 수록 젊어지고 심지어 불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시진핑 : "일각에서는 이번 세기에 인간이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는 예측도 있더군요 "
두 사람은 그 순간 어떤 미래를 상상했을까?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긴 시간 절대권력을 누리며,
도전하는 모든 것에 폭력으로 제압하는
그 비릿한 욕망에 가슴이 뛰었을까.
그 대화를 보며 나는 괜스레 서글펐다.
본래 누구에게나 평등한 시간마저
돈의 논리에 갇혀버린걸까?
돈이 생명을 연장하고,
기술이 생의 질서를 재단하는 세상.
누군가는 장기 이식과 신약의 혜택으로
자연의 시간을 거슬러 살고,
또 누군가는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가난과 절망 속에서 장기를 팔아 생을 끝내는 비극적인 삶. 두려워졌다. 시간만큼은 공평하다고 믿었던 믿음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시간이 인간의 욕망보다 오래 버틴다고.
시간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고.
시간은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으며,
그 어떤 권력도, 그 어떤 자본도
시간의 본질을 지배할 수 없다고 되내어 본다.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그 뻔하고도 빤한 인과의 질서를
한 사람의 욕망을 위해 수만 명의 생이 희생되었다면,
그 결말 또한 반드시 공평한 질서 속으로 되돌아오리라.
시간은 결코 속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공평하고, 가장 냉정한 심판자다.